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JTBC 마라톤
사람들이 계속 다왔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걷지 마세요!! 할 때쯤 언덕에서 살짝 내리막길로 피니시 라인이 보였다. 보라색 문이었다. 내 옆과 앞에서 속도를 맞춰주던 언니가 이제 집에 가자!! 진짜 다왔어!! 라고 말했다. 진짜 보이는데 참 멀기도 멀구나 싶었다. 내 시계는 이미 42킬로쯤 되었는데 주로의 거리가 좀 더 긴 것 같았다.
막판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달려 피니시 아치를 밟았다. 도착. 저기만 가면 쉰다!! 생각했는데 드디어 도착해서 안 달려도 되니 너무 좋았다. 언니가 손잡고 들어오자고 해서 손을 잡고 딱 같은 기록으로 들어왔다. 나는 완주하면 눈물 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냥 안 뛰어도 되니 좋을 뿐이었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기록은 내 시계로는 4시간 1분, 공식 기록은 4시간 3분대가 나왔다. 뭐 어쨌든 서브 4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결국 완주는 해냈다.
완주는 물론이고 2시간대, 3시간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잘 달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좋은 기록뿐 아니라 완주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 온몸과 정신과 마음을 4시간 정도 바쳐 나는 겨우 이뤄낼 수 있었다.
나의 기록들을 체크해 보니 평균 심박수는 별로 높지 않았다. 아니 평소에 7킬로 10킬로 뛸 때와 비슷했다. 내 심장이 튼튼하던지, 아니면 심장이 터질 만큼 목에서 피맛이 날 만큼 최선을 다해 뛰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아무렴. 그래도 끝을 봤으니 잘한 거지.
그런데 아마 그래, 나는 첫 풀코스니까 이쯤 해도 잘하는 거겠지 하며 스스로와 타협본 부분들이 있긴 한 것 같다. 멘탈을 몰아붙이지 못해 목표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다. 알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후회와 미련이 없다. 그렇다고 물을 마시지 말걸, 급수대 지나칠걸 이런 생각을 안 한다. 물을 마시고 스펀지도 받았기 때문에 완주라도 할 수 있었다.
5분 42초 페이스면, 이 페이스로 4시간을 좀 넘게 달렸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 아닐까.
같이 뛰어준 언니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힘든 것을 남을 위해 같이 뛰어준다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언니는 자기 기록대신 다른 사람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와줄 때 더 큰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인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미안하다. 나는 참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인 것 같았다.
어찌나 후련한지 몰랐다. 끝나서 좋았다. 생각보다 다리 상태나 몸 상태도 괜찮았다. 얼굴을 보았더니 얼굴이 10년 늙어 있었다. 눈가와 얼굴엔 언제 와 달라붙었는지도 모를 까만 벌레들이 죽어서 붙어있었다. 볼에 손을 댔더니 까끌까끌한데 그게 다 소금이었다. 땀이 식으며 얼굴에 염분만 남아 마치 팩 알갱이처럼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옷을 봤더니 나의 까만 싱글렛에 하얀색 선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땀이 말라서 하얗게 된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니 살 것 같았다. 완주 메달은 예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42.195km 라 쓰인 메달.
내가 이 만큼의 거리를 달렸다니
나 진짜 대단하고 멋지다,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
나는 내가 나를 대놓고 칭찬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좋았고 달리면서 부담스럽던 것이 끝나가서 좋았고 어쨌든 끝이 있어서 좋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중간에 기억이 송두리째 잘 나지 않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날 만큼 힘들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건, 내 앞에서 나를 보고 내 속도에 맞춰주는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3월에 처음 만나 만난 횟수로는 몇 번 되지 않을 텐데 같이 4시간 넘게 고생한 사이가 되었다. 언니 덕분에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고 뛰었다. 혼자였으면 타협해서 몇 번은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기록 내려놓고 나에게만 맞춰 하긴 어려운 일인데 정말 고마웠다.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언니가 "나에게 달리기란?"이란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속마음을 다 꺼내놓기엔 내가 달릴 길이 길어 가볍게만 대답했다.
나는 달리기가 끝이 있어서 좋았다. 20대 때 버거운 시간을 보낼 때 들었던 윤상의, SES의, "달리기"란 노래에서처럼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끝이 죽는 걸까? 도 생각해 봤는데 이번에 진짜 달리기, 마라톤을 해보니 그때의 레이스가 끝난 것이고 진짜 무대에서 퇴장하기까지는 몇 번의 레이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 레이스마다 다행히 끝이 있으니 몇 번을 출발점에 서도 된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내년에 다시 서볼 것이다.
지금은 지겨울 만큼 쉬려고 하는데 딱 다음날 하루정도 근육통이 있었고 화요일 오후부터 정말 쌩쌩해져서 다시 달리기 욕구가 차올랐다.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런을 했다.
태양은 눈부셨고
나는 뛰었고
내 심장은 내가 살아있다고 말해줬다.
진짜 나는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달리기처럼 잘 일깨워주는 건 없었다.
#마라톤 #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