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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 Oct 20. 2021

쌓아놓은 책들처럼

쌓아놓은 나의 행복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황체기에는 컨디션 난조에 달달한 디저트를 비롯해서 먹성이 왕성해진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난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 게 몸이 무거워지는 것인데, 정말 정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인스타에 그렇게 열심히 업로드하고 필사를 하며 책을 읽던 어제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파와 한 몸이 되고 대부분을 누워있는다. 그리고 좋은 핑계라도 생긴 듯 생리하기 전이라서 기분이 안 좋아! 나 지금 기분 엄청 안 좋고 몸 되게 무겁거든?!이라고 자신에게 남편에게 선언(?)한다. 누가 보면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정작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처럼 오만한 소리를 내뱉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난 대단한 사람이 되기는 걸렀구나. 이렇게 평생 간장종지만 한 그릇으로 살다 죽겠구나. 책을 읽으면 뭐하나, 읽을 때마다 느끼고 울고, 번뇌하면 뭐하나 돌아서면 까먹고, 화내고 있고, 삐지고 있고, 기대고 있고, 짜증내고 있고, 미워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몸을 좀 움직여서 책상 앞에 앉으면 또 그렇게 기분이 좋다. 참 신기하다. 내가 쌓아놓은 노트와 그 주에, 그 달에 읽을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글을 써보려고 한다. 되지도 않는 글을 쓰려고 한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그렇게 또 쓴다. 누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서 다 자기만족이라고 하면서 또 쓴다. 쓰면서 또 마음이 정리가 되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는 책을 출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다. 그렇지만 책으로 돌아가면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나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는 걸렀구나 낙심힌다. 생리가 시작되면 먼지처럼 쌓였던 낙심도 후후 불어낼 수 있다. 그렇다 그 감정은 입김으로 후후 불어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하찮다. 그런데 그 하찮은 마음을 이겨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는 거다. 그리고 또 쓴다. 나조차도 읽지 않을 그런 글을 또 써본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거창한 말들은 유치한 문장으로 탈바꿈한다. 분명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을 때는 꽤 근사한 문장이었던 것 같은데, 오 나 좀 멋진데 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글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쁘지 않다. 사실. 나쁘지 않다는 마음에 만족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해서는 발전이 있을까?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감정은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행복이란 재채기처럼 갑자기 훅 하고 찾아온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덜컹하고 찾아온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는 게 좋다. 그냥 오늘의 할 일을 하면서 행복이 덜컹하고 찾아오는 순간이 온다면 맘껏 즐기면 되는 거다. 쌓아놓은 책들과 이다음 읽을 책의 순서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면 내가 느낄 행복감도 나를 차례차례 기다리고 있다. 그거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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