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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킬 May 11. 2021

인도네시아 - 1

여름의 기억


스스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무렵 나의 물리적인 공간은 인도네시아였다.


1년내내 무더운 여름인 적도의 나라. 늘 푸르르고 여유있는 나라. 한국 사람들은 발리, 윤식당을 통해 본 롬복이라는 섬, 정도로 알고 있는 그런 나라.

그 나라는 나의 첫 번째 세상이었다.

물론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인도네시아는 2가지 계절로 구분된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을 나누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기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누군가는 이 계절을 들으면 음? 무슨소리야 그냥 여름인데 비가 오고 안오고로 계절을 나눈단 말이야? 하겠지만, 실상은 굉장히 다르다.

건기. 말그대로 많은 것들이 말라간다. 온도가 높지만 습도는 낮다. 그늘에만 들어가면 기적처럼 시원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여름을 처음 경험해보던 20살의  7월은 정말이지 가혹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들어간 나무 밑 작은 그늘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따가운 햇빛정도를 피해가는 것일 뿐, 찐득한 더위는 어디에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건기에 익숙해있던 20년산 내몸은 도무지 적응을 못했다. 지쳐쓰러져가며 들어간 백화점이며 식당, 카페도 시원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에너지를 아끼려는 정부의 노력은 나에겐 지옥을 선사해주었다. 인도네시아는 에어컨에 관대하다. 왠만한 시내 백화점, 식당 들은 가디건을 필수로 챙겨다녀야 할 만큼 썰렁하다. 아무래도 1년 내내 여름이라 에어컨을 끄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라서 그런가보다. 이렇게 건기를 설명하면 많은 친구들은 되묻는다. 그렇다면 우기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하지않아? 천만에.


우기. 말그대로 비의 계절이다. 하루종일, 일주일내내, 어쩌면 한달내내 쨍하게 뜨는 해는 볼 수조차 없을 지도 모른다. 티비에서 흔히 보는 홍수로 인해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서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 시민들의 모습, 가축들이 떠내려가는 모습, 집이 아예 잠겨있는 모습. 현실그자체다. 그래서일까 인도네시아는 아파트가 훨씬 고급 주거시설일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또 더울새가없다. 더울라치면 비바람과 함께 폭우가 시원스레 쏟아진다. 한국에도 장마라는 것이 있다길래 약간 기대를 했더랬다. 하지만 한국의 장마는 귀여운 소나기 정도더라.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이전의 나이일 때, 나는 한없이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장난기에 장단맞춰주는 어른이었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날 나는 저 정도 비면 머리도 감을 수 있겠는데? 싶었다. 어머니께 “엄마, 저정도 비면 샤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장난스레 물었고 잠시 고민하던 어머니는 “한 번 해보면 정확히 알겠지?” 하시며 샴푸를 꺼내오셨다. 지금같은 미세먼지 많은 세상이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자연환경이 좋은 동네에 살고있었고, 밖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옥상테라스가 있던 3층짜리 집의 구조, 말 그대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 3박자가 고루 갖추어진 그 때는 충분히 가능했던 이야기였다. 둘은 신이나서 깔깔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갔고, 내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라도 안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한다는 의견에 따라 나만 실행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어른이었고 누군가 보게 될 그 끔찍한 상황에 대한 예방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아무튼 신나게 올라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빗속으로 들어갔다. 상상과 현실은 항상 다른법이지. 살이 따가울 만큼 아팠고 생각보다 추웠다. 샴푸를 머리에 뿌려도 거품을 낼 시간도 없이 몸으로 주르륵 흘러내려왔다. 아주아주 바쁜아침에 이렇게 샤워가된다면 지각은 하지않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샤워는 빠르게 끝이났다. 그렇게 들어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뜨거운물로 한번 더 씻어야 했지만 잊지 못할 우기의 추억 중 하나이다. 아무튼 한국 장마는 애교라는 것.

인도네시아를 떠올리면 그리운 기억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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