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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Jul 03. 2022

실내 클라이밍 일일 체험기. 근데 이제 근육통을 곁들인

나약한 상체, 무거운 하체 그리고 짧은 팔다리

“자, 오른발, 왼발, 오른손… 할 수 있어요! 숨 한번 크게 쉬고”


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ㅅ..!’ 앉아서 관람할 땐 딱히 멀지 않아 보였는데. 그 파아란 돌멩이는 애석하게도 하늘에 뜬 별처럼 멀리 있었고, 결국 손에 닿지 않았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매트 위로 추락했다.


꽤 오래 도전해 보고 싶었던 실내 클라이밍 일일체험의 날이었다. 일일체험권은 암벽화 대여와 50분의 강습, 그리고 수업 후 암장* 문을 닫을 때까지 자유롭게 연습이 가능한 옵션까지 포함하는 이용권으로, 클라이밍의 매력에 입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성이었다.


* 암장 (巖場) : [명사] 인공 합판 또는 건물의 벽면에 구멍을 뚫거나 인공 손잡이를 붙여서 인공 암벽 시설을 갖춘 곳.

 

그러거나 말거나, 그곳에서 나는 명백한 열등생이었다. ‘모두가 처음인데 우등생 열등생이 어딨어?’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앞의 사람들이 척척 해내고 나면, 마지막 순서인 나는 착착 미끄러졌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특히 바위를 타고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살짝쿵,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긴 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나약한 상체와 볼록한 배, 그리고 짧은 팔다리까지, 클라이밍 세계에서는 약점이랄 것을 고루 갖춘 나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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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의 강습 동안 벽에 달라붙어 직접 클라이밍을 경험해 본 것은 딱 세 번. 그런데도 수업이 알찼던 이유는, 꼭 알아야 할 기본적인 용어와 매너부터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15m의 암벽을 두고 누가 빨리 오르는지 겨루는 스피드 클라이밍, 제한 시간 내 누가 가장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리드 클라이밍(서채현 선수가 세계 1위라고), 4~5m의 암벽에서 맨손으로 주어진 루트 문제를 푸는 볼더링.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쉽게 접하는 종목은 마지막의 볼더링인데, 같은 색깔의 홀드만 잡으며 올라가야 한다. 난이도는 천차만별. 표시된 시작점에서 꼭대기의 도착지점까지 각자가 길을 찾으며 올라가면 된다.


선생님께서 공들여 알려주셨던 실내 암장의 기본 매너로는 이런 것이 있었다. 매트 위에는 작은 소지품이라도 절대 올려 두지 말 것, 문제를 풀기 전에는 눈으로 충분히 길을 확인할 것(이를 루트 파인딩이라고 부른다), 앞서 문제를 풀고 있는 사람의 동선과 조금이라도 겹칠 가능성이 있다면 무조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할 것. 어떤 운동이든 기본적인 매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기본 매너만큼이나 한참 동안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낙법”. 원칙적으로, 볼더링은 문제를 다 풀었다면 조심조심 하나하나 홀드를 잡고 밟으며 매트에 안전하게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겁을 먹거나 힘이 빠졌을 때는 부득이 두 손을 놓고 떨어져야 한다. 그럴 때 이 낙법이 중요했다.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어야, 용기 내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니까. 실제로 수차례 떨어지는 연습을 하고 나니, 꽤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도 겁이 조금 덜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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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 사실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배울수록, 함께 수업받는 사람들이 우등생으로 보일수록, 클라이밍이라는 운동과 궁합이 썩 좋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자유 시간에 아주 쉬운 수준의 볼더링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손바닥은 너무 아프고, 도저히 내 팔 길이로는 저 홀드가 잡히질 않고, 수도 없이 떨어지고, 자꾸만 실패하는데…….


재미있었다.


조금 쉬다가 다시 도전하면 아까보다는 한두 칸 정도 더 올라갈 수 있었고, 두세 칸 정도 더 디딜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시도하다가 안 되면 저 문제를 풀어보고, 두 문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결국은 어떤 문제의 꼭대기에 가닿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 복작거리며 모인 모두가 결국은 숱하게 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 풀고 있는 문제의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지만, 계속해서 떨어지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한 공간에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기분이 썩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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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었다면 아마 “좋은 경험이었다! 언젠가 또 와보자!”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일체험을 하고 2주가 지난날, 6월에 시작하는 정식 강습을 등록했다.


이유는, 48시간 함께한 온몸의 근육통 때문이었다. 클라이밍 체험을 함께한 남편과 나는 다음날 제대로 주먹도 쥘 수 없었다. 장난 삼아 서로 ‘물 좀 떠 다오.’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음료수 뚜껑도 쉽게 열기 힘들었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오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어 웃기라도 하는 때엔 아랫배가 당겼다.


“와, 이거 진짜 좋은 운동이구나.”


클라이밍은 오롯이 스스로의 무게를 느끼고, 견디고, 일어서야 하는 운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그렇게 깨달았다. 산을 오를 때처럼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줄 수도 없다.


그렇게 응원 몇 마디 등에 업고 오롯이 혼자 이겨내며 성취감을 느끼는 클라이밍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고자 한다. 6월 한 달 동안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이 내 앞에 펼쳐질지 벌써 궁금해진다.





※ 2022년 5월 30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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