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치기』,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혀의 미래』를 보고
정가영에 대해서 생각한다. 정가영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재밌다. 정가영의 작품은 단순해보이지만 내면에 숨겨져있는 날 것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정가영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솔직하고 당당하다. 나는 그런 캐릭터들에 마음을 이끌리며 함께 웃고, 함께 부끄러워하게 된다.
정가영은 대단하다. 대한민국 감독 중에서 내가 이름을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봉준호, 박찬욱, 정가영 정도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 이름은 기억하지만, 감독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감독을 말하고 싶은 순간은 『동주』 감독. 『벌새』 감독.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된다. 추가로 노래는 반대다. 노래 제목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가수의 이름만을 안다. 새소년 노래. 아이유 노래. 이렇게 부른다.
아무튼 정가영은 왜 대단한가 계속 이야기 해보겠다. 만약 영화도 음식처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정가영의 영화를 모두 맞출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평생 참이슬만 먹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은 냄새만으로 처음처럼과 참이슬을 구분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처럼. 나도 전부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가영의 영화에는 정가영스러움이 있다. 정가영의 영화 속 주인공은 보통 가영이로 감독 본인이 등장한다. 매번 조금씩 다른 가영이가 등장하지만 영화 전체를 경쾌하게 만드는 톡톡 튀는 가영이의 매력은 한 번 알게 되면, 정가영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다.
정가영은 대단하다. 만약 정가영과 내가 같은 학교를 다니고, 그 정가영이 (만에 하나) 내게 시놉을 보여주며 함께 영화를 찍겠냐고 물어본다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랬다면) 나는 싫다고 말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왜나하면 정가영의 작품에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뭔가 사회적인 메시지나 철학적인 의미. 누군가 보았을 때 있어 보이는 스토리. 나는 아마 정가영에게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별로다. 구리다. 등등 그 외 수많은 진부한 말들 중 하나를 골라 말하며, 스스로 얼마나 진부하고 구린 사람인지를 증명하고 말 것이다.
나는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고 외면한다. 찌질한 상상과 현실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정가영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정에 솔직하게 정면돌파하는 행위들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면에서 과장을 심하게 더하자면 내게 정가영은 뒤샹의 변기와 같다. 나는 그저 변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가영 훌륭하게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나는 정가영을 모르지만 정가영의 작품을 보면서 어떤 사람일지를 상상한다. 정가영은 주로 연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한다. 실제 정가영은 어떤 연애를 할까. 헤어진 애인의 집 앞을 찾아가 밤을 새워본 경험은 있을까. 이런 이야기는 너무 클리셰일까. 하지만 왠지 정가영은 이런 경험으로도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애를 할 때는 차이는 편일까 차는 편일까. 이런 별 것 아니지만 사실 별 것일 일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전해지는 정가영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고,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시원한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마음일까. 적어도 봉준호나 박찬욱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마음과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조금 더 깔끔하고 시원하게 당신이 멋지고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그야말론 깨끗한 존경. 아무튼 정가영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