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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Oct 07.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34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3, 7월 14일 브레방( Le Brevent)





어제의 산행으로 아이들도 나도 기분 좋은 피곤함을 느끼며 숙면을 취했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오늘은 몽블랑 맞은편의 브레방(Le Brevent)에 오를 예정이다. 브레방 산은 2,525m 높이로 몽블랑 보다 훨씬 낮기는 하지만, 이 산 위에서 몽블랑과 주변 산봉우리를 잘 볼 수 있다.


이곳의 날씨는 과연 변화무쌍하다. 어제는 오후에는 비가 내렸고,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맑게 개었다. 오늘 아침에는 하늘에 제법 회색빛 구름이 많이 몰려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브레방 산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어제 탔던 케이블카보다는 훨씬 덜 무섭다. 정상에 오르니 과연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평야에 있는 샤모니 마을과 건너편 빙하와 그 위의 몽블랑이 아주 잘 보였다.  


전망대 아래쪽으로 호수가 보였다. 그곳까지 걸어갔다 올까 물었더니 아이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제 산행이 아이들에게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산에 가자고 말 못 할 것 같다.


부모가 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평생 자연과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건강함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기를 바란다. 부모가 줄 수 없는 더 큰 힘과 용기를 자연에서 얻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산 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는 사람들이 준비 중이었다. 한 명씩 2500미터 아래로 뛰어내린다. 나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아이들은 우리도 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한다. 나는 100가지 이유를 대면서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보렴. 엄마가 곧 용기가 생겨서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


구름 뒤로 해가 숨고, 꽤 높은 산인지라 제법 쌀쌀하다. 건너편 산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들과 따뜻한 핫쵸코를 먹었다. 산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200여 년 전 아무 장비도 없이 저 얼음 산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부유한 한 등반가는 시중을 드는 사람들과 이불만 70kg 들고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브레방산의 케이블카



마을로 내려오니 언제 구름이 있었냐는 듯 해가 쨍쨍하다. 거리에서는 마을의 악단이 여러 개의 큰 북을 치며 공연 중이다. 세계의 명산에 둘러싸인 이 작고 예쁜 마을에서 이런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이들과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길가에 앉아서 구경했다. 이 아름다운 마을의 행복한 한때의 느낌과 기억을 아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좋은 기억을 가득 부어주고 싶다.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동네 악단






몽블랑에 처음 등정한 발마와 상금을 걸었던 소쉬르의 동상




높은 산과 산 사이에 길게 형성된 마을을 따라 제법 많은 양의 빙하 녹은 물이 꽤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마을 가운데를 따라 흐르는 빙하수



여행 준비를 하며 구글맵에서 마을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우리가 방문할 곳을 모니터의 2차원 지도 위에서 확인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 곳이 마치 우주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곳 같았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기를 읽었고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마치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어려운 지명과 막연하던 마을의 모습과 주변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곳은 이제 내가 정말 아는 곳이 되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들어봐서 알고 있는 곳이지만 내가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지 그곳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런 미지의 세계에 하나씩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쓰는 물건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벼룩시장이 열렸기에 재미있게 구경했다. 이불 떨이개부터 작은 접시, 향수 샘플 등 정말 다양하고 작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언제라도 색다른 물건을 구경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다. 용도도 모양도 색깔도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생각해내고 만들어 내는 인간들은 독특한 생명체가 분명하다.


오늘도 줄을 서서 가는 한국인 단체 여행단을 만났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그룹은 관악산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의 동호회 같아 반가워 인사를 한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을 것 같은 큰 규모의 중국 식당이 있어서 점심을 먹었다. 백가지의 요리 중에서 고심하여 고른 요리는 한국에서 먹는 짜장과 짬뽕을 더욱 그립게 만들었다.  여행이 한 달을 넘어가니 이제는 아이들이 한국 음식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딸기파이와 초콜릿이 들어간 케이크와 몽블랑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최종 결승전이 열렸다. 프랑스가 우승을 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도 자국의 승리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환호로 시끌벅적하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소란한 밤이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도 2002년 월드컵이 열렸고, 그때 정말 대단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말해주고 보니, 내가 정말 나이가 많은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라 아이들과 함께 빨래를 정리하고, 대강의 짐을 싸 둔다. 기대도 많이 하고 우려도 되었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고 나니 중요한 숙제를 아주 잘한 것처럼 기쁘다. 좋은 숙소에서 3박 4일을 편안히 지낸 것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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