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 Oct 27. 2020

연민을 갖고, 질투는 버리는 진정한 친구

진정한 '친구'란 나에게 연민을 갖고, 질투는 버리는 사람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정말 ‘친구’ 진짜 많았었다

 

그때는 ‘친구’라는 의미를 잘 몰랐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번 나가면 10명 20명 모이는 건 우스웠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모여있는 애들이 있었다.

20대 초반 나의 청춘은 그 여러 ‘친구’들과 가로수길에서 상시 떠들썩하게 보냈었던 것 같다. 꽤나 화려했고, 돌이켜보면 참 즐겁기도 했다.

 

평일, 주말, 휴일 할 거 없이 언제든 부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넘쳐났었는데,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에 갔을까?

 

지금은 다들 각자 사회에서 자리 잡고, 결혼하고, 부모가 돼서 살아가기 바쁜 나이더라.

그 가운데 어떤 친구들은 작은 오해로, 또는 성격의 차이로, 혹은 오래 연락을 안 해서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혹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하나 보내기도 어색한 사이로 변질되어버렸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은 ‘친구’란, 갑자기 미팅자리에서 만난 또래와도 쉽게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혹은 몇 년, 몇 십 년을 따르던 친구가 내 돈 몇 천만 원을 먹고 튈 수도 있는 거더라.

 


이십 대 후반이 그렇더라. 인간관계가 점점 가지치기처럼 정리가 되고,

결국 진정한 친구 한 명이, 그저 그런 인간관계 1,000명보다 나은 것.


나에게 연민을 가져주고 질투를 버려가며, 나의 성공을 묵묵히 응원해주고 박수 쳐주는 친구 한 명이면 이십 대를 헛되이 보내지 않은 거더라.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한 명 있다. 가끔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서로 죽일 것같이 화를 내고 싸우다가도, 그래도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그런 친구가.


한때는, 세상에 친구들이 전부인 줄 알았고, 친구 많은 게 자랑이라고 생각했다.

한명의 소중함보다, 여럿사이에서 받는 관심이 더 좋았다.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나의 모습에 묘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항상 그들 사이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내 뒷얘기가 나오는지 걱정하며 괜한 소외감에 잠 못 이루던 때가 있었다.

 

결국, 삶의 진정한 의미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존중 받는 나의 모습에서 얻는 게 아니라, 나 혼자서 찾아가는 거였고, 내 가치는 주변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보여주는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사랑해주고, 나의 단점마저도 이해해주는 친구 한 명이 옆에서 묵묵히 있어준다면, 정말이지 행복한 거더라.

 

스물여덟. 점점 인간관계에 회의해지고 나 자신에게도 회의해지는 시간들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그 외로움을 채워보려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서, 그리고 정말 진정한 친구 한 명한테서 그 허전함을 채워보자.

 


A friend is someone who understands your past, believes in your future and accepts you just the way you are (진정한 친구란, 너의 과거를 이해하고, 너의 미래를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너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이다.)

 


오늘도 내 옆에 있어주는 진정한 친구에게 정말이지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매거진의 이전글 망한 걸그룹 멤버로 살아가는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