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68
※ '차가 식어가는 동안'은 아기가 밤잠에 들면 잠시 자리에 앉아 1시간 남짓 써 내려가는 일기입니다. 쓰는 것 자체가 목표라, 퇴고 없이 업로드하고 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시거든 용두사미, 아니 사두사미(蛇頭蛇尾) 우당탕탕 글임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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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화면 앞에 앉은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아기가 밤잠에 드는 아홉 시 무렵이면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기 바빴다. 잠을 채워야 몇 차례 더 깨야하는 새벽과 다음 하루를 버틸 힘이 생겨나니까. 그렇게 몸의 체력은 그때그때 채울 수 있었지만 그 사이 마음의 체력이 조금씩 떨어져 갔다. 아기와 눈을 맞추는 동안 진심을 다해 웃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을 걸다 보면 쉽게 지쳐서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출 때는 무표정하고 퀭한 표정만 마주하게 됐다.
"아이고, 우야겠노. 아는 '우는 게 농사'다 아이가."
아기의 울음 때문에 마음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아빠는 말했다. 전화를 걸면 보통 식사 중인 엄마아빠는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무심한 듯 마음을 담아 초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묻자, 옛날 사람들에게 농사가 일인 것처럼 아기는 우는 게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란다. 맞는 말이다. 배가 고파도, 졸려도, 기저귀가 찝찝해도 양육자에게 알릴 길이 우는 것뿐이니 어쩌겠는가. 그날 이후 새빨간 얼굴의 아기가 이제 막 발달한 눈물샘으로 한 방울의 눈물을 짜내는 모습을 보고 따라 울고 싶어지면 그 한 마디를 되새기고 있다.
그렇다고 어려운 마음이 단숨에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너의 불편함을 내가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망고는 대부분 졸려서 울기 시작해서 배가 고파져서 더 운다. 졸릴 때 제대로 낮잠에 들지 못하니 계속 칭얼거리고 칭얼거리며 못 자다 보니 배가 금방 고파지는 거다. 지난 한 주 간은 특히 그랬다. 신생아 시절 제대로 우는 소리조차 못 들어봤을 정도로 순했던 아기가 온 힘을 다해 우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퍽 슬퍼진다. 그러게 왜 침대에서 편하게 자면 될 것을 품 속에서 잠이 들었다가도 누이면 말똥말똥 깨고 곧 울음을 터뜨리는 건지. 몇 차례 재우려 쪽쪽이도 물려보고, 쉬 소리와 함께 토닥토닥도 해봤지만 결국엔 깨버리고 마는 아기를 데리고 다시 거실로 나오면서 남모를 한숨을 쉰다.
오늘도 망고는 아침에 30분 정도 잔 것 외에는 침대에서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면 아기는 아기대로 피곤해지고, 엄마도 호다닥 집안일을 하고 젖은 손을 대충 옷에 닦고 아기에게 달려가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르게 배가 고픈지 점심과 오후 수유 전 심하게 울어댔다. 으앙으앙 우는 아기를 잠시 눕혀두고 종종거리며 분유를 탔다. 그러면서도 아기가 들으라는 듯 쉬지 않고 외쳤다.
"우리 아기 배고프구나~ 잠시만 기다려, 엄마가 밥 가져올게~ 아구 우리 아기 밥 준다~ 밥 내리는 소리 들리지? 걱정 마 엄마가 너 밥 주려고 회사도 안 가고 옆에 딱 붙어있는데~ 잠시만 기다려~"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젖병을 입에 물리면 귓가를 가득 채우던 울음소리가 뚝 끊기고, 아기의 표정도 단숨에 변한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빤히 눈을 쳐다보며 열심히 밥을 먹는 아기와 눈을 맞출 수 있다. 평소보다 예민한 오늘은 편안하게 밥을 먹다가도 중간중간 짜증 섞인 울음을 보였고, 식사를 마치고도 꽤 오래 보챘다. 트림을 시키고, 소화가 될 때까지 안고 있다가 역류방지쿠션에 아기를 내려놓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빌을 켜줬다. 다행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옆에 잠시 누웠다. 건조기도 다 돌아갔고, 젖병도 씻어야 했지만 아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분 정도가 흘러있었다. 종일 칭얼거리던 아기가 어쩐 일로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여전히 모빌을 바라보며 놀고 있었고, 잠시 눈을 붙인 덕에 머리가 맑아졌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팔다리를 파닥거리고 있는 아기를 보니 순간 미안하고 고마운 맘이 몰려왔다.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될 것을 너무 전전긍긍 노심초사 하며 아기를 키우고 있진 않나, 생각도 들었다.
품 안에서 잠이든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음소거를 누른 후 유튜브에서 '70일 아기'를 검색하고 다른 아기들은 이맘때 어떻게 보내나 살폈다. 위안을 얻으려 했는데 '70일 아기 통잠 비결' 같은 영상이 많아 옆으로 옆으로 넘기다가, 육아스트레스가 없다는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됐다. 그의 비결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스스로 도태되지만 않기'였는데 꽤 공감이 됐다. 아기가 잘 때 5분이라도 공부하고, 아기가 놀 때 10분이라도 운동한다는 영상을 보고서 오늘부터 나도 글을 써보자 맘먹었다. 이 글이 부디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