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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Oct 29. 2024

모로반사

차가 식어가는 동안, D+69

※ '차가 식어가는 동안'은 아기가 밤잠에 들면 잠시 자리에 앉아 1시간 남짓 써 내려가는 일기입니다. 쓰는 것 자체가 목표라, 퇴고 없이 업로드하고 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시거든 용두사미, 아니 사두사미(蛇頭蛇尾) 우당탕탕 글임을 양해 바랍니다.


간밤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오른쪽에는 아기가, 왼쪽에는 남편이 각자의 속도로 숨 쉬며 잠들었고 그 사이에 누워 말똥말똥 지나간 몇 시간을 되새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고, 어딘가에 툭 하고 올려두고 다시 그 글을 읽으며 묘한 설렘이 몰려왔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그냥 썼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물론 오후 4시쯤 벌컥벌컥 들이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불면의 더 큰 이유였겠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순간 어떻게 글로 남기면 좋을지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오늘 아기는 유난히 혼자 누워있기 싫어했다. 잘 보던 모빌을 보라고 쿠션에 앉혀두어도 금방 울음소리를 냈고 침대에는 내려놓기도 전에 응애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히고,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과 손바닥을 닦아주고서 아직 조금 졸린 것 같은데 혼자선 자려고 하지 않아 소파에 같이 누웠다. 아기는 안쪽 나는 바깥쪽에 자리를 잡고 팔베개를 하듯 안고 있다가 조금 진정이 되면 바로 눕게 할 생각이었다. 새벽녘에 깨서 잠들지 못하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데, 밝은 아침이었지만 아기는 다행히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았다. 아기를 바로 누이고, 나는 모로 누워 아기를 바라보았다.


30분 정도를 누워있는 동안 아기가 자주 누군가를 껴안듯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다. 태어나서 3~4개월 무렵까지의 아기가 자연스레 보이는 모로반사(Moro reflex)다. 한쪽 팔은 가벼운 쿠션으로 살짝 눌러주고, 반대쪽 손을 잡으니 곧 다시 잠들었지만 그러고도 몇 번을 움찔움찔 놀랐다. 신생아 때부터 망고는 모로반사가 심한 아기였다. 문소리에도 쉽게 놀라고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도 혼자 깜짝 놀라듯 모로반사를 온몸을 폈다가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산후관리사님은 엄마가 막달에 너무 조용히 지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조기진통으로 막달에 거의 집에서 혼자 보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곤 무엇이라도 껴안으려 하는 아기를 보며 어떤 때는 같이 놀라고, 어떤 때는 미안해하고, 또 어떤 때는 귀엽다며 웃기도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밖에 나왔으니 깜짝 놀랄 일이 얼마나 많을까. 숨을 쉬는 일, 먹는 일, 소화시키는 일 같이 몸속의 움직임으로 모로반사를 하기도 한다고. 목욕하러 욕조에 앉힐 때 모로반사를 하면 이 조그만 아기가 믿을 것이라곤 진짜 우리뿐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절로 든다.


점심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가려 했는데 아기가 품에 안겨 잠들었다. 또다시 아기를 깨우고 싶지 않았기에 처음으로 배 위에 올려 재우고 나도 눈을 좀 붙여보기로 했다. 소파에 눕듯이 기대고 아기가 안전할 수 있게 받치고는 한 시간 동안 얕은 잠을 잤다. 다행히 아기가 잘 잤다. 품 속에서는 모로반사를 해도 곧장 안정을 찾는데, 그 기분이 좀 좋다. 아기가 배 위에 찰싹 붙어 잠을 자는 일은 좀 피곤하긴 해도 애틋한 맘이 든다.


아기는 오후 내내 놀지 않고 안겨 있거나 울거나를 반복했다. 조금 지쳤지만 원더윅스를 지나는 중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섯 시 반, 점심에 하지 못 한 산책을 하러 나섰다. 긴장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바깥세상을 살피는 아기를 보니 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11월부터는 수면교육을 해볼 생각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구청 보건소에서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간단히 수면교육법을 알려주시기로 했다. 아직 저 작은 아기를 울려가며 수면교육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침대에서 자야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그래야 더 건강히 클 수 있으니 맘을 굳게 먹어본다. 그나저나 그러니 남은 이틀은 좀 보채면 많이 안아주고 안아서 재우고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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