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75
집에서 홍시를 보내주셨다. 박스에는 특상, 상, 중 같은 등급이 쓰여져있었고 특상에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과연 후숙을 하여 잘 익은 홍시는 다디달았다. 박스 속 홍시들은 어떤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질까. 아마도 당도라거나 크기 같은 기준이 있을테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이와는 분명 다른 일이다. 그런데 육아를 하며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볼수록 '특상'으로 키워내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기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자라게 하는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방법들 중 정답은 없음에도 적용해보려다 어려움을 겪고, 좌절한다. 사실 쏟아지는 정보의 결론은 대부분 '아이마다 다를 수 있음'인데.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을 하나씩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잘' 키우는 법이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인 것 같다.
혹시 정말 '잘' 키우는 법이 있다면 나는 포기하려고 한다. 나는 육아전문가가 아니라 엄마니까. 아기와 열심히 지지고 볶으며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되, 궁금한 부분은 찾아보고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가되, 하지 못 하는 부분은 내려놓으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더 좋고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정보들을 외면하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그런데 숱한 '성공기', '비법'을 보다보면 스스로 자격미달이라 여기며 죄책감에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많으니까 계속 다짐해야 한다.
아기의 하루는 내맘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매일매일 깨달으면서도 오늘은 나의 계획대로 흘러갈까 매일매일 기대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기대들이 무너지면서 평정심도 무너진다. 기본적인 것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이드는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음악을 틀고, 각양각색의 장난감을 기분과 상황에 맞추어 꺼내 아기가 새로운 자극을 받도록 놀아주고, 대근육 소근육 발달에 좋다는 이런 저런 행동을 해주어야 한단다. 그러니 나는 좋은 엄마말고 그냥 이나 엄마가 되기로 했다.
육아도 결국 '견디는 일'이다. 견딘다는 말은 수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꽤 많은 능동성을 요한다. 하루하루 주어진 성장을 해낼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고 견뎌내다보면 '좋은 엄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보다 좋은 가족이 되어있으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