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76
아기가 새벽에 한 차례만 깨기 시작했다. 9시에 자고 7시에 깰 때까지 두세 번은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새벽 수유가 한 번으로 줄어드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의 기록을 보니 수유 횟수도 하루에 9-10번에서 어느새 6번으로 줄었다. 한 번에 먹는 양도 70cc에서 (최대) 170cc까지 늘었다. 달라지는 것 없이 그저 반복되는 하루하루라 느껴졌는데 조금씩 자라고 있었구나 싶어 대견한 마음이 든다.
새벽 수유가 두 번일 땐 남편과 한 번씩 나누어 맡았는데, 한 번으로 줄어드니 내 몫이 됐다. (둘이 같이 일어나서 먹이지 않는 자는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내려주고 다시 자러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 중이다.) 출근하는 자를 위한 배려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피로도는 아직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저 100일 정도가 되면 통잠을 잘 것이라 기대할 뿐이다.
"오늘 저녁밥은 어떻게 할래?"
묻는 쪽은 주로 나고, 답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쪽은 주로 남편이다. 원래도 취약했으나 육아를 하며 더욱 취약해진 것이 해 먹는 일이다. 아기와 둘이 있으니 뭔가를 차려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침을 주로 샐러드나 셰이크를 먹고 점심은 김밥, 만두 같이 한입에 쏙 넣어 우적우적 먹을 수 있는 것을 사 먹게 된다.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 타입) 그러고 나면 남편이 밥다운 밥을 차려준다. 아기가 울고 있다면 교대로 밥을 먹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면 모빌을 보는 동안 함께 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한 명이 아기를 볼 동안 한 명이 설거지를 한다. 남편이 씻는 동안 아기를 잠시 보고 나면 곧장 아기 목욕시간이 찾아온다. 목욕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아기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어르고 달래고를 반복해야 하는 중노동이기도 하지만, 아기와 교감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한 사람이 전담하기보다는 남편과 내가 하루하루 번갈아가며 시키고 있다. 목욕 담당자가 아기를 볼 동안 비담당자가 준비를 한다. 아기 몸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힐 이불을 세팅하고, 갈아입힐 옷을 얹어두고, 목욕물을 받고 손수건 두 개를 챙기는 일. 준비를 마치면 담당자가 아기를 안고 화장실로 입장한다.
목욕 후 마지막 수유는 남편이 담당한다. 밝지 않은 조명 하나만 켜두고 나머지는 소등하고서 천천히 밥을 먹이고 재우는 것까지가 남편의 몫이다. 그동안 나는 쌓여있는 젖병을 설거지하고, 젖병 세척기를 가동한다. 새벽수유에 대비해 분유제조기에 분유나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점검하는 것도 내 몫. 할 일을 마치고 아기가 밤잠에 들면 각자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다음 10시 전후로 잠자리에 든다. 둘이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평일엔 사치다. 주말 저녁 아기를 재워두고 맛있는 음식을 시켜다가 회포를 푸는 수밖에.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분장이 됐다. R&R이 꽤나 명확해 보이지만 서로의 컨디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정한다. 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 안타까운 맘이 들지만 종일 아기와 함께 씨름한 나도 썩 편했던 것은 아니니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아기를 키우며 우리의 관계는 진정 전우애가 되겠지. 그래도 우리가 원래 해왔던 것들을 놓치지는 않고 살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