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46일 차 7월 27일 파리
샤르트르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파리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반납해야 하는데 입구를 못 찾아서 주변을 서너 바퀴 돌았다. 우려하던 일 중 하나가 발생한 셈이다. 뭐 이 정도의 고생이야 고생이라고 할 만한 것도 못된다. 하지만 네비가 안내하는 길로는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난감하다. 같은 신호등을 수차례 지나고 같은 곳에서 수차례 유턴을 하기를 한 시간 동안 반복했다. 안 풀리는 수학 문제를 잡고 씨름하는 기분이다. 네비에서 눈을 떼고 주변 도로를 둘러보았다. 빙 돌아서 다리를 건너면 렌터카 사무실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고가가 보인다. 그리고 드디어 렌터카 회사의 지하 주차장에 진입했다.
정작 반납은 5분 만에 끝났다. 렌터카 직원이 외관만 쓱 훑어보고 반납이 완료되었다.
한 달 넘게 발이 되어준 차에게 마지막 선물로 휴대폰 거치대를 주고 오는 바람에, 후에 영국에서 다시 사야 했다.
우버를 불러서 짐을 싣고 루브르 건너편의 숙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에펠타워를 지나치자 아이들이 환호를 한다. 얘들아 파리다.
친절한 기사님이 번지수를 확인해서 문 앞에 내려주었다. 문제는 이 숙소에는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다는 점이고, 일주일간 머물 숙소는 5층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계단도 매우 좁다.
대형 캐리어 두 개를 올려야 하는데 이건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나머지 짐들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낑낑대며 간신히 두 개의 트렁크를 집안으로 들여놓는 데 성공했다. 땀이 뻘뻘 났다. 내려갈 때는 훨씬 수월할 거라고 위로하면서.
더블 침대 한 개와 싱글 침대 하나가 빠듯하게 들어가고 작은 식탁을 벽에 붙여놓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집이다. 아무래도 파리와 런던의 숙소를 고를 때 가장 고심했던 것 같다. 위치를 고려하면 숙소의 가격이 무척 비싸고, 외곽에 숙소를 잡으면 오고 가는 시간과 교통비가 문제였다. 이 숙소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셰 미술관이 도보로 5분 거리라는 큰 장점과 좁은 대신 비교적 저렴한 숙박비에 끌려서 예약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센강 건너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 콩코드 광장까지 산책을 했다. 아이들은 영화나 책에서 많이 듣고 보았던 파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어 흥분한 상태이다.
한국식당을 찾아가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까지 먹었다. 바로 옆 한국 슈퍼에서 각자 원하는 한국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45일 차 7월 28일 파리
여행 초반기를 무사히 마치고 차를 반납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같은 숙소에서 9박 10일 보내니 당분간 더 느긋하게 지낼 수 있다. 45일간 단 하루도 숙소에서 온전히 휴식한 날이 없으니, 파리에서는 늦잠도 자고 쉬어가는 느낌으로 보낼 생각이다.
한 달 넘게 미용실을 가지 못한 아들의 미모를 위해 동네에 있는 미용실에 먼저 들렀다. 원래는 프랑스 작은 마을의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파리 한복판의 세련된 미용실에서 헤어컷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삼십대로 보이는 아저씨 미용사가 가위로 섬세하게 잘라 주었다. 기계는 사용하지 않고 가위로 조금씩 정성을 들여 잘라 주었고 샴푸까지 해주었다. 본인도 만족스러워하니 다행이다.
센강변을 따라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아이들은 십 대 소녀 두 명과 함께 길에서 이불을 덮고 노숙하는 중년의 여성을 보고 아이들이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 딸아이는 자기 또래의 소녀들이 노숙하는 모습에 놀란듯 하다. 구체적인 프랑스의 복지 정책은 모르지만, 사람이란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로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파리를 방문한 것은 6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기 전날이었다. 10월 의 파리는 회색빛이었고 추웠다. 한국에 가서 맞닥뜨려야 할 장애물들 생각으로 마음도 역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하루의 파리 여행. 그 날 무얼 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시절 어린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났던 길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으니 시간이 약이라는 오래된 말이 마음에 와서 꽂힌다.
아주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소르본 대학까지 걸어가며 화려한 상가들과 거리의 조각상,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파리에서의 첫 방문지는 판테온(Pantheon)이다. 판테온은 원래 로마시대에 건축된 신전으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파리의 판테온이 로마의 판테온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한다. 직경이 9m인 대형 돔 지붕과 지붕을 떠받친 기둥들, 그리스식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에는 작년에 사망 후 얼마 전 이곳 판테온에 묻힌 시몬 베일(Simone Veil)과 그의 남편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한국어 옵션이 있는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대여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로비에는 판테온 건물의 구조를 볼 수 있도록 사람 키보다 더 큰 모형이 있어서 아이들이 건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거대한 로비는 높은 천장과 기둥, 아치와 둥근 천장을 볼 수 있으며, 규모와 장식미로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혁명으로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파리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만든 대형 건축물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건 사람들 환심을 사려는 토목공사는 효력이 있구나 생각했다.
지하는 여러 개의 묘실이 있다. 각 방의 크기에 따라 2~6개의 묘지가 있다.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볼테르, 알렌상드르 뒤마와 같은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묘지와 묘지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있자니 왠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도 몇몇 유명인들의 이름과 대략의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깊이 알지는 못하기에 그저 한 곳에 이렇게 많은 유명인의 무덤을 모아 둔 것이 신기한 정도이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근처 중국 식당에서 고기가 들어간 국수를 먹었다. 대도시의 장점 중 하나는 어디서든 세계 각국의 식당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근처 뤽상부르 공원을 들렀다. 공원 한가운데 커다란 연못에서 아이들이 돛을 단 작은 배를 띄우고 놀고 있었다. 아들도 하고 싶어 하기에 하나를 빌렸다. 기다란 막대로 배를 힘차게 밀면 바람을 타고 유유히 호수 위를 미끄러져 간다. 아들 녀석은 배를 따라 그 커다란 연못 주변을 몇 바퀴씩 뛰어다녔다. 한 시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고 배를 반납할 시간이 되어서야 공원을 떠났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에는 금방 결혼식을 마친 듯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파란색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지인들과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과 우리 같은 관광객들로 공원이 활기차다.
16년 전에도 와봤던 조르주 퐁피두(Le Centre Pompidou) 센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반가웠다. 현대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이곳은 특히 딸이 매우 좋아했다. 천천히 걸으며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작품들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것 같은 외관을 보는 것과 건물 밖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일 중 하나이다.
퐁피두 센터에서 사크레쾨르 대성당 (Sacré-Cœur)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파리는 수많은 건물들로 서울 이상으로 복잡해 보인다. 물론 파리 중심지는 서울의 도심과는 달리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해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늦은 오후의 거리를 걸었다. 센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은 분명 파리에 와서 약간은 흥분된 상태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이 이토록 많은 국제적인 도시를 방문한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미 하루치 정보 수용량을 초과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어쩌면 새로운 자극에 지쳤을 몸과 뇌를 위해 익숙한 한국 라면을 끓여 먹었다. 비로소 우리는 마음이 진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