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알리는 종도 울리기 전 대피소안은 부산하다. 오늘 날씨가 좋다. 지리산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고 하는데 오늘 온 모든 사람들은 3대가 덕을 쌓을 것 같다. 우리처럼 천왕봉을 오른 후 중산리나 대원사방향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배낭을 챙기고 장터목에서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몸만 챙기고 떠난다. 새벽을 부산스럽게 움직인다고 보면 될 것이다. 5시 45분 일출이지만 여명이 뜨면서 나타나는 아침놀을 보고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 모두들 부지런히 움직인다.
전날 배낭도 챙기고, 식수도 미리 챙겨 두었다. 어떤 등산객들은 식수를 챙기지 못하여 장터목대피소의 식수터로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아침을 챙기는 사람은 없다. 다만, 화장실도 만원이다. 우리 일행은 전날 모든 것을 챙겨두었고 다만, 침낭만 챙기다. 일찍 가다가 우리는 별을 담아보자고 한다. 천왕봉을 오르다가 암흑을 만들고 그곳에서 별을 담아보기로 한다.
부지런을 떨면서 준비한 사람부터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한 명씩 나가서 기다린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대피소 지붕에 설치되어 있는 태양광 패널에 이슬이 맺혀서 비처럼 처마를 젖시고 있다. 처마밑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를 피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한다. 바로 뒤에는 아빠와 아들 일행이 배낭 없이 따라붙는다. 제석봉은 장터목대피소에 바로 오르면 가파르다고 할 수 있다.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데 헤드랜턴 불빛을 보고 불나방이 덤벼든다. 숨을 가쁘게 쉬면 입이 열리고 그 입속으로 나방이 들어간다. 얼굴을 때린다. 가쁜 숨을 들이켜는 구간을 지나 제석봉의 구상나무 고사목에 대한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헤드래턴 빛에 고사목 모습이 보일 뿐이다. 주간에 이 구간을 지나지 않으면 고사목을 완벽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구상나무가 또 자라고 있다. 예전에 무단벌목을 한 사람들이 그것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불을 질렸다고 한다. 2023년 여름에 이곳을 지나갈 때 고사목을 담아 보았는데 그것을 여기에 올려본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한층 유명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 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 그 자체는 재난으로 생명을 중도에 마감한 나무들의 시체여서 살벌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고사목들이 한 두 그루도 아니요, 10만여 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든 고사목은 이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방화를 하여 고사목이 되었고 방화된 고사목이 나름의 경관을 형성하였는데 그 고사목을 누군가가 훼손하고 있다고 한다.
제석봉을 지나고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면서 통천문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틈을 이용하여 암흑을 만들고 하늘을 향해 별을 담아 본다. 별을 담는 스마트폰 세팅을 하지 않는 우리는 J에 의존하였다. 그래서 나는 세팅을 찾아보았다(안드로이드의 경우이다).
① 별 사진을 촬영하려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하늘로 향하게 두고 적어도 10초 이상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② 셔터스피드 조절이다. 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길게 둔다.. 최소한 10초 이상으로 설정한다.
③ ISO는 카메라 센서의 민감도를 높다. 숫자가 적을수록 어둡고 높을수록 밝아진다. 셔터스피드를 통해 충분한 빛을 담기 때문에 ISO는 200 이하가 적당하다.
④ 셔터를 누를 때 스마트폰이 흔들릴 수 있으니 타이머 기능을 설정하는 것이 좋다.
삼성 갤럭시에서는 expert raw란 앱을 제공하고 있는데, 전문 촬영 및 후편집이 가능한 RAW 파일을 제공하여 High quality, HDR (High Dynamic Range)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고 더욱더 디테일하게 편집이 가능하다고 한다.
천체 사진, 천체 인물 사진 촬영 방법(삼성전자 제공)
천체 사진 또는 천체 인물 사진 모드를 선택하여 초점, 화이트밸런스, 촬영 시간 등을 조절하여 천체를 촬영해 보세요. 천체 가이드 옵션을 표시하면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이드가 표시됩니다.
1단계) Expert RAW 앱 실행 후 천체 사진 아이콘을 선택하세요.
2단계) 천체 사진 아이콘 선택하여 천체 사진 또는 천체 인물 사진 모드를 선택하세요.
3단계) 가이드 표시 여부, 촬영시간 등 을 선택하여 천체 사진을 촬영해 보세요.
우리가 안부에서 별을 담고 있는데 헤드랜턴을 켠 등산객이 와서 협조를 구하고 별을 보자고 하니 그분들도 호응을 한다. 별을 보는 것이 우리 세대의 경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H가 J의 별 사진을 담는 것을 보고 도전을 하였다. 통천문을 지나고 천왕봉을 오른다. 천왕봉을 바로 전 천왕봉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다시 별사진에 도전하였다. 불빛이 없는 곳에서 별빛을 찾는 것이다.
천왕봉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일찍 온 사람들이 여름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여름에 무슨 추위냐 하겠지만, 천왕봉은 1915m이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운 기운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래서 여름산이라도 방풍재킷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다. 보온을 하는 것이다. 노고단에서 본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도 우리들과 같이 2박 3일 걸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어제 이곳 천왕봉을 왔다가 일출을 보기 위하여 다시 온 사람도 있었다. 3대가 덕을 쌓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서로가 기운을 북돋우고 있다. 그리고 좋은 말만 한다. 지리산 정상석을 두고 인증샷을 남긴다. 순서를 기다려서 천천히 인증을 한다. H는 이상하게 다른 욕심은 없는데 사진에 대한 욕심이 많다. 좋은 사진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잘 정리하여 20장만 남기고 삭제한다.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결론은 20장만 남기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음성으로 촬영을 한다. 그래서 그 음성모드를 우리는 2박 3일 동안 들어서 '별명'으로 정리하였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춥다고 하였다. 방풍재킷을 입고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앉아 아침이 아닌 간식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일출을 기다린다. 우리는 하늘의 밝기가 변화될 마다 한 번씩 스마트폰을 열어서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지리산 10경 중에 일경이 천왕봉 일출이라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늘 많이도 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아침놀과 함께 일출을 보았다. 일출에 대한 설명을 학창 시절 의유당 김 씨의 동명일기보다 묘사를 못할 것 같아 여기에 그것을 옮겨본다.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앗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奇異)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출처] 동명일기(東溟日記)-의유당 김씨)
일출을 보고 움직인다. 서둘러 모두들 떠난다. 어떤 사람은 중산리로 가고 어떠 사람은 장터목으로 가기 위하여 왔던 길을 돌아서 가고 어떤 사람은 중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중봉을 거쳐서 대원사까지 가야 하므로 우리도 움직인다. 다시 H가 한번 더 사진에 욕심을 부린다. 나와 B는 이동을 하고 J가 카메라맨이 된다. 중봉은 지리산의 제2봉이지만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길을 이용하면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성중종주(성삼재-중산리)가 대세이고 성대종주(성삼재-대원사)는 후순위이기 때문이다.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내려가면서 그렇게 가파르지 않다고 느꼈다. 중산리로 내려갈 때 그 가파름이 싫어서 선택한 길이지만 많이 길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정표를 보면 중산리는 5.4km, 대원사는 11.7km이다 두 배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걸으면 가파름이 2배일 것이다. 대원사로 가면 가파름은 약하고 거리가 길어지는 것이다.
중봉을 내려가면서 중봉을 담고 중봉을 올라가면서 천왕봉을 담았다. 중봉에도 정상석은 없었다. 사실 지리산주능선에 정상석이 있는 곳은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에만 본 기억이 있다. 나머지는 이정표에 위치를 표시하여 둔 것을 보았다. 중봉도 동일하였다. 지리산 전체에서 높이가 두 번째이지만 지리산 천왕봉에 가려져 의미가 없다. J가 "중봉은 억울하다. 설악산보다 높고, 덕유산보다 높은데 천왕봉이 높아서 그 아류인 지리산의 다른 봉은 높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치밭목대피소까지 4km 정도이니 2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우리 걸음이 느려서 그런지 2시간 40분이 걸렸다. 중봉을 지나고 가파르게 하산을 하고 그곳에 있는 쉼터에 도착한 시간이 1km 약간 더 걸었다고 표시를 하고 1시간을 걸었다. 사실 국립공원공단에서 안내하기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소개되어 있다.
중봉을 지나고 이제는 그렇게 힘든 구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걸었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중봉을 내려와서 써리봉을 가는 길은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조망이 있는 곳에서 중봉과 천왕봉을 동시에 잡고 그 경치에 흠뻑 취하여 어려운 줄 모르고 지났다. 써리봉에서 바라다 본모습이 멋있다. 써리봉을 바로 앞에 둔 봉우리의 암릉이 있어 우회를 하고 오르고 내린다. 써리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써리봉이었다. 써리봉 이름이 특이하여 유래를 찾아보았다. 멀리서 볼 때 농기구인 써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써리는 써레의 이 지역의 방언이다.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하니 2시간 40분이 지났다. 내려오면서 무엇을 계속 먹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아점을 해결하려고 하였던 부분을 취소하였다. 치밭목대피소의 식수터는 100m 정도 왼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식수를 가져와서 아점을 하기에는 시간이 20분 이상 추가적으로 소요될 것 같아 그곳까지 이동을 하여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정비를 하고 미숫가루 등으로 아점을 대신하였다. 치밭목대피소는 예전에 민간이 운영하던 것을 국립공원공단이 인수하여 대피소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월간 산 7월호에 보면 “치밭목대피소는 느긋하게 지리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이용객이 적어 한적하고 여유롭죠. 여기서 근무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꽤 많아요. 지리산 대피소 중 근무 경쟁률이 가장 치열한 곳이죠.”하면서 대피소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피소라 한다. 그만큼 산행객들이 적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곳의 화장실도 특이하다. 이층에 있다.
치밭의 뜻은 원래 '취밭'으로 '취나물이 밭처럼 많이 나는 곳'이란 뜻이다.
급하게 이제 하산을 한다. 계곡까지 급하게 내려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2km 정도를 걸으면 무재치기폭포가 있다. 등산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등산로를 벗어나서 200m 정도를 왕복해야 한다. 나는 등산화가 오래되어 밑창이 떨어진 B와 함께 천천히 하산을 하였고 H가 폭포를 갔다 와서 감상을 전하였다. 멋진 폭포인데 너무 멀어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영상 등을 공유하였다. 무재치기 폭포는 3단으로 포말을 날려서 스스로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변해 무재치기폭포로 부르게 되었으며, 주위에 참나무들과 야생화들이 꽃을 피워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 이곳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나무에 매단 실을 튕겨가며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B의 등산화는 20번 내외로 신었지만 햇수는 16년 이상이라 접착제 등이 소실되어 바닥이 떨어졌다. 앞쪽은 그래도 붙어 있고 뒤쪽은 너덜너덜해져서 신발끈을 이용하여 묶고 탈출을 하였다. 다행히 그 밑창이 버스를 타고 원지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견디어 주었다.
이렇게 내려왔지만 해발은 떨어지지 않고 있고 유평탐방지원센터까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지쳐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B의 등산화가 견뎌줄 것인지 고민이고 배낭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그만큼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증거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계곡을 벗어나 능선을 넘어간다. 거기에서 체력이 더욱 소진되었다. 계곡을 벗어나기 전 세수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산을 넘어가는데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힘든 곳을 올라오신다고 얘기하니 즐겁게 지나간다. 우리는 2박 3일의 체력이 고갈되지만 이분들은 유평에서 올라와 무재치기 폭포를 보고 새재로 넘어간다고 하였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즐겁게 등산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능선길을 지나고 다시 계곡으로 들어서니 좋다.
계곡에 들어서서 발을 담그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 2박 3일 동안 물 근처에 가보지 못한 내 머리가 시원하다고 한다. 그리고 옷을 입은 채 풍덩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말려놓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제 막바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유평마을이고 유평계곡인 것이다. 그리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4km를 걸어야 한다. B는 예전에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을 하면서 잘못되어 십자인대를 수술하여 아스팔트 하산길이 어렵다고 하는데 거기에 맞닿았다. 그리고 그늘도 없다. 햇빛을 받으면서 내려가야 하는데... 걱정을 하고 있는데,
H가 지나가는 포터를 세웠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한 것이다. 우리가 마을입구를 지나는 순간 포터가 지나갔으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우리 넷은 화물이 되어 내려간다. 1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를 이렇게 대원사 주차장까지 10분도 안되어 도착하였다. 아쉬운 부분은 대원사를 구경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것에 불만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는 화물차를 탑승하면서 종료하였다. 화물차를 모신 분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지친 우리를 살려주신 것이다. 다만 화물이 되었어도 산문을 담았다.
대원사 주차장에서 버스시간을 알기 위하여 H가 동분서주하는데 진주의 어느 여고생들이 버스가 10분 후에 도착한다고 알려준다. 우리들에게 급히 알린다. 빨리 모이라고 연락을 한다. 우리들은 사전적으로 15:50분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였지만 10분 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하면 원지터미널에서 14시 정도에 도착하므로 14:40분 버스로 예약변경을 하였다. 산청의 원지터미널은 진주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서울로 갈 때 경유하는 중요지점이었다. 지리산을 산행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탑승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탑승한 버스도 진주에서 탑승한 사람보다 원지에서 탑승한 사람이 많았다. 버스가 14시 40분 도착하여 탑승하였고 원지에서 서울까지 3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하였다.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를 종합정리하면 이렇다.
2박 3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준비하였다.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는 지리산종주를 무사히 마치기 위하여 준비물을 사고 그 준비물을 공유하였다. 대피소와 버스를 예약하고 배낭을 메고 이동을 하였다. 가장 필요가 없었던 것이 보온물병이었다. 대피소에서 매 끼니를 해결하면서 뜨거운 물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두 명이 1L 용량의 보온물병을 무겁게 메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무게만큼 다른 것을 넣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라면을 그렇게 많이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코펠 등을 세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산 위에서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역시 아니었다. 세 번째로는 옷을 적당히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등산을 하면 땀으로 젖셔져 의미 없는데 매일 갈아입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전날 입었던 것을 최대한 건조하고 그것을 입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전날 입었던 옷을 배낭 속에 넣으니 무게는 점점 늘어만 갔다. 네 번째로 식수를 적절히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가 임걸령샘터에서 충분한 양의 물을 보충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만큼 임걸령에서 연하천으로 이동할 때 반야봉을 올라간다면 0.5배 만큼의 물을 추가 확보하고 이동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각봉을 지나면서부터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다음으로 필요하였던 것은 슬리퍼와 같은 신발이 필요하였다. 나와 B는 슬리퍼를 가지고 올라가서 잘 사용하였다. 약간은 많은 양이지만 반찬이 많아서 문제가 될 수 있어도 그것은 필요하였다.
약간은 이기적이지만 샤워티슈는 요가하였다. 물을 사용할 수 없는 대피소에서 샤워티슈로 땀을 닦고 옷을 갈아입으면 깔끔했다. 다만 그 무게가 더해서 사용 후 물기를 말리면 최고다.
노고단에서 일출을 보고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았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았다. 우의도 준비하고 우산도 준비하여 배낭무게를 가중시켰지만, 비가 오지 않아 걷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을 대비하여 다양하게 준비하였지만 그것은 배낭무게를 증가시킨 것에 불과하였다. 마지막에 우리는 교통수단 연결이 너무나 멋지게 해결되어 교통수단을 기다리면서 허비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남들은 2박 3일 하면서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하지만 우리는 6시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문명의 혜택을 최대한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산행에 동참한 친구들인 H, J, B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도 행운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B가 왜 지리산인지 물었는데 그 답이다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려 왔다, 또 다른 설은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한글로는 지리산으로 읽는다. 지이(智異)는 우리말 지리에서 변형된 것인데, 지리는 본래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래는 두류라는 한자를 붙여 산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지리산의 이칭인 두류산도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