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기준은 내가 직접 정해야 한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살수 없다. 살면서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삶의 기준을 직접 정해야 한다.
삶의 기준을 정할 때 남을 의식하지 말자. 삶의 기준을 허들이라고 할 때 남을 의식하고 무리하게 높이 잡으면 달리다가 계속 걸려 넘어진다. 멘탈이 털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겁난다. 적당한 허들은 넘어지지 않고 결승선까지 달릴 수 있다.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다음 경기를 준비할 때도 의욕이 생긴다. 삶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남을 의식한 높은 기준은 나를 지치게 하고 자칫 삶의 목표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다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큰돈 벌고, 강남에 집 한 채 있고, 차는 삐까뻔쩍이다. 이런 얘기를 접하면 남을 의식하게 된다. ‘남들이 저 정도인데 나도 비슷하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허들을 올린다. 물론 긍정적으로 목표를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따라하려다 큰 코 다친다. 성공의 이면에는 피땀 흘린 노력이 있기 마련이다. 주식도 꾸준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극도로 절제하는 과정이 있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 허들 높이만 맞추려하지 말고 과정에 허들을 맞추고 노력해야한다.
남을 의식해 허들을 높이는 예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건 자동차와 가방이다. 금융시스템이 너무 잘 되 있어 처음에 큰돈 안들이고 구매할 수 있다. 미래의 소득을 여기에 묶어 버리게 된다. 감가상각 될 것들을 미래의 소득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참 아이러니 하다. 차부심, 하차감이라는 말을 들어 봤는가? 이런 말도 적당한 허들의 기준으로 타는 사람들은 쓰지도 않는 말이다. 남들을 의식해 허들을 높여 과시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타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자동차나 가방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이겠지만 적당한 내 기준을 정해야 한다. 매월 할부 값 내면서 허덕이면 멘탈도 허덕인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적당한 허들은 삶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 현재에 안주하라는 말이 아니다. 허들은 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적당한 허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기준이다. 남을 의식해 허들을 올리면 삶에 과부하가 걸려 몸과 마음이 지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이 썩어 날 수 있다. 삶이라는 경기를 계속 치러내려면 적당한 허들을 넘으며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적당한 허들을 넘으며 살면 만족감이 높아지고 자존감도 높아져 일도 잘되고 성취감도 얻는다. 멘탈이 넘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