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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Oct 25. 2020

만두와 덤플링

만두가 영어로 뭐에요?

만두를 가리키는 영단어 'Dumpling'은 17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덩어리를 뜻하는 영단어 Lump의 변형인 Dump에 ling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만두 TOP 4(Top 4 MOST POPULAR KOREAN DUMPLINGS)라는 글을 해외 블로그에서 읽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세계 각국의 유명한 만두 요리를 짧은 글로 정리했는데, 그중 한국의 것이 문득 눈에 띈 것입니다. ‘만두 맛집’이 아닌 ‘만두 요리 종류’를 정리했기 때문에 이 외국인의 시선에서 한국 만두를 어떻게 나누었을지 꽤 궁금했습니다.


 이 블로거가 꼽은 한국의 유명한 만두는 “만둣국, 편수, 만두, 송편”이었습니다. 이 분류를 보고 저는 두 가지 점에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당황스러웠다기보다는 호기심이 동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맞을 것 같군요.


 첫 번째는 네 종류의 만두(dumpling) 중에 만두(mandu)가 들어가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찌고 굽고 삶고 튀기고 국물에 빠트린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만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외국인도 mandu를 그와 같은 의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세 개와 같은 층위의 관계가 아니라 포함관계라고 인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추측컨대 만둣국은 만두(dumpling)가 아닌 수프(soup)에 속한다고 생각했고, 편수와 송편은 만두와 그 생김새가 달라서 다른 요리로 분류했을 겁니다. 우리는 당연히 만둣국도 편수도 모두 만두요리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요리들을 처음 접한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분류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는 TOP 4  만두요리에 송편이 들어가 있던 것입니다. 만두는 식사, 송편은 간식. 우리에게 이 둘은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구분됩니다. 하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이 둘이 비슷한 종류로 묶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긴 고기와 채소 대신 팥이나 곡식이 들어가고, 그 크기가 조금 작은 것을 제외하면 우리가 흔히 먹는 만두와 똑 닮았습니다.


 이 모든 혼란과 궁금증은 결국 덤플링(dumpling)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어사전을 보면 덤플링은 ‘간이 된 반죽 공’ 정도로 정의됩니다. 그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덩어리를 뜻하는 영단어 Lump의 변형인 Dump에 ling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만두는 영어로 dumpling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dumpling이 만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논리가 서로 다른 문화권 안에서는 꽤나 큰 혼란을 야기하는 셈입니다. 만두와 덤플링의 관계처럼, 언어가 달라지면 어떤 단어도 동일한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하나의 단어가 갖는 의미의 스펙트럼은 문화권마다 너무 다릅니다. 국가, 지역, 심지어 개개인마다 다를지도 모릅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다 보니 지구 반대편의 동료와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잦습니다. 이직 면접 때만 해도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시죠?’라는 질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 읽기 쓰기 실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탄탄하게 채워져 왔을 테니까요. 이게 글인가 암호문인가 싶을 정도로 배배 꼬아 낸 수능 영어 지문을 읽으며 독해 실력은 원어민급으로 성장했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영어 문장을 문법에 맞게 쓰는 것과, 그 언어를 평생 모국어로 써온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장문의 메일을 써도 잘못 쓰인 단어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기는 충분합니다. 그 단어가 ‘결정’, ‘확인’처럼 문맥상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소위 ‘비즈니스 매너’에 관한 것은 심지어 더 어렵습니다. 글에는 사람의 성격과 감정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같은 메일을 쓰더라도 ‘확인 바랍니다.’와 ‘확인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의 느낌은 다릅니다. 이 사소한 어감의 차이가 영어라고 없을 리 없습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영어 실력은 아직 원어민처럼 발전하지 못해서,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인상은커녕 ‘나는 당신에게 어떤 적대감도 없고 부담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정도를 간신히 나타내는 데 그치고 맙니다.


 단어의 뜻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다른 언어권 사이에서 일어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양쪽이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입니다. 


 사실 언어로 인한 불통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쓰는 언어도 같은데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꼬박꼬박 우기기만 하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로의 생각을 차근차근 들어주지 않는다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편수처럼 차가운 머리, 찐만두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줍시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면, 최소한 말은 통하는 상대를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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