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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Nov 15. 2021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49

그냥 둘이 손잡고 타면 안 돼?

#49일 차  8월 1일 디즈니랜드(Disneyland Paris)


파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디즈니랜드 가는 날이 언제냐고 계속 물어보던 아이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나는 놀이동산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냥 걸어 다니는 거 말이다. 또는 유유히 흐르는 배를 타고 부담 없이 돌아보는 지구촌 마을 투어나 꼬마 열차 정도라면 당장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혈기 왕성한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기구들을 함께 타기에 나는 겁이 너무나 많다.  오죽하면 글의 제목도 겁쟁이 엄마이겠는가. 이제 다 컸으니 둘이 손잡고 타라고 애원과 협박을 수차례 했지만, 무슨 고집들인지 반드시 엄마도 타야 한단다.


학창 시절 어린이 대공원에서 친구들이 모두 꺅꺅거리며 청룡열차를 탈 때에도 멀치감치 서서 구경만 하던 나이다. 마흔이 넘어서 기력이 쇠하였으니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고나면 십 년은 늙을 것만 같다.


이럴 때 강심장의 남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안전한 땅 위에 두발을 굳건히 딛고 서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기프트샵이나 구경하고, 퍼레이드나 보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강심장의 남편이 있었으면 하는 때가 셀 수 없이 많았겠지만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6~7월의 프랑스 날씨는 비 오는 날은 손에 꼽혔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흥분시킨 것은 7~8 층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졌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는 엘리베이터 놀이기구였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니 간혹 건물의 창문이 열릴 때마다 탑승객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고문이라도 당하는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 놀이기구는 할리우드 어딘가에 실제 존재하는 집을 모델로 만든 것이다.


애원과 협박이 통하지 않아서, 어느샌가 맨 앞줄에 아이들 가운데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1층에서 3층까지는 서서히 올라갔다. 이 집에 살고 있는 홀로그램 유령들이 나와서 무언가 설명을 하는데 도무지 집중해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6층 정도까지 급속한 속도로 올라가 일시 정지하나 싶더니 창문이 활짝 열리며 밝은 야외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를 정도면 용감한 사람들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꼭대기 층까지 솟구쳐 오르더니 바닥가까이 까지 급강하를 했다.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제기랄.


충격에 놀란 몸은 5분간 후들후들했지만, 엄청난 과제를 성공한 듯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겁이 많은 엄마나 아빠에게 공포스러운 놀이기구를 맨 처음 타고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그 후의 다른 놀이 기구들이 전혀 무섭지 않게 되는 엄청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미키와 미니의 황금 귀가 달린 머리띠를 착용하고 엘사와 안나, 피터팬, 미키와 미니, 신데렐라와 왕자님이 펼치는 퍼레이드 쇼를 보았다. 나는 본전 생각이 나서 저 인형들은 모두 실제 동화의 주인공들이며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의 나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은 나만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만화에 나오는 거북이인지는 모르겠다.





시끌벅적 요란한 퍼레이드 속에 서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의 놀이동산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자연농원이라 불리던 에버랜드의 기억이다. 복잡한 어른들의 이유로 일생을 통틀어 아빠와 산 세월은 다 합해봐야 일이 년을 넘지 않았다. 당연히 친하지도 않은 아빠와 놀이 공원에 간다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하루 종일 그렇게 철저하게 어색해하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상업적이라고 해도 귀여운 모습이 사랑에 굶주린 내면 아이까지도 위로해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어릴 적 외로웠던 나를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만큼은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 사고 싶다는 것을 평소보다 더 관대하게 들어주었다. 너희가 나만큼 커서 놀이공원을 떠올리면 오늘이 제일 먼저 생각나길 바라.






모든 시설과 캐릭터들이 디즈니 만화 원작이 그대로 재현된듯하지만, 그중에서도 해적선과 나무에 만든 계단과 집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저런 배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고 싶다.
놀이 공원에서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특별한 즐거움






저녁이 되어 놀이 공원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배를 타고 각국의 전통 인형을 돌아보는 지구촌 마을(It’s a small world)이야말로 나에게 최적화된 코너가 아닌가. 시시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정말 좋아해서 의외였다.



수많은 인형들 중에 한국 인형을 찾고 환호했다.
놀이 공원의 마무리는 역시 지구촌 마을이다.


꿈꾸는 듯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디즈니 랜드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성(Sleeping Beauty Castle)에 보랏빛 조명이 비치는 것을 보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우리는 총 이만 오천보를 걸었다.  여행 중 가장 많이 걸은 날이었다. 아마 아이들 인생에서도 가장 많이 걸은 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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