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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Aug 26. 2022

나의 조바심과 너의 나태함

인제 아침가리 계곡 여름 트레킹


그날은 온종일 “꿈같다”라거나, “너무 좋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더위라고는 한순간도 느낄 수 없었고, 계곡물에 발을 담글 때마다 피로가 풀려 힘들 틈이 없었다. 세찬 물살에 때로는 조심조심 한 발씩 떼어가며 걷고, 적당히 모여 흐르는 물을 발견하면 가방을 내려놓고 몸을 담갔다.   

  

오랜 시간 생각만 해왔던 여름 계곡 트레킹을 떠난 날이었다. 출발 전날, 우리는 밤 열 시에 겨우 눈을 붙였다.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으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들더라도 3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여름철 ‘아침가리 계곡’은 워낙 유명한 피서지라, 차가 막히는 것과 사람이 많은 것 모두를 끔찍이 싫어하는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는 후기마다 서울에서 새벽같이 출발했는데 4시간이 걸렸다느니,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느니, 사람이 많아 줄을 지어 이동했다느니 하는 문장이 우리를 겁주듯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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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는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깊은 계곡이다. 오솔길 같은 산길을 걸으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을 열다섯 번 남짓 건너야 해서, 물 빠지는 트레킹화와 스틱이 필수인, 여름철 대표 걷기 코스다. 산꼭대기에서 시작해 내리막을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계곡이 시작되고, 그 계곡 길을 서너 시간 걸어 내려가면 주차장인 갈터 쉼터에 닿는다.     


7말 8초의 극성수기를 지나서 그런지, 오후 늦게 있는 비 예보에 흐린 날씨 때문인지, 6시가 다 되어 도착한 갈터 쉼터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자그마한 주차장은 만차였으나, 주변에 주차할만한 구역이 여기저기 텅 빈 상태였다. 쉼터에 차를 대놓고 택시로 들머리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택시가 다닐 시간까지 조금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6시 30분에 눈을 뜨고 짐을 챙긴 후 택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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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화가 안 터지네. 우리 어디쯤 왔으려나?”     


계곡 길이 끝날까 아쉬워 얼마나 왔는지가 궁금했지만, 구간 대부분이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평소 중독이다 싶게 휴대전화를 자주 보는 편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보는 내게 남편 C가 말했다.     


“걱정 마. 때가 되면 도착할 거야~ 우리 시간 많아. 괜찮아.”     


정말 그랬다. 대부분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7시에 산행을 시작한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두세 시에는 하산할 것이었다. 남편의 여유로운 목소리를 듣자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며, 아침가리 계곡까지 오게 된 상황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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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일이 있어 주말 출근이 예정되어있던 토요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출근이 취소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은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집에서만 즐기는 중이었고, 여름철이 가장 바쁜 나는 휴가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토요일 하루라도 휴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등산도 가고 싶고, 여름이니 물놀이도 하고 싶고, 계곡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남편과의 카카오톡 대화창에 링크를 몇 개나 보냈나 모르겠다.     


“여긴 어때? 여기도 괜찮을 것 같아. 여기도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근데 너 아직 계곡 트레킹화 안 샀지! 아 근데 비 오면 어쩌지? 그냥 집에나 있을까? 자기는 어떡하고 싶어? 휴가라 집에 있으니까 좀 찾아봐~”     


한참 동안 묵묵히 내가 던져 대는 수많은 후보군을 받기만 하던 C는 며칠 뒤 조용히 링크를 하나 보냈고,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가자! 아침가리 계곡! 비 오면 근처에 바다 보이는 카페 가면 되고!”     


C가 보내온 그 좌표는 계곡 트레킹화였다. 그렇다. 남편은 선택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선택을 하고 나면 이것도 저것도 다 하고 싶은데 확신은 없는 나에게 확신을 보여주어 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주문한 트레킹화가 금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그래, 가자.     


이곳에 오기까지, 참으로 다른 우리 모습을 보았다. 조급한 나와 나태한 C의 간극이 커다랗게 느껴졌다. 그런데, 산뜻한 기분으로 계곡을 걸어 내려가면서, “괜찮아” 말하고는 묵묵히 걸어가는 C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이 C의 차분함과 나의 부지런함 덕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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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급함이 부지런함이 되고, 너의 나태함이 차분함이 되는 순간이 앞으로도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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