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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Sep 04. 2020

비 내리는 해돋이공원 거닐며

여름꽃들과의 눈 맞춤

  올해는 길고 긴 장마철에 그렇게 많은 비를 뿌려놓고도 미련이 가시지 않았는지 입추가 지났어도 간간히 비도 자주 내리고 태풍도 자주 연이어 올라옵니다.

  오늘도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니 보슬보슬 비가 내립니다. 이렇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책하면 또 운치 넘치고 우수에 젖어보며 가슴속 밑바닥 어딘가에는 몰랑몰랑 감성이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 너무 좋죠.

  우산 챙기고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 중에 "Kiss  the rain"(이루마 연주)이란 피아노곡을 찾아 틀고 이어폰 귀에 꽂고 후다닥 문을 나섭니다.

   나는 소나기보다 촉촉하게 조용히 내리는 비를 더 좋아합니다. 펼쳐진 우산 위로 빗방울은 수줍게 얌전하게 나직하게 떨어집니다. 바람 한점 불지 않고 조용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산한 사거리를 가로질러 해돋이공원으로 들어섭니다.

   갖가지 여름꽃들과 나무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함초롬히 촉촉합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무궁화 꽃이 나를 부릅니다. 폰의 음악 잠시 작동 정지시키고 한걸음에 달려가 카메라에 담습니다. 파란 잎은 물기 어려 더 짙푸르고 분홍빛 꽃망울은 고개 살짝 숙이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지만 태풍 오기 전의 찌물쿠는 날씨에 꽃님도 지쳤나 봅니다. 나른하게 처져있죠.

  무궁화를 보면 영락없이 흥얼거리는 애국가의 한 소절,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고질로 돼버렸죠.

  코로나 19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현 시국에 지쳐있는 민심처럼 국화인 무궁화도 덩달아 이심전심된 듯이 기운이 빠져 보입니다. 산천초목도 인류의 절규와 안타까움에 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늦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사람도 자연도 지치는 건 매 한 가지, 가을이 빨리 성큼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을바람 선선하게 불어주면 숨통이라도 틔워주기를 말입니다.

  

  무궁화를 뒤로 하고 한참을 걷다 보니 주홍 빛깔의 꽃이 손짓합니다. 애련하게 피어있는 능소화입니다. 주홍빛 꽃잎에 초록빛 잎새에 누군가의 그리움이 방울방울 맺혔나 봅니다. 능소화 하면 떠오르는 전설의 구슬픈 사랑이야기 때문에 빗방울이 애잔한 눈물로 비치나 봅니다.  옛날에 궁녀인 소화가 왕을 기다리다가 난 자리에 핀 꽃이 능소화라고 합니다. 사랑과 기다림의 꽃이죠. 또 옛날에는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가 있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경주와 같은 남쪽 지방의 고즈넉한 옛날 양반 고택의 담벼락에 많이 피어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뜨였었나 봅니다. 화사하게 어여뻐 보이지만 왠지 슬프게 보이는 능소화입니다.

  보라색 비비츄도 눈에 들어옵니다. 등잔처럼 대롱대롱 고개 숙이고 피어있는 꽃망울이 참 겸손하고 소담하죠. 그늘을 좋아해서 큰 나무들 밑의 음달진 곳에서 싱그럽게 자라는 비비츄의 꽃말은 좋은 소식,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고 하죠. 요즘처럼 온 세상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 짠하고 좋은 소식 전해지며 코로나라는 먹구름이 가셔지고 새로운 기운과 기상이 쫙하고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를 맞으며 우산 쓰고 자박자박 공원을 거닐며 여름꽃들과 눈 맞춤하니 가슴속 한편에 똬리를 틀고 앉았던 우울감이 사라진 듯합니다.  현실은 암울하더라도 잠시나마 꽃들의 재롱 속에 빠지며 가물가물 멀어져 간 감성의 끄나풀을 잡고 보니 개운하고 상쾌해집니다. 

  시국이 어둡거나 말거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철 따라 꽃들은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깔끔하게 정리되고 새 출발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세상만사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니 이 어려운 시국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기다리렵니다.

  봄이 가면 여름 오고 여름 가면 가을 오듯이 사계절과 자연의 순환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 삶도 순리대로 자연의 법칙대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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