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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Oct 01. 2022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가끔씩 생각하는 외할아버지

1997년, 내 외할아버지는 나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25년 전 일이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고 백발을 하셨는데, 갑자기 확 늙으셨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 한 구석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170cm가 넘는 키에 훤칠한 얼굴이셨다. 담배를 좋아하셨고, 가요무대와 사극을 좋아하셨다. 


1930년생의 할아버지는 그 시절에는 드문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셨고, 3대 독자였다. 한국전쟁 징병을 피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집안의 전답을 팔아 누군가에게 바쳤다고 하셨다. 그렇게 전쟁을 피한 할아버지는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결혼과 동시에 청주로 올라오셨다. 일본어도 잘하시고, 한자도 많이 아셨고, 전쟁 직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도 하다가, 전화국 지금의 KT로 취직을 하셨다. 언제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곧 그만두시고, 과일 중간 도매상 일을 시작하셨다. 어찌 보면 참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주변 상인으로부터 신사로 불리셨다는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1983년에도 과일 도매상을 하셨다고 하니, 적어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과일 중간도매상 일을 하셨다. 도매상 일은 새벽에 주로 있어서 늘 새벽 동트기 전에 나가셨다가 늦은 아침에 식사를 하시러 돌아 오시곤 했다. 부지런함과 성실에도 불구하고 60년대에 지은 집에서 40년 가까이 사신 것을 보면, 그리 큰돈은 버시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인상 깊은 사실은, 할아버지의 인간적 신뢰에 관한 부분이었다. 돌아가시지 전까지 제주 효돈 지역 귤을 청주에서 독점적으로 공급받으셨다고 한다. 일반 제주 귤보다 박스당 이삼천 원 비싸고 맛도 보증된 귤이라 인기도 많았을 텐데, 할아버지만이 취급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상중에, 멀리 제주에서 오신 분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학 때면 늘 외가댁에 맡겨졌던 나에게 할아버지는 사실상 아버지였다. 술과 도박과 폭력,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아버지와 비교해서 말이다. 1학년 여름방학, 구구단을 알려주시고는 건넌방에 가서 30분 동안 외워 오라고 시키셨다. 할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던 나는 열심히 소리 내어 외웠고, 그 모습은 본 할아버지는. "넌 나중에 공부를 좀 하겠구나" 라며 난생처음 공부로 칭찬을 받게 해 주셨다. 그리고 공부로 지칠 때면 늘 할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내 가능성을 믿었고, 중학교 첫 시험 결과, 아직도 생각난다. 550명 중 27등. 누구보다 할아버지에게 시험 등수를 알려드리고 싶었었다. 

비록 친손자는 아니었다고 해도, 주위에 공부 잘하는 외손자 있다고 소문을 내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도 뿌듯했고 기뻤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좋은 대학까지 가는 모습을 보셨으면 참 좋았으련만. 허망하게도 수인성 전염병으로 남긴 유언도 없이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40살이 된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내가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할아버지. 

술 한두 잔 건네며, 이야기를 듣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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