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풀 42.195km [3]

2024 JTBC 마라톤

by 사와로


정신은 번쩍 들었으나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다리를 애써 더 굴려보려고했지만 이미 무거워진 다리가 터덜터덜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리 내 몸이 가볍다, 물 위에서 내가 달리고있다고 생각해봐도 나는 11월임에도 이상하리만치 더운 어느 날, 아스팔트 위에 다리를 질질끌며 발을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생각이 잘안난다. 며칠이 지나서라기 보다 그 시간이 고통스러워서 잊었나 싶을만큼 약간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느낌이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뛰었다. 옆에서 천사같은 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힘내자고 얘기해도 힘을 내는건 별개의 문제였다. 지금 좀더 빨리 뛰지 않으면 목표로 삼은 서브4를 이룰 수 없고 그러면 언젠가 다시 이렇게 힘든 순간을 맞이하게 될거라고 말해줘도 알지만 어쩔수가 없어요 라는 심정이었다.




지금 떠올리면 분명 몇 번의 언덕도 있었다. 잠실대교를 건널 때 언니의 뒷모습이 아득하게 느껴졌고 롯데월드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응원을 할 때 이쯤되니 모든게 심드렁해졌다. 올림픽 공원을 가려면 잠실대교 건너서 왼쪽으로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오른쪽으로 돌아, 삼전동을 지나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헬리오시티가 나타났다. 이젠 언덕이고 뭐고 그냥 길이었다. 이 시기에는 그저 다음 급수대 나올 때까지만 뛰자, 다음 스펀지 주는 곳 나올때까지만 뛰자 이런식으로 5키로, 3키로를 끊어서 생각했다. 32키로 이상 부터는 정신의 한계와 몸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 시험은 처음 쳐보는 것이어서 나는 시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정이 됐다. 한계에 부딪히자 좋은 점수를 내는 것 보다 서서히 시험을 끝내는데 목표를 두기 시작했다. 언니가 자꾸 시계를 보며 기록을 계산해도 나는 서브4 못하면 어때, 그래도 괜찮으니 빨리 급수대 나타나라 이런 마음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내가 후회할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나중에 분명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봐 나는 그 순간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금 이게 최선이야라고.




왜냐하면 34, 35키로 지점에서 갑자기 다리의 근육이 땡기더니 특히 왼쪽 발가락에서 쥐가 오를락 말락 하는 낌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쥐가 나면 큰일이다. 쥐가 나는 순간 다리가 뒤틀리면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제대로 쥐가 나면 며칠을 절뚝이며 걸어야 한다. 쥐가 날까봐 두려웠다.




그때쯤 급수대가 나타나고 언니가 급수대 가지 말고 이제 530으로 가야돼! 하는데 언니 그냥 먼저 가세요, 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지금 물을 안마시면 앞으로 남은 7키로 정도의 레이스를 끝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물이라도 잠시 마시며 쉬고 싶었고 그래봤자 2~3초지만 그것도 그 순간은 절실했고 또 안마시면 쥐가 확 올것 같았기 때문에 참아보자는 언니의 말에도 나는 내 멋대로 했다. 말을 잘 안듣는 학생이었다. 미안하지만 말이다.




물을 마셨는데 결국 그 느낌대로 왼쪽 발가락에 쥐가 나면서 그대로 발가락이 오그라들면서 굳어버렸다. 아치 부분까지 굳는 느낌이라 너무 아팠다. 펜스를 잡고 서서 걸을까 하다가 멈추면 쥐가 더 올 것 같아서 천천히라도 뛰면서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발가락이 말린 채로 뒷꿈치와 아치 부분을 땅에 닿으며 다리를 옮겼다. 경직되었던 발가락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천천히 뛰었다. 쥐가 나니 이젠 그냥 진짜 완주가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쥐가 풀릴 때쯤 갑자기 이번엔 오른쪽 발가락이 땡기면서 굳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오른쪽 발가락에 쥐가 난 것이다. 골고루 균형있게 왼발 오른발 쥐도 잘 나네, 이젠 픽 웃음이 났다. 땡기는 느낌에 이어 경직되는 느낌에 다리까지 올라와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줬다.




ㅇㅇㅇ 화이팅! 할 수 있다!! 힘내세요!!




그 말이 너무 잘 들려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처음 보는 어떤 사람이었다. 내 눈을 마주치며 다시 한번 “정말 다왔어요! 힘내세요!!”하는데 이 사람 말에 양쪽 발가락에 다 쥐가 난 상태에서도 멈추거나 걸을 수가 없었다. 웃음을 겨우 짜내면서 감사합니다, 화이팅! 하면서 다시 뛰어갔다.




발가락이 접힌 상태에서 그냥 뛰었다. 될 대로 되라지, 쥐는 난거고, 결국 완주해야 끝나는데 그냥 빨리 뛰고 빨리 집에 가자!! 이런 마인드로 다시 최대한으로 뛰었다. 페이스를 530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앞에서 잡아먹은 시간들 때문에 4시간 안에 들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40키로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10분 가량 남았고.




지금 4분대 페이스로 뛰면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4분대 페이스는 평소에 컨디션이 멀쩡할 때도 열심히 뛰어야 나오는 거라서 이 몸으로 이 상태로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주변에 주자들이 주로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많이 걷는 상황에서 터덜거리며라도 뛰는게 어디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앰블란스는 여러대 출동했고 어떤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얼굴을 크게 다치는 사람도 몇이나 봤다. 다리에 쥐가 난다는게, 아니 쥐가 나는데에도 뛰는게 사실 아프고 무섭고 위험한 것인데 그냥 지금으로도 나는 잘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제마 #한계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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