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풀 42.195km [2]

2024 JTBC 마라톤

by 사와로


4시간을 뛰어보니 그건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분은 부상을 딛고 회복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어쩌면 자신의 몸을 걸고 같이 옆에서 뛰어주었다.


천사와 같은 음성으로 "ㅇㅇ 아 다 왔어. 조금만 힘내자. 괜찮지? 미소. 서브4목표 맞지? 530으로 가자! 할 수 있어! 거의 다 왔어. 저기까지만 가면 돼. 몸이 무지 가볍다고 상상해봐. 다리를 조금더 들어서 올리고. 저기 표지판 까지만 가보자. 저기 다리까지만 가보자."




나는 이런 음성을 들으며 처음엔 네! 최선을 다해 따라가볼게요! 했지만 점점 말을 잃어갔다. 말할 기운도 없어서 있는 힘을 짜내어 겨우 웃었다. 저 언니는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샘솟는가? 나는 지독하게도 언니말을 안들었다. 아니 못들었다. 이제 쉬면 안돼!! 이런 말을 하는데도 어김없이 급수를 하며 물을 마시는 순간이라도 잠시 멈춰서 쉬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을 10초, 20초 모으면 서브4를 할 수있었을텐데. 병목현상과 막판에 별로 안필요한 스펀지 받기와 물 마시기를 안했으면 분명 언니가 같이 이뤄주려고 애쓴 서브4의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무지 높다. 결과적으로 나는 서브4, 4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별로 후회와 아쉬움이 없다.




그 순간 정말로 최선을 다한 것이어서. 나의 최선은 극한은 아니었다. 심박수를 보면 남들에 비해 많이 낮다. 4시간 이상을 뛰었는데 152 정도면 보통 달릴 때와 다름없다. 미친듯이, 죽을만큼 달렸으면 160을 훌쩍 넘어서 170, 180도 넘었을텐데. 대부분 그러한데 나는 어쩌면 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나의 심박수만 보면 말이다. 이건 몸보다 정신이 먼저 지쳤기 때문일 수 있다. 나를 이겨내야 할 때, 평소의 마음가짐이 불쑥 올라온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이렇게까지 해야 돼? 라는. 즐거울 수 만은 없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 이런 생각으로 목표에 대한 집념이 스르르 흩어지고 있었다. 몸은 언어로 생각한대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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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달리기 코스는 이랬다.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완전히 가로지는 코스였다. 한강 다리를 3번 건넜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출발하여 양화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갔다. 그렇게 10키로는 솔직히 거뜬했다. 다시 바람 맞으며 서강대교를 건넜다. 익숙한 거리였다. 서울 레이스에서 뛰어봤던 거리, 충정로로 이어지는 길이다. 충정로 아현, 익숙한 동네가 나온다. 이십여년 전, 대학을 다닐때 매번 버스로 다녔던 길이었다. 학교 앞에까지 가진 않았지만 아현동 가구거리를 보자 갑자기 옛생각도 나고 내가 이런 길을 이렇게 뛰다니 새삼스럽기도 했다.


이제 좀 지치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청을 지나고 광화문도 지나고 청계천을 따라 뛰었다. 이 길도 얼마전 하프 마라톤때 뛰었던 길이다. 심지어 가다보면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나오는 코스였다. 완전 학교 바로 앞까지 간다. 내가 공부했던 대학교도, 근무하는 초등학교도 내 다리로 뛰어 가고 있으니 정말 온 서울을 다 밟는 느낌이었다.




아이들 생각도 나면서, 퇴근런 출근런도 떠올리면서 뛰었다. 20키로가 넘자 다리가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근무학교를 지나고나니 수시로 출장다니는 길이 나왔다. 익숙한 거리들. 차로 휙 지나갈 때 몰랐던 길이 참 길구나 느껴질때쯤엔 사실 그쯤되니 아무생각이 없었다.




정신은 없지만 계속 소리는 들렸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참 고마웠다. 우리가 지나갈 때 마다 화이팅을 크게 외쳐주었다. 아는 사람 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도 목청껏 응원해주고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이 5키로마다 급수대에서 물도 따라 주시고 스폰지도 주셨다. 사람들의 배려와 봉사와 응원으로 나도 발걸음을 무겁게나마 옮기며 뛰고 있었다.




이쯤되니 페이스도 체크하기가 싫었고 4시간 안에 못들어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5키로부터 사람들이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하는데 속으로 네..?? 아직 17키로는 남았는데요……. 라고 생각했다. 옆에서 언니가 ㅇㅇ아, 괜찮지? 할 수 있어! 하며 웃는데 나는 고마움에 애써 미소를 지었으나 실은 심드렁했다. 언니의 그 말에도 내 다리는 더 빨라지지 않았다. 더 빨리 뛰었다가는 끝까지 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빨리 뛰기를 못한건지 안한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속도로 뛰면서 조금씩 느려져 갔다.




나는 이전에 훈련으로 31키로까지 뛰어봤다. 31키로 이상은 이제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개인 신기록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장거리를 뛰어 본적이 없었다. 미지의 세계였다. 미지의 세계에서 11키로 좀 넘게 버티면 끝이었다.




3번째 다리인 잠실대교를 건너는데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잠실대교 다리가 참 길다.. 이 다리 진짜 기네.. 생각했다. 불과 2일 전인데도 생각이 잘 안날만큼 아득했다. 생각할 힘도 없어서 그냥 뛰었는데 페이스 메이커 해주는 언니가 자꾸 시계를 본다. 이 속도로 가다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각인 것 같았다. 언니는 웃으며 힘내자라고 말했지만 나는 더이상 힘을 낼 수 있을까? 이렇게 1시간을 더 달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언니의 아는 지인이 나를 앞질러가며 말했다. “화이팅! 오늘 달성 못하면 다음에도 또 이렇게 힘들게 30키로 뛰어야 돼요!! 오늘 끝내는게 낫잖아~” 라고 말이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라톤 #달리기 #서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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