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81
며칠을 앓느라 노트북 앞에 앉지 못했다. 감기도 쉽게 걸리지 않고, 꽤 건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도 거의 하지 못하는 데다 8월부터 대부분 실내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바깥공기의 변화가 크게 와닿는다.
'아, 나 아플 것 같은데.'
슬픈 예감은 틀리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토록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건 처음이다. 그래도 목이 좀 칼칼하다거나 코가 맹맹하다거나 신호를 주고 천천히 하나씩 증상이 더해지는 게 보통인데, 이번엔 달랐다. 오후 1시 무렵 아기와 함께 집 앞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마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날이 갑자기 차가워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긴 했다. 아기는 바람이 닿지 않게 잘 싸맸는데 문제는 나였다. 반팔 티셔츠에 두꺼운 가디건을 걸쳤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사이사이로 들어왔다. 집에 도착해 배고파하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데 좀 이상했다. 뒷골이 당기고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기를 다 먹이고, 잠시 소화를 시켜준 다음 쿠션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오한이 심해지더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파왔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급한 대로 소파 위에 있던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아기 곁에 누웠다. 다행히 한동안은 모빌을 보며 잘 놀아줄 것 같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덜덜 떨었다.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부디 낮잠을 자주기를 바라며 겨우 안아 들어 침대에 누이고는 나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침대에 누웠다. 몇 차례 울긴 했지만 고맙게도 아기가 30분 정도 잠을 자주었고 나도 조금 쉴 수 있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뒤, 저녁식사로 먹을 죽과 함께 남편이 도착했다.
체온을 재보니 38.2도. 아주 큰 일은 아니지만 육아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높이 오른 체온을 보니 패닉 상태가 됐다. 남편도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았는데, 일단 약을 먹고 쉬어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남편도 어서 죽 먹고 약을 먹고 자라고 했다. 잠이 잘 오지 않아도 누워있다가 잠깐잠깐 남편을 도와주러 나왔다가 하다 보니 밤이 지났다. 새벽에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남편이 휴가를 써야 했다. 육아 중에는 진짜 아프면 안 되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섯 시만 넘으면 집이 떠나가라 울던 아기가 달라졌다. 엄마아빠가 아픈 걸 아는 건지, 2주 동안 자주 울고불고 저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시키더니 그새 좀 자란 건지, 어딘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내가 힘들 때 낮잠을 조금씩 자고, 갑자기 옹알이를 시작해 하루를 웃으며 시작하게 해 주었다. 원래도 귀여웠지만 부쩍 더 귀여워져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조금씩 기운을 낼 수 있었다. (고슴도치 이모티콘)
어제 아기는 밤 9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한 번 깨 분유를 먹고, 아침 8시에 일어났다. 하루 수유 횟수가 6번이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5번으로 줄었다. 먹는 양도 부쩍 늘고 있다. 오늘은 아기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아직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섰다. 아기 침대를 사기 위해 용산과 마포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셋이서는 처음으로 외식도 하고 밖에서 처음으로 대변 처리도 했다.(오늘의 TMI..) 목이 좀 따가워도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기가 자라느라 아팠던 것처럼, 나도, 우리도 부모로 조금은 더 자라난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아기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다. 사실 아직까지는 아기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콧바람을 위해서 나서는 것이 맞지만, 이렇게 연습을 해두어야 아기와 함께 어디든 쉽게 나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서 나아서 다음 주에는 어디를 갈지 고민해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