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습관
시를 쓰다 보면 금세 한 편의 멋진 시가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써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시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적어 내려가는 방식이다. 즉흥적이고, 때로는 직관적이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를 '날것의 감정'으로 쓴 시라고 표현하곤 한다. 짧게는 1분 안에도 만족스러운 시를 완성할 때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면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싶을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다. 내가 화가였다면 어서 빨리 멋진 그림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의 찬탄을 듣고 싶어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최종 작품일 뿐, 그 뒤에 쌓인 고뇌의 시간은 쉽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완성된 결과 앞에서 그저 '대단하네, 고생했겠네'라고 가볍게 말할 뿐이다.
시는 산문보다 길이가 짧아서일까? 보기에는 쉽고, 쓰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접근하기 쉬워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시를 쓰려하면 어떤 시감으로 주제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남다른 시각을 어떻게 드러낼지 생각하다 보면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아예 중도에 포기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즉, 시를 '자기 감성대로' 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작품성을 인정받는 시는 단순한 순간의 감정만으로 결코 탄생하지 않는다. 수많은 고민과 연단의 시간이 쌓여야만 비로소 아름답고 단단한 시어들이 작품이 된다.
시의 영감은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시의 소재는 물건, 환경, 관계, 감정 등 무수히 다양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만나고 대화하는 '사람' 속에서 가장 깊고 풍부한 시감을 발견할 수 있다.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관계의 온도에서도 시는 시작된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든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12월의 첫 주가 시작되었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만큼 사람의 온기도 많이 느끼고 싶은 12월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시어를 낚아보자.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글이 되고, 또 그 글이 시가 되는 순환의 과정. 산문과 운문은 그 분류 기준은 있지만 경계는 명확하게 없는 연속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언어, 태도, 눈빛, 표정들을 잘 메모해 두는 습관을 기르는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곧 감각을 향상시키면서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