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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Oct 10. 2020

가지튀김 X 찐만두 = ?

어느 힘든 날 찾았던 최고의 단짝

밥 먹을 곳을 고르기가 유난히 힘든 날이 있습니다.  미식을 즐기는 저에게 메뉴 고민은 일상다반사입니다만, 지난가을 연남동에서의 어느 날은 유독 심했습니다. 처음에 가려고 했던 식당은 홍콩 음식 전문점이었는데, 오랫동안 문을 닫았는지 입구에는 전단지가 쌓여 있고 안쪽으로 보이는 식탁에는 먼지가 끼어 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전화라도 해볼걸 하고 의미 없는 자책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식당, 현지인 요리사가 있어 이국적인 맛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생상태가 문제였습니다. 창문만 열면 바로 나오는 발코니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그 냄새가 안쪽으로 들어오고, 내부 청소를 잘 하지 않았는지 어디선가 쾨쾨한 냄새가 났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찌푸려진 친구의 인상은 도무지 펴질 줄 몰랐습니다. 결국 그 불쾌한 표정이 마음에 걸려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황은 그 후 30분간 더 이어졌습니다. ‘플랜C’부터는 생각해둔 것이 없으니 직접 발품 팔며 찾아보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저도 친구도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평범한 식당에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보군이 상당히 좁은데, 괜찮다 싶은 가게는 하필 또 휴무였습니다. 명절 연휴인 것을 간과했던 겁니다. 늦여름처럼 햇빛이 꽤 셌던 날이었습니다. 배는 고프지, 날은 덥지, 우리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휴무인 식당을 5번째 찾았을쯤에는 짜증이 나지도 않고 아예 해탈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랫동안 친구를 만나며 배운 점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 합니다. 배고프고 힘든데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마음은 너도 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짜증은 나는데 어디에 풀 곳은 없구요. 이럴 때 누군가 남의 탓을 하는 순간 즐거운 분위기는 와르르 무너지고 그저 배만 채울 곳을 찾으러 떠나는 불편한 여정이 되고 맙니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을 때 흔히 벌어지는 일이죠. 만족스러운 식당을 찾지 못했던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상황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우연히 벌어진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의 피로가 한계에 달한 걸 느낀 순간 저는 쐐기를 박기로 했습니다. 이제껏 고민한 것은 잊고 ‘이름 들어본 식당 중 지금 여기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을 가자고요. 




그렇게 결정된 곳이 중식당 하하(哈哈)였습니다. 만두전문점이라 쓰여있지만 사실 가지튀김으로 유명한 곳이라 주저 없이 가지 튀김 한 접시를 시켰습니다. 1시간 가까이 연남동 동네를 돌아다니며 생긴 피로는 시원한 칭따오 맥주 한잔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청량한 맥주 한 모금에 이어 매콤달콤한 가지튀김 한입. 부드러움과 바삭함을 동시에 가진 튀김옷은 고소한 가지의 식감과 잘 어울렸습니다. 



 가지튀김과 함께 주문한 것이 찐만두였습니다. 평소 중식당에서는 군만두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미 튀김을 골랐으니 군만두보다는 찐만두가 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궁합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가지튀김이 바삭하고 기름지고 짭짤하다면, 찐만두는 부드럽고 담백하고 고기 향이 잘 느껴집니다. 가지에는 없는 육향을 만두가 채우고, 만두에는 없는 바삭함을 가지튀김이 살려내 줍니다. 상호보완적인 메뉴의 시너지는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울리는 두 요리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각각의 요리를 따로 먹었을 때의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두 요리를 음미하며 아까의 여정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짜증이 날 법한 상황에서도 순조롭게 맛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둘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런 관계여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요. 친구는 어떤 맛집을 찾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그걸 언제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실행이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반면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걸 어려워하지만 일단 문제가 결정되면 그것을 추진력 있게 해결합니다. 


 친구가 두 번째 식당의 위생상태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불유쾌한 냄새 속에서 내키지 않는 식사를 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제가 식사할 곳을 고를 마지막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30분이 더 넘게 같은 골목을 빙빙 돌았을겁니다. 이렇게 서로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나에게 없는 부분을 상대에게 맡긴다면 공동의 문제는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 친구와는 가지튀김과 찐만두처럼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때 같은 일이 다른 날에도, 또 다른 날에도 계속된다면 이제 우리는 서로를 언제든 믿고 또 공생할 수 있는 사이가 되겠지요. ‘각자도생’과 ‘혼밥 혼술’이 유행하는 오늘날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저는 이런 사이가 앞으로도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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