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도사용쌤 Sep 24. 2020

결국 아이는 수학이 아닌 사람을 배운다.

집사람이 8살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을 보니, 아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엄마의 눈은 도끼눈이 되고 입은 미운 말을 쏟아냅니다.
"야! 이것도 못해"
"엄마 미워" "나 안 해!" 아이는 울고불고 자지러집니다.


안녕하세요. 용쌤입니다.

이게 어디 우리 집만의 풍경이겠습니까? 집사람은 우리 학원 1타 마감강사입니다. 훌륭한 강사이며 심지어 제정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안 된다.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객관적인 정답은 없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르치는 사람 태도의 중요성입니다. 집사람은 아들을 쥐 잡듯이 잡고 나서 늘 미안해합니다. 


말로는 "남들을 흉보면 안 돼"라고 가르치고

본인은 남들을 흉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흉보는 모습을 따라 배웁니다.


말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라고 가르치고

자신은 감정에 치우친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감정에 치우친 모습을 따라 배웁니다.


말로는 "열심히 공부해라"라고 가르치고

본인은 공부 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공부 안 하는 모습을 따라 배웁니다.


요절한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는 '논리학과 윤리학은 근본적으로 같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무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은 알고 행하는 것을 윤리학이라고 한다면 왜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이성적인 판단하는 것이 논리학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아야 합니다. 아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배움이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가 15년간 수학을 가르치면서 가장 마음이 힘든 순간은 언제인지 아세요?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이해는 하는데 자기 걸로 만들지는 못할 때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책상에서 일어날 때 마치 배운 지식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듯 합니다. 배움의 손실(Loss)을 줄이고자 악을 쓰면서 가르쳐 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정성을 듬뿍 담아 가르쳐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게 해소지 않습니다. 배움의 손실(Loss)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습, 복습, 노트 정리, 시험, 당근과 채찍 등 떠오르는 방법들은 모두 맞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봐도 여전히 Loss는 상당히 큽니다. 


Loss를 최소화시키는 최선의 전략은 체화된 지식(embodied knowledge)이고 모범이며 태도입니다. 강사가 체화된 지식을 전달해야지 '글자 그대로만' 전달한다고 지식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가르치는 지식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모범은 최선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너는 학생이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는 이미 다 배운 선생이잖니' 이런 생각으로 가르치면 가르침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수업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태도 또한 언어보다 중요합니다. 의사전달은 언어가 40%이고 태도가 60%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목적지에 잘 심어두고자 한다면 태도에 대해 숙고해봐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내용을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가르치면 정말 사소한 내용이 돼버려 가치를 상실합니다. '가르치려는 내용'에 온전히 집중하고 앎의 즐거움과 기쁨을 표정과 제스처로 전달해야 합니다. 


수능 킬러 문제를 자기 걸로 소화하고 풀어내는 수험생은 1%입니다. 킬러 문제라는 비호감적인 표현과 달리 매우 아름다운 깊은 사고입니다. 태권도로 비유하면 3회전 돌려차기입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누구나 이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수능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킬러 문제를 배우면 내용을 이해하는 수험생은 10~20%입니다. 문제 풀이를 이해는 하지만 내면화하고 비슷한 유형에 적용하지는 못합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체화되고 태도와 함께 전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이해의 수준'에서 학습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자각하면 10~20 % 의 학습자들이 킬러 문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배움을 숙성시키고 체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태도의 변화까지 보여주고 학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배움에서 대가를 찾아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옳은 지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옳은 지식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가를 만나서 그 사람을 온전히 배우는 것이 지식을 담을 그릇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기원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수학을 공부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