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철학을 찾아서
몇 년 전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 사이에 주식이 급격스럽게 인기를 끌었다. 은행 이자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요즘 세상에 그저 개미처럼 꾸준히 돈을 통장에 꼬박꼬박 모으는 것은 미련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바보가 되길 원하면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여전히 지향했다. 주식을 통해 얻는 이익을 위해선 쏟아야 할 에너지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책을 읽어도 실용성 있는 책들보다 문학이 좋다. 이 상황에서 어떤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느냐 고민하는 일상보단 어떻게 하면 구원에 가까운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일상을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먹어야 하고 물건들을 사야 하고 그 선한 일상을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적당히 일하고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소소한 취미를 누리며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이란 어릴 때부터 그래왔듯이 늘 소소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호주에 와 정착하려 애쓰는 동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몇 년 사이 나와는 아주 다르게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본다. 내 또래는 어느 정도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았거나 개인 사업을 시작해서 집을 사고, 아이를 양육하며, 여행도 다니며 운동도 하며 기부도 하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면 정말이지 아주 잠깐 나는 여태 뭘 하며 산 걸까? 내가 여태 살면서 이룬 건 뭐가 있을까? 하며 자기혐오를 시작한다. 나의 가치는 내 통장에 꽂혀있는 돈의 액수와 내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내가 운전하는 차가 나타내주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낭만 있게 살고 싶은 꿈을 꾸며 일상을 누리는데, 흔들릴 땐 그런 생각에 무력하게 휩싸여 민들레 홑씨처럼 나풀거린다. 그들은 내가 낭만에 투자할 때 주식에 투자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노력을 무지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말이다.
요즘 제일 꽂혀있는 단어는 '밸런스'이다. 일도, 감정도, 건강도 극단적이지 않고 적절한 중간지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큰 관심사라고 볼 수 있다. 한곳에 꽂히지 않으면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나의 운명을 이미 알아차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회에 귀감이 되고 변화를 일으켜야겠다는 포부는 없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한 명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도와주고 일하는 곳에서 친절하고 다정한 눈빛과 말투로 상대를 대하며 나와 마주치는 모든 아이들에게 따듯함을 전해주자. 그러기 위해선 나도 건강해야 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아빠도 이렇게 말했다. "모두 정답은 알지만, 실천이 어렵지"라고. 그 실천을 위해서 멘탈 건강을 먼저 챙겨야 했다.
정말 운동을 시작했더니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꾸준한 운동, 하루 20분 이상 햇빛 샤워, 건강한 식습관, 그리고 일터나 타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취미생활. 피트니스센터에 가는 길은 참 무겁지만 운동을 마치고 나오면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크게 다르고, 그 여파는 그다음 날도 유효하다. 그래서 무리한 운동은 공부나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으로 정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내가 지금 지내는 모든 과정에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다면 성공이든 실패든 무슨 상관일까. 인생에 실패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좋은 결실을 내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용기가 과연 나는 정말 있을까?
운동으로 멘탈을 제대로 돌려놓고 있는 중인 나는 무너질 뻔한 내 인생철학을 다잡아본다. 그래 나는 낭만 있게 살 거야. 그렇지만 열심히 할 거야. 열심히 낭만 있게 살자. 실패는 없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