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수학 공부한다면 그 끝에 정상은 없다.
나는 수학강사를 업(業)으로 산다. 나에게 '수학 문제'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1년에 한 번 치르는 수능 문제를 보며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기대한다. 수능 시험날 오후에는 인터넷에 출제된 문제가 탑재된다. 시험장으로 보낸 수험생의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보며 '두려움과 떨림'을 공감한다. 졸업 후에 한참 지나서 찾아오는 제자들 얼굴에도 그들이 치른 수능 문제가 어른 거리기도 한다. 세대의 고민이 수능 문제에도 반영된다. '왜 평가원에서 이 문제를 출제했는가?' '왜 이런 유형은 출제에서 제외되었을까?' '최근 사회적 이슈가 반영된 것인가?'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수능 시험지에도 반영된다.
나는 2014년까지 수학 실력에 확신이 있었다. 수능 문제에 대한 나만의 솔루션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유형에 대한 접근법을 세세하게 구분해서 수업하고 있었다. 수학이 힘들다는 학생에게 내가 시키는 것만 잘 따라오면 잘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공부를 못하면 학생이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라고만 생각했다.
나에게도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2014년 수능 문제를 풀면서 처음 들었다. 수능 30번이 안 풀린다. 수업은 해야 하니 해설을 보고 이해해야 했다. '수학 선생이라도 문제가 안 풀릴 때도 있으니깐'
나는 모든 유형에 따른 솔루션을 10년이 넘도록 정리해왔기 때문에 어떤 참고서의 도움 없이도 서너 권 분량의 책을 쓸 수 있다. 연필만 충분히 많다면!
"동탄에는 제대로 된 수학학원이 없어요"
상우는 나의 문제 풀이 기술에 감탄하며 나를 치켜세우느라 고3 끝물에 동탄에서 찾아온 자신의 명분을 찾았다. 수도꼭지를 틀어 쏟아붓듯 최대한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수능을 치르러 보냈다. 수능성적이 좋지 않았다. 상우는 만족스럽지 않은 수능 성적에 12월에 바로 기숙학원으로 재수를 시작하러 들어갔다. 이듬해 6월, 상우가 다시 왔다. 재수학원에서 속앓이를 안 봐도 알 수 있듯 몸무게가 10kg가량 빠져 통통하던 얼굴살이 쪽 빠졌다. 우리는 9월 모의고사까지 전력을 다했다. 재수학원에서도 4등급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 전체적인 개념 틀이 만들어지자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9월 모의고사에서 96점!!
1등급이다. 나는 성공사례로 네이버 카페에 후기를 올렸다. 수능까지 우리는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9월 모의고사에서 1등급까지 나왔는데 실제 수능성적은 4등급이 나왔다. 상우 어머니는 나에게 깊은 믿을 갖고 동생도 보내셨는데 실망이 크셨는지 수능 이후에 동생도 오지 않았다. 연락이 끊겼다. 페이스북을 통해 지방대에 들어간 것 정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가 실망을 안겼을 때 아픔은 오래간다. 나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두 다리 펴고 잘 수 없었다. '우리 공부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모의고사를 넘어 수능성적까지 만들어내는 데 무언가 부족했다.
내 수학 실력에도 문제가 있다. 2014년 수능은 시간이 없어 해설을 보고 이해했지만 2015년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풀었다. 안 풀린다. 무언가 부족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7년 1월, '거꾸로 읽는 수학' 이란 주제로 수학강사 세미나를 열었다. 초등수학 개념만으로도 고3과정인 미적분과 기하를 학습할 수 있다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의 본체는 하나이고 책한권 분량이다. 이것을 중첩적으로 잘게 잘라내어 초,중,고등 수학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10년간 학습 분량으로 길게 늘려놓은 것이다. 계단식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중학 수학을 알아야 고등수학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길로 가본 적이 없는 여행자와 마찬가지이다. 20세기 초 라마누잔은 인도 빈민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책 한권으로 수학을 독파했다. 수학의 역사 속에는 10년 이상 차근차근 배운 후에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모범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존의 제도와 틀 밖에서 깊이있는 사고를 통해 단순한 원리를 발견하는 통찰들의 연속이었다. 교과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핵을 이동한 '거꾸로 수업'을 통해 학습자의 인지과정을 이끌어주는 수업으로 고등과정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견해이다.
내 '거꾸로 세미나'에 지원한 초등수학 강사는 20명이었다. 6개월의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미적분과 기하를 온전히 이해한 강사는 1명이었다. 충분한 학습 동력이 부족했다. 그 후에 나는 혼자 연구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2017년, 18년은 고등 신규충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을 위한 수학이 아닌 내가 진짜 공부로 수학 문제를 접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역대 모든 기출문제를 다시 풀어보며 추세를 관찰했다. 문제 자체에 주목해서 풀이를 정리했다. 기존의 문제풀이 기술을 잊어버리고 문제 자체에 주목했을 때 신비롭게 풀리는 현상을 경험했다. 이것을 계발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았다.
2019년 3월, 수능 킬러 문제 해체 세미나를 열었다. 본질에 집중해보자는 의도로 핑크마티니의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이란 노래를 1차 세미나에서 들려줬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우뇌의 역할을 강조했다.
20명의 참가자 중에 10명이 2차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빨리, 많은 문제를 풀어줘야 하는 입시 현장에는 아직 적합하지 않은 접근이었다. 분당에서 강의하는 김형민 선생님이 "습관적인 풀이로 접근하는 문제점에 저도 공감합니다"라고 말하며 나의 문제풀이 접근에 동의했다. 형민 선생님을 포함한 소수의 수학 선생님들과 세미나는 1년 동안 진행되며 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많은 의견이 이루어졌다.
킬러문제 정복될 수 있는가?
1924년 러시아 체스 그랜드 마스터 알레힌은 26명의 상대와 체스게임을 동시에 진행한다. 12시간에 걸친 경기 끝에 성적은 16승, 5패, 5 무승부였다. 26명은 당대 세계 최고들이었고 알레힌은 경기판을 보지 않고 게임을 진행했다. 메모장도 없었다. 블라인드 체스의 기록은 2011년 독일의 마크 랑이 46명과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재경기에서 이세돌은 게임 상황에 관계없어 보이는 무의미한 돌을 '신의 한 수'로 놓는다. 무의미함이 알파고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의미가 있는 움직인가 아닌가 이것이 숨은 비밀이다.
2010년 대한 산악연맹은 오은선이 히말라야 8천 m 14좌를 완등 하지 못했다는 청문회 결론을 낸다.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7인의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삶의 기로가 결정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등산도 복기가 가능해야 신빙성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수능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평가원, ebs에서 제시한다. 여기에는 의식의 흐름에 맞지 않는 풀이가 대부분이다. 전에는 이 풀이를 보고 이해되면 그 방식대로 수업했다. 그러나 내가 혼자 힘으로 답에 도달한 경험을 한 이후에 다시 보니 이것은 제대로 된 풀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학생은 틀린 문제는 모범답안을 보며 미쳐 생각하지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따라서 풀이는 의식의 흐름에 합당해야 한다. 답이 나오는 길로 짜맞춘 풀이는 학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혼자 힘으로 푼 것과 해설 도움을 받아 푼 것은 확연히 다르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등반하는 가운데에서 느끼는 감정, 바둑기사가 바둑알을 하나 두면서 그 끝을 생각하는 그 순간과 다르지 않다. 수능 킬러 문항을 붙들고 있는 학습자가 느끼는 혼동의 경험은 위조될 수 없다. 이제야 칠흑 같은 오류의 바다를 두려움을 품고 헤쳐 나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