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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 Jul 14. 2023

한국에서 온 의대생

한국에서 온 의대생 친구가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이주간 머물 예정이다. 우리 병원에서 해외 실습을 하게 된 그 친구는 마침 정신과에 관심이 있고 나의 대학 후배이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 게스트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었지만 만나본 적 없는 친구에게 선뜻 방을 내어놓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내가 미국에서 자연스레 익힌 이곳의 문화인듯 싶다. 땅덩이가 큰 미국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방문할 때 집을 내어놓는 경우가 보다 흔하다. 반가운 사람이 먼 여행 끝에 내가 사는 곳에 방문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지, 아마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큰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테다.

외국인 의사가 거의 없는 낯선 미국 중소도시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다르지 않기 위해 혹은 나의 다름으로 인해 타인이 느낄 불편함을 최소하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부단히도 애썼던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대학교, 그 사이 직장생활, 대학원까지 마친 한국인이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는 혹은 그렇게 말하기도 애매한 한국인 그 자체라는 것을(!) 우리 동기들이며 나를 대강 아는 사람들이면 얼추 알지만 감추지 않을 뿐더러 외려 드러내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순간 그들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가 편안하게 소화될 수 있는 한국, 혹은 임의의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도 내에서 내가 나의 어느 부분까지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인식해왔던듯 하다. 일례로 친구들이 K드라마나 K팝에 대해 물어볼 때면 얼추 그 친구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의 K드라마에 대한 관심이나 K팝 취향, 그에 대한 생각들을 설명하며 스몰토크를 했지만 그렇다고 외국에 알려진 K팝 이외의 것들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음악이나 내가 K팝에 대해서 경험하고 겪은 끝에 생각한 단상들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내가 K팝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말이다. 음식이니 대략의 가치관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하다. 외국에 산다는 것, 다른 문화권에서 일하고 관계 맺으며 산다는 것,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기능하며 산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속했던, 모두가 극도로 사회화된 한국 사회, 사람 사이의 많은 것이 굳이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이해되고 처리되는 그 효율적이고 사회의 합의를 포기하고, 미묘하고 거대하며 모두 결국 인간이니만큼 몹시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끝도없이 다른 그 모든 것에--관계의 맥락과 소통의 방식을 포함하여-- 던져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 평소에 골몰하는 건 아니다. 각설하고,

나만해도 이제 미국에 도합 3-4년 있으며 상당히 문화적으로 적응한 부분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갓 프레쉬하게 마치 집게 같은 것으로 콕 집어서 이곳 내가 사는 곳으로 옮겨 심어진 듯한 이 어린 친구들을 [총 두명이다, 한 명만 같이 지낸다] 보고 있자니 너무나 반갑고 신기하고 그들을 통해 한국 문화가 통째로 이 낯선 곳에 이식된 것 같은, 그들이 뿜어내는 각자만의 한국인으로서의 특질들이, 그 미묘한 매너와 행동 방식들이, 더구나 대학 후배들에게서 보이는 어떤 동질감이, 너무나 익숙하고 익숙하기에 나의 낯선 일터에서 보는 것이 이상하고 새로운, 그런 조용하고 점진적인 역 컬쳐쇼크를 경험한 며칠이었다. 더구나 나랑 함께 지내는 친구는 한국인 중에서도 나처럼 덕후 성향이 다분한데다 발화량이 상당한 터라 매일 그친구와 미역국, 김밥, 밥 위의 반숙달걀 따위의 저녁을 해먹으며 두세시간 가량 내가 보는 미국 문화, 진정성이란, 덕후 활동 [결국 대부분이 덕질에 대한 이야기였다]에 대해서 인텐시브한 대화를 하고 있다가보니, 가만, 내가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어떤 고유한 특질들이, 한국이라는 문화적 맥락에서 내가 발휘하던 인간 관계에서의 작고 미묘한 정체성들이, 그에 대한 스스로의 애정이 오랜만에 상기되고, 적응하려하고 적응해야하는 자로서의 나로부터 잠시 벗어나, 오롯이 드러내는 나를 새삼스레 인식해보게 되었다. 조금은 애틋하기도 쓸쓸하기도 한 이 마음은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잊혀져야만 했던 것들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친구들이 떠난 뒤에도 이 마음을 꺼내볼 수 있도록 고이 접어두어야겠다.


P.S. 다만 며칠 인텐시브한 한국어 수다했다고 영어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든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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