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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도사용쌤 Sep 18. 2020

왜 수학을 공부하는가

루저로 살아온 경험으로 배우는 수학 공부의 진정한 가치

내가 인생에서 스마트한 생각으로 보란 듯이 성공한 사람이라면 성공담을 나누며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수학을 바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감동을 줄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반면교사를 통해 배울 수 있지 않은가! 성공담 못지않게 실패담은 유익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돌이켜보자. 대학 이름 하나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 연, 고 셋 중 하나는 꼭 붙잡고자 했다. 수원의 명문 수원고등학교에서 내신 18등급 시절에 3등급이었고 수능 모의고사는 상위 3%를 유지했다. 대학별 고사 모의시험은 상위 1%선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 수능 점수는 좋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수능 200점 만점으로 170점 이상은 연고대를 특차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내 수능 점수는 156점이었다. 수능 이후에 고3 마지막 기말고사가 있었다. 이미 내신점수가 결정되었기에 대충 보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너무 귀담아 들었다. 기말시험을 풀지도 않고 백지를 제출했다. 내신등급이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달라졌다. 내 인생에서 이 순간은 나도 해석이 되지 않는다. 수능이 끝나고 허탈함이 가득했었던 것일까?

결국 나는 한양대에 입학했다. 서울대의 서울이나 한양대의 한양이나 나라의 수도 이름을 쓰는 대학이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겠냐는 위안을 채웠다. 어느 선배는 서울대는 연구원으로 많이 빠지고 연고대는 잘난 척을 많이 해서 기업들이 회피한다. 한양대 애들이 말을 잘 들어 취업이 잘된다고 매우 설득력 있게 말해줬다. 술잔을 권하며 "학점이 너무 높아도 사회생활 경험이 없다고 보는 거야. 취업을 잘하려면 술을 잘 마시게 가장 중요해"라고 가르쳐줬다. 선배들만 잘 따라다니면 인간관계로 모든 일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 시절은 어느 정도 그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IMF가 세상을 바꿔놓았다. 학연, 지연으로 두리 뭉실 살던 시대는 사라졌다.


20대 시절에 술, 담배를 경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 대학을 다닐 때는 밤새 술 마시고 강의를 빼먹었다. 술과 담배에 찌든 삶이 건강할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도 못해 인간관계도 무너졌다. 일상의 성실함이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상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된 불평등과 부조리가 가득하다고 푸념하는 것이 지성인의 멋인 줄 알았다. 성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기적을 제공해줄 것이 생각했다. 외형적으로 멋지게 보이려 포장했지만 남과 나를 비교하는 열등감 속에서 술과 담배로 3류 인생을 위로받고자 했다. 담배 연기에 한숨을 내쉬며 멜랑꼴리함이 인생의 멋이라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도 들어갔다. 취업을 위해 버둥거리며 10년을 살았는데 직장생활은 내 기대와 달랐다. 정확히 짚어보면 누군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인생의 외투가 서서히 불편해졌다. 2년의 직장생활 끝에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서른 살에 나는 퇴사를 하고 수학강사의 길을 선택했다. 수학은 내가 남들에게 의지 않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길이었다.


'왜 수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우선 '왜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가?'에 답하는 게 쉬울 것이다. 중고생 수학을 가르친 15년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수학 교육을 업으로 삼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족여행도 다니며 부모님 냉장고도 사드렸다.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야 할 구실이 나에겐 충분이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

많은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이다. 처절한 입시 전쟁을 겪는 수험생에게 물어볼 때 다른 대답이 모두 허구로 느껴질 뿐이다. 입시가 목전에 있을 때는 전투에 나가는 전사의 마음이고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의 마음이다.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는 대학이다. 대학은 왜 수학 점수로 줄을 세우는가? 인재를 선별하면서 수학 문제풀이가 중요한가?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수학 문제풀이 능력이 우수하다고 수학적 사고력이 우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학 교육과정은 이 괴리를 줄이기 위해 개정을 거듭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심도 있게 살펴야 하니 지금은 수학 공부로 포괄하자. 수학 공부가 인재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인재는 수학을 잘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면서 겪은 훌륭한 일들을 해낸 인물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모두 수학을 잘했을까? 범위를 좁혀 자신을 돌이켜보자. 학창 시절에 외운 근의 공식이 살면서 유용했는가?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 수학 실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는가?


수학을 잘해야 인재가 된다는 논리로 풀어내기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수학이 그렇지 않았다. 외운 것을 그대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하고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모습은 내가 살면서 배우고 깨우친 인재상과도 맞지 않고 훌륭한 일들을 해낸 인물들과도 거리가 멀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다듬고 수정해야 한다. 전달 방법과 메시지가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아니고 '생각하고 생각하라. 전략을 수립해라',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을 발견하면 함정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달라진 메시지를 학생이 그대로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나조차 수학을 통해 스마트한 생각의 힘을 키우지 못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배운 수학은 공식에 대입하는 기술이었고 수학을 업으로 삼아 온 10년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내 인생도 스마트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학 공부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이 없다.  '용쌤은 수학을 잘해서 스마트하게 살고 있나?'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순간 깨우쳤다. '아! 내가 나부터 구해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쌤이 사는 모습도 그저 그러네'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도록 내 인생을 놔둘 수 없다. 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공부와 인생의 양분할 수 없는 진리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답이 없다. 이건 처음 생각보다 사이즈가 커졌다. 나에도 유익한 삶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왜 수학을 공부하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말로 전달할 수 없다. 보여주는 것이다. 수학 공부를 통해 지혜롭게 스마트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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