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82
그것 참 신기한 일이다. 아직 감기에 걸려 머리가 띵하고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데도 웃음이 실실 나왔다. 하루에 한 번은 꼭 힘들었던 육아인데, 오늘은 처음으로 온종일 행복한 하루였다. 짧게라도 낮잠을 자고 분유도 때에 맞춰 넉넉히 먹어주는 것도 좋았지만, 자다 일어나 방긋방긋 웃어주고 눈 맞추고 옹알옹알하고 싶은 말을 하려 애쓰는 모습이 순간순간 귀여웠다. 물론 배고프다고 울고 졸리다고 울고 불편하다고 울었지만, 우는 모습마저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기를 무릎에 기대고 수다를 떨다가 괜히 벅차서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아기를 바라보다가 수십 번 귀엽다며 껴안았다. 이런 하루가 찾아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맛에 육아를 하는가 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제까지는 정말 쉽지 않았다.(물론 오늘도 쉽진 않았지만) 아기를 키우는 친구에게 듣기로 안 먹는 아기와 안 자는 아기가 있다고 하던데, 이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래도 밤잠은 좀 자는 편인데 낮잠을 안 자서 고생을 꽤 했다. 60일 무렵엔 말로만 듣던 원더윅스가 찾아와 낮잠을 안 자는 것에 더해 잡혀가던 일과가 리셋되어 종잡을 수 없는 시기를 보냈다.(2개월 접종을 기점으로 그랬다.) 단둘이 있는 시간 동안 잠을 안 자니 집안일도 하고 밥도 먹느라 시도 때도 없이 아기를 쿠션 위에 두고 모빌을 보게 했는데, 그 시간이 괜한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물론 눈 맞춤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걸어 주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시간에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마저도 모빌을 잘 봐준다면 나은 형편이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안아줘도 이유 없이 1시간 내내 울기도 하고, 잠을 잘 못 자니 종일 칭얼거리기도 했다. 아기를 겨우 달래 침대에 누이고 쪽쪽이를 물려봐도 금세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즈음엔 아기가 우는 환청도 자주 들렸다.
그래서 수면교육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80일 정도 되면 퍼버법(울 때 반응하지 않는 시간을 늘려가며 재우는 방법)을 해보자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울리는 수면교육은 제대로 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 방법임이 분명해 보였고, 무작정 아기를 울리고 싶진 않았다. 한두 번 울려보기도 했는데 나는 울음소리와 우는 표정을 잘 지켜볼 수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온갖 유튜브 채널과 책을 구해 읽어보았지만 아기마다 기질과 패턴이 다른데 공부를 완벽하게 하고 정확하게 지킬 자신도 없었다. 밤잠을 잘 자는 아기라면 퍼버법이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원더윅스에는 그저 안아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아기를 다독이며 시간을 보내고, 아빠와 엄마가 교대로 감기와 몸살에 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기가 자연스럽게 일과를 찾아갔다. 어제는 밤 9시에 잠들었다가 3시 30분에 한 번 깨서 분유를 먹고, 오늘 아침 8시에 기상했다. 조금씩 첫 번째 밤잠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아기의 신체 시계가 점점 지구에 맞춰져가고 있구나 싶어 신기하다. 낮에 밥을 많이 찾아서 걱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하루 총량을 맞추려면 낮에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유레카!) 그 당연한 이치를 깨닫고서 낮에 원하는 대로 주었더니 밤에 더 잘 자는 것 같기도 하다.
낮잠도 조금씩 자주고 있다. 분유를 먹는 텀이 보통 4시간 정도인데, 그 사이에 한 번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알람시계를 맞춘 듯 정확히 30분 만에 깨어났지만, 침대에 등을 붙이고 자는 시간이 잠시라도 있으니 나의 일과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한숨 돌리고 나니 치열한 수면교육은 잠시 내려놓아야겠다 싶다. 나중에 잠퇴행도 올 테고, 어려움이 오겠지만 지금 이나는 충분히 자기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행복했지만, 아마도 곧 다시 어렵고 힘든 시기가 찾아올 거다. 아기도 자라느라 힘들고, 나도 그런 아기를 돌보느라 지치는 시간이. 그런데 지난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든 시기 후에는 아기가 분명 자라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그때가 오면 이 시기의 글을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