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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Apr 23. 2024

주왕산과 주산지 그리고 청송

1달 전에 예약을 해 놓은 등산일정이 있다.

친구들과의 등산이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라고 하였다. 나와 H가 J를 찾아간 것이다. J가 근무하는 곳에 가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밤을 새우고 아침에 산으로 간 것이다. J가 근무하는 곳에 오후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TV에서 내일 일기예보를 하고 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내일 상당한 양의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다고 예보를 하는 것이다.  

"기상청은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저기압의 영향을 차차 받는 20일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비는 아침(06~09시)부터 제주도와 전남해안에서 시작되어, 오후(12~18시)에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비가 확대되겠다."는 것이다. 친구들하고 아침에 몇 시에 출발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내일 아침 6시 30분 출발하여 9시 이전에 산을 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이른 아침 예상시간보다 이른 시간 눈을 떠보니 비는 예보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시간에 시작되는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좀 더 빨리 출발을 하였다. 오늘의 산행은 주왕산의 주봉을 등정하고 하산을 한 후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폭포 등을 돌아본 후 이웃한 주산지에 가서 돌아보는 것이다. 산을 오르고 계곡에 도착하기 전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을 쓰고 돌아다닐 수 있기에 서둘러서 움직인 것이다. 친구의 근무지에서 주왕산이 있는 청송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죽장면이 있고 그곳의 역사유적이 있어 지나치지 못하였다.

죽장면은 포항지역에서 최대 오지인 동시에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이곳에는 입암서원이 있다. 서원은 1657년(효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장현광(張顯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3년에 강당이 복원되고 1974년에 묘우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정문이 굳게 닫혀 있어 담장 밖에서 만 이를 볼 수 있었다. 주변에 입암이 있고 그 옆에 그곳에 입암정사가 있는데 멀리서 보기만 하였다. 이를 설명하면 시냇물 가운데 입암이 있는데 가까운 북쪽에 계구대(戒懼臺), 기여암(起予巖)이 있다고 한다. 두 바위 사이에의 돌 틈 곁에 있는 평지에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입암정사라고 하는 것이다. 멀리서 그것을 보기만 하였다. 아쉽다고 할 것이다. 근처까지 갔어야 하는데 비가 무서웠다. 그리고, 식당을 갔는데 식당 사장님이 정 씨인데 이웃한 영천의 임고서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임고서원은 포은 정몽주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포은선생 부친의 묘가 있다고 하였다. 어떻게 어떻게 역사의 고장으로 산행을 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포은선생의 고향이 어디인가 논쟁이 벌어질 번했다. 포항에도 포은선생 무엇인가 있다고 하니 식당사장님이 아니라고 했다. J는 근무지 근처에서 본 것을 확신할 수 없어 꼬리를 내렸고 우리도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포항의 오천서원에도 포은선생을 배향하고 있고 그곳이 고향이라고 논쟁을 하고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새마을운동도 발상지를 두고 경북의 청도와 경북포항이 논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포항은 이곳저곳에 존재의 이유를 노래하는 것 같다.

이제 청송으로 넘어간다. 포항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이 재미있다. 꼭두방재다. 꼭두방재는 매우 높고 가파른 고개를 뜻하는 현지 방언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지금은 고개를 넘고 있지만, 31번 국도 확장과 포장 공사가 완료되면 터널로 다닐 것이기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 있는 휴게소는 벌써 문을 닫고 있다. 청송으로 넘어오면서 과수원에 사과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청송사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청송시내버스도 사과와 같이 빨간색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청송을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고 보았다. "산소카페 청송군"이다. 청송이 오지라고 하는 것보다. 산소카페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채롭고 친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송 하면 사과가 생각나고 이웃한 영양과 함께 고추의 주산지이지만 요즈음은 사과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주왕산을 오르기 위하여  대전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대전가까지 이어지는 길 양쪽의 가게들에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사과막걸리도 있다. 사과즙 함유양이 1% 미만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리지만 사과향은 난다고 하였다. 나는 알코올과 거리가 멀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곳곳에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막걸리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포천의 이동 막걸리, 양평의 지평막걸리, 청송에는 사과막걸리가 있는 것이다.


주왕산은 산불조심기간에는 등산로 통제가 된다. 장군봉을 오르 는 것과 주봉을 오르는 것 이외에는 모두가 통제다. 산불을 등산객이 실화를 하여서 유발할 수 있다고 모두를 통제를 하는 것으로 등산객이 잠재적 산불 유발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산은 보호가 되는 것이다. 주봉을 오르고 맞은편 장군봉 옆의 기암을 보고 연화봉을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나는 이곳을 5번째 온 것 같은데 정상인 가메봉은 한 번도 못 가보고 장군봉도 못 가보았다. 이상하게 주봉만 오른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늘도 똑같다.

비가 오기 전의 황사의 뒤끝은 여전하다. 아직 아침 안개와 같이 섞여서 그렇게 깨끗하게 보이지 않지만 대전산에서 기암을 바라다보고 주봉으로 간다. 주봉을 오르면서 힘들다고 생각하면 전망대가 있다. 3번의 전망대를 지나면 주봉이 보이고 그곳을 오르면 된다.

주봉 가는 길에서 인증을 남기고 한발 한발 올라선다.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들보다 젊다. 그런데 준비 없이 왔다가 오르는 것 같다. 산을 오르면서 준비 없이 왔다는 것은 운동화를 신고 배낭도 없이 물병하나 들고 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해발이 700m 넘는 산인데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먹을 것은 필요 없다고 하여도 배낭은 필수라고 본다. 내려오면서 넘어지면 그래도 허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면서 철쭉이 있어 그대로 담는다. 그것이 수달래 즉, 산철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분홍의 철쭉이 있고 조금 오르면 진달래가 있다. 그리고 가침박달이 있었다. 병꽃도 있다. 봄은 야생화의 박람회장이다.

주봉을 바로 앞에 두고 힘차게 오르면서 비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바람으로 느끼면서 걸었다. 주봉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는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J가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산신이 노 한 것 같다"라고 하였다.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서둘러 내려간다. 후리메기 삼거리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이동하면서 가메봉을 가는 길은 산불조심기간이라 입산통제라고 안내되어 있어 지나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있다. 소나무에는 1960년대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그대로 있다. 그 흔적을 보면서 일제 강점기 시절도 아닌 1960년대에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라고 하니 그래도 그 나무가 60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고목이라고 한다.

데크를 지나고 계곡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도착을 하니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기니 한 젊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힘든 사람이 한 번 쉬어가자고 하여도 내려가니 아 힘들다 하고 이야기한다. 계곡에 도착하고서도 삼거리까지 500m를 더가야 삼거리다. 하지만, 그 길을 너무 편안한 길이다. 절구폭포의 상류로 물의 양이 많으면 절구폭포의 폭포수가 많을 것이라고 상상을 한다. 폭포수가 많으면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H는 절구 폭포까지 한번 걸어본 기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위에 있는 용연폭포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후리메기 입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가면 용연폭포다. 주왕산에서 가장 큰 폭포이고 이중폭포이다.

장군봉을 지나서 이곳으로 올 수 있다고 한다. H가 다음에는 장군봉을 거쳐서 이곳을 지나 가메봉으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장군봉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고 하고 나는 그렇게 걷고 싶다. 용연폭포에서 3명의 남자들이 사진을 담고 있는데 여성 7명이 왔다. 우리는 사진을 담는데 포즈가 한 가지이지만, 그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성들은 제한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여성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이것이 우리들이 겪는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여성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담지만, 남자들은 이상하게 단순한 포즈를 취한다. 뒤를 돌아서서도 포즈를 취한다.


이어서 절구폭포다. 대전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이어진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응회암이 녹아서 만들어졌으며 이곳도 이중폭포다. 절구폭포의 폭호가 절구통처럼 만들어져 있다고 하여 절구폭포다. 여름철 이 계곡에 들어오면 시원함의 극치다. 비가 오지만 그 비를 맞으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 인증을 남기고 떠난다. 우리는 동영상까지 남긴다. 그 우람한 소리가 좋다.

이제 용추협곡, 용추폭포로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개울에 4년 이상 다리를 담그고 있는 버드나무를 담아본다. 주산지를 오늘 가니까 그곳에는 더 오래 족욕을 하고 있는 왕버들이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4년 전에 왔을 때도 그랬었는데 오늘도 그렇다. 하천이 넓어졌다가 다시 용추협곡에서 좁아진다. 그 협곡이 이제 우리를 기다린다. 비는 계속 오고 조심조심 걸을 뿐이다. 용추협곡에 쏟아지는 폭포를 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학소대, 시루봉이 머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비가 오지만 사람들이 꾸준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주왕암이 있고 주왕굴을 보기 위하여 생태통로를 따라간다. 큰길을 걷는 것보다 좋다. 전망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다시 한번 주왕산의 멋진 경치를 본다. 비가 오면서 황사가 걷히고 바위들이 그 자태를 보여준다.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 등이 전망대 앞을 지키고 있다. 그 바위들이 지키고 있는 산세는 가히 우리나라에 3대 암릉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악산과 같이 릿지하는 사람들도 오를 수 없는 산이 주왕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급수대에 물이 흐른 흔적이 역력하다. 주왕암보다는 주왕굴이 유명하니 주왕굴로 가면서 주왕암을 본다고 할 것이다. 주왕굴은 주왕암의 산신각으로 활용이 된다. 주왕암에는 산신각이 두 곳이다. 절문을 통과하면 칠성각과 함께 산식각이 산 위에 보인다. 내가 처음에 왔을 때 주왕굴이 산신각이라고 하여 그곳에 간 기억이 있다. 이웃한 나한전의 탱화는 1800년경의 회화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였다. 친구들은 그 나한전 앞의 불상을 담고 그 탱화도 담았다.

주왕굴은 주왕이 은신하였던 굴이라는 전설을 그대로 보여주덧 주왕암에서 오른쪽으로 숨겨져 있는 계곡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초입은 약간의 인공흔적이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에 인공을 미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신각으로 활용되는 것인 만큼 사찰에서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왕굴에 은신하고 있던 주왕이 신라의 장군이 맞은편 촛대봉에서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 주왕은 중국의 역사에 보면 5호 16국 시대의 16국의 중의 하나인 주나라의 왕인 것이다. 당나라가 망하고 5호 16국이 형성이 되었으며 그때 송이 제패하기 전까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신라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신라도 혼란스러운 시기에 잘 대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왕암을 지나고 바로 이웃한 무장굴로 방향을 잡는다. 왕복 800m이다. 오르지도 않고 옆으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오는 길인데 어떤 사람은 갔다가 오는 것이 싫다고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왕의 부하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무장굴에 무기를 숨겨두었다고 한다. H는 옆의 공터가 더 좋지 않냐고 얘기한다. 위에 바위가 있어서 비를 그대로 가리고 넓은 공간도 나오기 때문이다. 무장굴에서 밖을 보면 제한적으로 밖이 보일 뿐이다. 우리가 그 동굴 속에서 밖을 보는 것이 제한적인 이유가 그것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맞은편에 있는 영화굴을 가고 싶지만 비가 오고 있어서 오르지 않고 입구로 나간다. 우리가 오늘 주산지를 또 가야 하고 영화굴은 200m 이상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찾지 않아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입구까지 가면서 기암을 보고 아들바위를 본다. 남아선호사상이 그대로다. 이제는 아들바위가 아닌 자식바위라고 하여야 한다는 H의 말이 일리가 있다. 대전사에서 100m 지점에 있다. 대전사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아침에는 흐릿하게 보였던 기암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 대전사는 이제 얼마남아 있지 않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연등이 절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웃한 종루에 어린 친구가 종을 무심하게 한번 치지만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 없다. 절의 넉넉함이 우러나온다.


이제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상점가에서 사과도 한 봉지 사고 사과막걸리도 3-4통 사니 H가 얼굴이 웃음이 가득하다. H는 막걸리가 있으면 웃음이 그득하다. 그런데, 소매가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이야기 있다. 그래도 샀으니 어떠냐 하면서 주차장으로 이동을 한 후 주산지로 이동을 한다. 주산지는 대전사입구 주차장에서 10km 이내에 있다. 산을 넘고 또 넘어서 주산지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다.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굽이굽이 지나간 것이다. 대전사 주차장은 주차요금을 내어야 하지만, 주산지 주차장은 주차요금이 없다. 대전사 주차장은 주차시간이 길지만 주산지 주차장은 1-2시간 이내에 주차를 한다.

 

주차를 하고 주산지를 걸어서 올라간다. 꽃마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지만 오늘은 운행을 하지 않고 있다. 무공해 삼륜차도 있는데 이차도 운행을 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가는데 나이 든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비가 오더라도 운행을 하였으면 좋겠다. 주산지는 조선시대 경종시절 건설한 저수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수가 없다. 주산지가 오래되었고 그곳에 200여 년  이상된 왕버들이 물속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입구에 주산지를 건설한 것에 대한 공적비가 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호수나 저수지가 없지만 제천의 의림지, 청송의 주산지는 조상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주산지를 보러 온 사람들이 물에 잠긴 왕버들을 배경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고 있다. 우리는 그 틈이 아닌 스스로 하나둘 외친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던 같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모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이 드신 아줌마나 아저씨나 동일하다. 특히, 아줌마들이 더 초등학생이 된 듯이 놀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친구들과 놀면서 움직인다고 할 것이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 그것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흥겹게 노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주산지의 왕버들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떠난다.


이제 주산지를 떠나서 집으로 간다. 청송을 벗어나면서 사과나무를 보고 막걸리 제조하는 판매하는 술도가에 들려서 또 막걸리를 산다.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병당 1100원 이상 저렴하게 구매하였다고 만족하는  H를 보면서 나도 즐겁다. 그리고, 비는 계속 오고 있다.


이상하게 또 징크스가 발생할지 모른다.

포항 근처의 산을 산행하면 하산시점에 비가 온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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