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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May 14. 2024

응봉산 그리고 동해안, 울진과 삼척 명소 탐방

응봉산을 오르고 울진의 망양정, 삼척의 촛대바위를 둘러보다.

다시 뭉쳤다.

우리는 3명이 모이면 재미있다.

2명이 모이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2명이 의견충돌할 경우에는 중재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3명이 모인다. 그곳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이 된다.


이번에는 울진의 응봉산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지가 어디이냐고 물어보면 누구는 경상북도 봉화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는 전라남도의 고흥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나는 울진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울진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울릉도에 갈 때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것과 울진대게 그리고 울진원전이 생각이 난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정철이라는 사람이 작성한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망양정, 월송정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울릉도를 갈 때 포항, 동해, 영덕에서 주로 출발하는데 그것은 다른 도시에서 도착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니었다. 최대한 배를 짧게 탑승하는 것이 목적이어서 울진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응봉산으로 가는 것이다.


3명이 모여서 다시 이동을 한다. J의 근무지가 있는 포항에서 하루를 유숙하고 또 이동을 시작한다. H가 새벽에 우리를 깨운다. 동해안에 왔으면 일출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으로 가면서 7번 국도를 이용하여 포항에서 울진으로 이동을 한다. 이동을 하는 중에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감상하기로 한다. 5시 21분에 뜨는 태양을 보려고 이동을 하는 것이다. 지동설에 근거하여 지구가 돌지만 일출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없는 언어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1차 목표는 장사해수욕장이었는데 아직 30분이 남아 있어서 더 북쪽으로 이동을 한다. 이동을 하면서 7번 국도는 다 바닷가를 경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니었다.


강구항을 지나면서 강구천이 있고 그것을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있는 영덕읍을 지난다. 영덕의 해맞이 공원은 별도의 해안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고래불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정하고 이동을 하였다. 친구들은 좀 더 빠르게 운전하라고 하지만, 나는 안전운전이 최고다 과속은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기에 내가 운전하는 것인 만큼 이동을 한다. 도착시간은 5시 20분이다. 그런데 이동을 하면서 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고래불 해수욕장 이정표가 보인다. 7번 국도에서 탈출을 하고 바로 정면으로 가니 영리 해수욕장이다. 그곳에서 일출을 보았다. 뜨는 해를 보면서 그저 즐긴다. 우리가 소란스럽게 도착을 하여서 그런지 차박을 하고 있는 사람 몆 명이 나온다.

새벽 그리고 일출을 보기 위하여서 빨리 움직여서 그런지 배는 고프다. 하지만, 휴게소의 음식점들은 아직이다. 망양휴게소에 들러서 멋진 경치를 본다. 그 경치를 담고 휴게소 식당에 문의하니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한다. 다시 이동이다. 산을 오르기 전 배를 든든하게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제 울진에 도착하였고 이제는 산을 가기 전 한 곳을 둘러보기로 한다. 망양정을 목적지로 정하였다.

7번 국도를 벗어나 울진읍내로 들어와서 성류굴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다가 방향을 망양정으로 잡는다. 망양정으로 가기 위하여 좌회전 좌회전 하면서 갔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 갔다. 그런데 그곳이 망양정 해수욕장 바로 앞이었다. 그곳이 잘되었다. 망양정 해맞이 공원이 있는 주차장은 다른 곳에 있다. 좌회전 좌회전 하다가 직진이다. 그러데 우리는 좌회전을 하여서 간 것이다. 잘못된 길이지만 그곳이 좋은 곳이었다. 내가 변산반도를 갈 때에도 목적지를 잘못 설정하여 그곳의 멋진 경치를 보았는데 오늘도 근처의 멋진 경치를 보았다. 그곳에서 동서트레일의 시발점을 확인하였다. 산림청에서 이곳에서 출발하여 태안에 도착하는 걷는 길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처음 그 실체를 본다. 망양정이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간다. 그 언덕 위에 정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것으로만 시원하다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곳이 지진해일 대피소라고 한다.

망양정을 올라보니 잘 가꾸어진 공원이다. 그 공원을 산책해 본다. 망양정 해맞이 광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여 그곳을 둘러본다. 바람소리길이 있고 대종이 있다. 소망나무 전망탑이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 3명이 돌아다니면서 이곳도 담고 저곳도 담는다. 바람소리길에서 종을 쳐보는 동심도 경험을 해본다. 작약을 해당화로 착각을 해서 저것이 해당화야고 J가 이야기하니 H가 작약이라고 한다. 그래도 식물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니 만족이다. 망양정을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긴다. 멀리 있는 망양정이 더 멋있어 보인다. 바람소리길에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풍경소리와 같다.

망양정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은 그 위치가 고려 때에는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세워져 있었으나,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이곳의 망양정이 오래되고 낡았다 하여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다 한다. 그 후 1517년 폭풍우로 넘어진 것을 1518년(중종 13)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부탁하여 중수하였고, 1860년(철종 11)에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더불어 현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屯山洞)으로 이전하였다" 한다.

숙종은 강원도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그려 가져오게 하고, 그중에서 망양정이 가장 수려하다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친필 편액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망양루와 관련된 조선시대 숙종, 영조, 정조의 어제시가 편액 되어 정자의 면면을 채우고 있다.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 많지 않다면 그것을 해석한 안내판을 별도로 설치해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해석하여 옮겨놓은 것을 이곳에 다시 옮겨본다(출처 : 한국한 중앙연구원)


 [숙종]  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러 있고/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리

[정조]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 종묘며 담장 하나하나 훑어본다

[김시습] 십리에 모래 펀펀한데 큰 바다를 바라보니/ 해천(海川)은 멀고 넓은데 달빛이 창창하네/ 봉래산이 그야말로 속세와 떨어졌으니/ 사람은 명아주 한 잎 가에 떠 있구나


망양정과 해맞이 공원을 뒤로하고 해안길을 따라 걸으면 자동차를 정차해 둔 망양정해수욕장이 있다. 그 해수욕장 입구에 동서트레일의 출발점이 있다. 망양정해수욕장은 뒤로 왕피천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동해다. 우리는 동해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동쪽의 해로 정리하던가 아시아대륙의 동해로 명명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 우리들이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망양정해수욕장 뒤편의 왕피천의 마지막은 석호이다. 동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석호가 많이 발달하는 것 같다. 서해처럼 펄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래로 입구를 막아버리는 석호가 형성되는 것 같다. 영랑호, 경포호 등이 있다.

망양정을 벗어나면서 아침을 알리는 식당이 있어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하였다.  그 식당의 주인장이 수석을 수집하고 식당 내에서 전시를 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이제 응봉산으로 간다. 울진읍내에서 출발하여 덕구온천콘도 주차장을 목적지로 정하고 이동을 한다. 이동을 하면서 2022년 일어난 이 지역의 산불의 현장을 그대로 본다. 2년 정도 지나면서 자연은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인간이 그것에 좀 더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는 것 같다.


울진, 삼척산불은 2022년 3월 4일부터 3월 13일까지 발생하였으며 피해면적은 최근 10년 이내에 발생한 산불 중 피해면적이 가장 큰(울진이 14,140ha, 삼척이 2,162ha로 합계 16,302ha)이었으며, 진화시간은 산불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산불(213시간)이었다.  


산불의 영향이 마을의 집 바로 뒤까지 온 모습도 볼 수 있고 이산 저산에 죽은 고사목이 그 흔적을 남기면서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덕구온천으로 가는 내내 그러한 모습이 계속이다. 산불의 흔적 중앙을 가로질러가는 것이다. 응봉산을 오르는 내내 그러한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자연이 치유하고 인간이 약간 보태는 모습이 있다. 그래도 살아남은 나무들이 우리들에게 유구한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이동을 하면서 처참한 광경을 그대로 보았고 자연이 치유하는 것을 보았고 인간이 그것을 보태려고 노력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당시에 그것을 방어해보려고 하였던 사람들의 노력이 보인다. 매캐한 연기에 산불로 인한 열기가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저수지 물을 이용하여 산으로 산으로 물을 나르는 헬기소리가 요란했을 것이다. 그리고 피난하는 행렬도 있고 그것을 도와주려는 인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가를 보호하려고 전국에서 모인 소방차들도 있었겠지만 산불현장에서 직접산불을 진압하는 산불진화대원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생생한 모습이 눈에 아른하다.


덕구콘도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고민을 한다. 더위에 자동차를 그대로 세워둘 것인지 아니면 등산로 입구까지 갈 것인지 고민을 한다. 그래도 하산을 하면 힘이 들고 등산을 시작할 때는 힘이 있으니 돌아와서 편한 곳이 좋다고 덕구콘도에 주차를 시키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면서 포장된 도로에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이채로워서 등산을 시작하면서 그림자를 엑스트라로 만들고 담아본다.

이제는 2년 전 산불이 난 흔적을 그대로 보면서 살아남은 나무와 살려고 노력하는 나무와 생을 마감한 나무를 보면서 응봉산을 오른다. 응봉산은 해발이 998m이고 출발지점이 200m 정도 되지만,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5km 정도여서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년 전 산불의 상흔이 있어서 곳곳에 고사목도 있고 불에 그을린 나무도 있지만 생을 유지하려고 나무도 있다. 그것을 보면서 오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응봉산 산행기를 보면 대부분은 그렇게 많은 내용이 없다. 그것은 조망이 거의 없어서일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느꼈지만 우리는 소나무 중에 살아남은 나무들을 보고 안타까운 나무들도 보면서 산불의 무서움을 그대로 체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불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아니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나무들을 불쏘시게로 사용하였는지 아닌지에 따라 피해의 양상이 다르게 보였다. 어떤 지역은 아무 피해가 없고 어떤 지역은 피해가 극심하다. 침엽수가 많은 지역이 특별히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것 같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있는 나무도 피해를 입은 것을 보았을 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생을 마감함 나무를 그 그루터기에 쌓아둔 것을 보고 J는 나에게서 난 것들을 마지막에 그것을 내가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상을 300m 정도 남겨둔 능선에서 산불의 위력을 그대로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방화선을 보았다. 방화선을 사전에 구축하였는지 그것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산불에 그 몸을 그대로 내 몸을 내어주었고 다른 쪽은 나를 지키고 있었다. 환경단체에서는 그 방화선을 만들 때 반대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생각한 이상이었다. J가 나에게 그 효과성에 대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한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방화선을 구축한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제 올라선다. 마지막헬기장이다. 헬기장이 3개 있는데 첫 번째, 두 번째를 지나면서 가파름이 시작되고 좀 더 심하여진 것을 확인하였는데 이제는 세 번째 헬기장은 이제 정상이 10m이다. 그곳에서 동해를 그대로 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 산이 오르고 내리는 그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동해를 보는 데 특이하다. 푸르름 이외에 새로운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다. 응봉상을 오르면서 정상까지 거리는 특이하게 이정목이 아닌 이정석에 그것이 정리되어 있다. 불이 가까워서 사전적으로 그것을 방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울진군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난 다음 데크와 안내지도를 바꾸었는지 산불의 흔적이 없다.

이제 응봉상 정상에 접근한 산불의 흔적도 보고 하산을 시작한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인 만큼 998m에서 계곡이 있는 해발 370m 지점까지 내려가야 하는 만큼 2km를 가파르게 내려가는 것이다. 동고서저의 모습을 그대로 보면서 하산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서쪽의 높은 곳에서 동쪽의 바닷가로 내려가는 것인 만큼 삼척의 덕항산, 두타산 등과 같고 대관령 정상에서 강릉시내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데크길도 있다. 그리고 곳곳에 고사목이 있고 그 고사목이 불에 타면서 남긴 조각품도 있다. 그 조각품을 보면서 내려가는 것이 더 이채롭다. 그것을 모아서 조각전을 열면서 산불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곳에 그것을 사진으로 모아 본다.

소나무가 산불에 의하여 피해를 보았는데 그곳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도 생을 이어가고 있고 새로운 생명이 둥지를 만들어서 새로운 생명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산을 내려오면서 야생화가 없다고 하니 H가 말하기를 산불로 인하여 모든 야생화가 타버려 다른 곳에서 날아와야 하는데 아직이다라고 한다. 나도 그것에 동감한다. 3월 산불이 났지만 이제 시작하는 생명이 화마에 모든 것을 날린 것이라고 본다. 자연은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또 새로운 생명을 부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잘못하여 산불이 났지만, 자연은 그것을 응징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나간다.

계곡에 도착하였다. 이 계곡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다리가 13개 있다. 울진군에서 세계에 알려진 다리 13개를 축소하여서 계곡을 넘나드는 곳에 설치한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다리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다리도 있어 그것을 감상하면서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협곡을 지나면서 그 협곡을 즐기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가면서 13번째 다리는 포스교이다. 영국에 있는 다리 포스교이다. 포스교는 최초의 강철 소재 교량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그 당시 티교가 붕괴 후 건설되어서 무척이나 튼튼하게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모습도 그대로다. 12번째 다리는 중국의 장제이교, 11번째는 일본의 도모에가와교, 10번째는 영국의 트리니티교, 9번째는 우리나라 불국사에 있는 청운교·백운교, 8번째는 우리나라 경복궁에 있는 취향교, 7번째는 스페인의 알라밀로교, 6번째는 스위스의 모토웨이교, 5번째는 독일의 크세이교, 4번째는 호주의 하버브릿지, 3번째는 프랑스의 노르망딩교, 2번째는 우리나라의 서강대교, 1번째는 미국의 금문교였다. J가 원래의 다리를 정리한 사진을 찾아주면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듣는다. 준비성이 뛰어나다고 해야 것이다.

내려오면서 용소폭포와 선녀탕에 도착하였다. H는 폭포에 도착하기 전에 5교량인 크세이교 위에서 내려다보면 상어의 이빨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그렇게 화강암에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그것을 공식명칭으로 돌개구멍이라고 하는데 위에서 보면 그것이 상어의 이빨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돌개구멍은 화강암지역에 작은 자갈들이 물에 힘에 의하여 그곳을 마모시켜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용소폭포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폭포도 주왕산의 용연폭포나 절구폭포와 같이 2중 폭포다. 그렇게 그 폭포를 보고 내려간다.  


콘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온다. 등산을 갔다 온 사람들보다 계곡을 거슬러서 올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이곳에서 폭포를 즐기고 내려가는 것이다. 트래킹을 2km 이상을 한 것이다. 이곳에 단체 여행객들이 사진을 담고 있어 우리는 그 뒤를 이어서 인증샷을 남긴다.

용소폭포를 지나면서 이제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바로 30m 전방에 무엇이 있는데 그곳에 가기 싫다고 이야기한다. 힘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곳에 줄무늬를 가진 흰돌이 있다고 하는데 지나친다. 그리고 원탕에 도착하였다. 원탕은 덕구온천의 온천수가 샘솟아 나는 곳이다. 그 온천수를 발을 담그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바로 옆에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조그마한 분수도 있다. 우리는 계곡에서 발을 씻고 온천수에 발을 담근다. 덕구온천은 고려시대 말기, 사냥꾼들이 사냥하다가 온천수가 솟는 노천온천을 발견했고, 간이 목욕 시설을 세워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의 노천온천 역할을 했다.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사람들이 목욕하러 갔다고 한다. 원래 마을주민들이 목욕했던 노천온천은 '원탕'으로 불린다. 온도는 42.4℃이다. 중탄산나트륨, 칼륨, 칼슘, 철, 탄산 등의 성분인 약알칼리성이다. 효능은 신경통, 류마티스, 근육통, 피부질환, 과격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신경마비에 좋다고 한다. 이곳에서 덕구콘도 등으로 연결된 파이프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온천수를 그곳까지 배달하는 관인 것이다.


산을 갔다 온 사람도 발을 담그고 있고 덕구콘도에서부터 올라온 사람도 발을 담그고 있다. 동네에서 준비를 하였는지 아니면 어느 누가 기증을 하였는지 수건을 걸어두었다. 발을 담그고 그것을 닦으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온천수가 있는 중앙에 있는 공간이 온돌이었다. 그곳에 누워보면 찜질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발이 마른다.

30분 정도 더 걸으면 효자샘이 나온다. 평탄한 지역도 길게 내려가면 지친다. 그래도 샘물을 들이키고 내려가는 것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이제는 생수도 동이 나고 갈증이 목에 다다를 때가 되어 샘에 도착한 것이다. 아래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생수 등을 들고 올라오지 않았을 경우 이곳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이제는 몇 번 다리하고 그것을 즐기면서 내려가는 것이다. 마지막 금문교를 지나면서 이제 끝이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협곡의 마지막을 본다.

우리가 등산을 시작하면서 이곳에 주차를 한 이유가 된 것처럼 편안하게 자동차를 회수하고 이제는 집으로 간다. 주변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이동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온천에 들어가서 온천욕을 할 수 있으나 우리는 갈길이 멀어서 세수만 하고 떠난다. 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기로 하고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7번 국도로 가다가 동해고속도로를 접어들면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1시간 정도를 또 여유를 갖고서 삼척의 명소인 촛대바위를 보려고 이동하였다. 그 촛대바위를 볼 수 있도록 잔도를 잘 만들어 둔 것에 감사를 하면서 이동을 하고 그것을 감상을 하였다. 이웃한 황영조선수의 기념관도 보고 촛대바위도 보았다. 잔도 끝에는 용굴이 있는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 통제를 하고 있었다.


황영조선수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과 이곳이 아름다운 경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사진 맛집에 서서 사진을 담는다. 우리도 동참을 한다. 촛대바위가 저렇게 서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국가를 세우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억만 급의 역사를 가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거북이가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다. 그 모습을 찾아서 안내를 하고 있다. 나는 마지막 바위를 보면서 공룡의 한 모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나는 추측을 한다.


내가 바르셀로나 여행을 갔을 때 몬주익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오늘 황영조선수 기념관에서 황영조선수가 일본선수와 경쟁을 하다가 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아! 그곳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고 올라가는 것이 한국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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