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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Nov 12. 2024

남도 여행 3박 4일(4일 차, 정남진과 천관산)

정남진에서 일출, 천관산을 보고 서울로 오다

남도 여행 마지막날이다.

어제 숙소를 들어오기 전 무인텔인데, 내가 전화로 예약을 해서 그런지 주인장이 있었다. 그 주인장이 우리가 천관산을 간다고 하니 천관산에 1코스, 2코스, 3코스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3코스로 올라가서 1코스로 내려오는데 본인이 이 고장 사람으로 추천하기로 3코스로 올라가는 것은 힘만 들고 볼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하였다. 1코스로 올라가서 3코스로 내려오기를 권고하였다. 우리는 그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장흥에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정남진이라고 하는 J의 의견도 있고 우리가 땅끝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정남진에서 일출을 볼 수 있으면 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3일 차와 동일하게 짐을 꾸리고 자동차에 탑승을 한 후 정남진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J는 정남진을 이렇게 처음에 해석하였다. 경도와 위도로 한국지도를 보았을 때 경도의 중앙에 있는 남쪽이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나는 해석을 달리하였다. 이것은 오래된 지명이다. 정동진과 정서진과 같은 이치다. 조선시대 임금이 있는 위치에서 정남 쪽을 정남진이라고 하고 정동 쪽을 정동진이라 하며, 정서 쪽을 정서진이라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의 위치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도를 보았을 때는 좌수영은 서쪽, 우수영은 동쪽에 있어야 하나 임금이 보았을 때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북쪽을 보았을 때는 현재와 같다. 그리고, 그 관점은 우리가 극동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맞기는 맞는데 옛날부터 불려진 이름이 아니고 최근에 장흥군이  정동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으로 내 달으면 도착하는 나루라는 유래를 가진 것에 착안하여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미명이 되기 전 짐을 꾸리고 모텔 앞에 있는 자동차에 탑승을 하였다. 정남진 전망대가 있고 그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였기에 모두들 서둘렀다. 일출을 보고 아침을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넉넉하게 천관산을 오르고 점심 무렵에 하산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정남진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이 있지만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공터가 있어서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이제는 전망대를 향하여 이동을 하였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열었을 것이라는 기대도 안 했지만 리모델링 중으로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꼭대기 층에는 조명이 켜져 있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전망대 탑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제는 정남진이라는 방향 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율려'라는 둥근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H는 이곳에서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어촌마을까지 내려갔다 왔다. 그곳에 있는 대나무숲이 잘 정리되어 있고 그곳의 오솔길에서 아침새들을 깨웠다고 한다.

땅끝마을에서 본 일출은 섬 위에서 떠올랐지만, 오늘도 섬 위에서 해가 뜨고 있다.  바로 앞의 섬이 소록도였다. 그 섬에서 일출이 떠 오른 것이다. 태양은 매일 뜨는데 무엇하러 일출을 보러 가야 하느냐?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작은 사슴섬을 바로 앞에 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일출을 보고 우리는 다시 아침을 위하여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중에 멋진 나무를 보고 지나칠 수 없어서 자동차를 세우고 그 나무를 담는다. 30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존경스럽다.

이제 천관산 도립공원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아침을 하는 식당을 찾으면 된다. 사전지식이 있으니 읍내로 가도 될 것 같은데, 모텔 앞에 식당이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아침을 위하여 들어가는 식객 3명과 더불어 식객 4명이 추가로 들어선다. 주인장에게 4명을 주문을 하였는데, 주방에서는 잘 보내준 음식이 전달과정에서 3명 분과 4명분이 바뀌어 몇 개가 다시 추가되었다. 젊은이보다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시골풍경이 그대로다.

어르신들의 모습이 정겹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그것을 다시 바로 잡고자 내보내면 된다. 

천관산 도립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산으로 간다. 

주차를 시키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 앞을 보니 연못이다. 연못속에 나무가 들어있다. 물과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으로 가면서 왼쪽에 편백숲길이 산책로가 있지만 지나친다. 전날 모텔 주인이 추천한 곳으로 간다. 천관산에 대하여 장흥군에서 설명하기를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로 천관산은 다양한 모양으로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723m의 산으로 높지는 않지만 온 산이 바위로 이뤄져 봉우리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어 웅장함을 더하며, 산을 오르면 남해안 다도해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지고 계절마다 다양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봄에는 싱그러운 푸른 잎과 붉은 동백숲, 가을에는 드넓은 억새밭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는 "옛 이름은 천풍산(天風山)·지제산(支提山)이다. 가끔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한다. 2021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화랑 김유신(金庾信)을 한때 사랑했으나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던 산이라는 전설이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곳에 2011년 1박2일팀이 와서 1코스는 이승기씨가 올랐다고 이승기길이라고 명명해 놓았다. 그 연예프로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오래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1코스로 들어선다. 3코스는 강호도, 이수근길이다.

 

우리가 1코스를 들어설 때는 바위를 지고 있는 암릉이 보이고 그 위에 능선이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느긋한 능선이 억새지대로 예측을 하고 1코스 맞은편의 능선을 3코스로 생각하였는데 그 사이에 숨은 벽처럼 2코스가 자리를 잡고 있고 능선이 있었다. 1코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으나 3코스에서는 잘 보였다.

바위를 만나면서 여유를 찾고 그것을 담고 이동을 한다. 그 첫 번째 바위가 양근암이다. 그 양근암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다른 것으로 착각을 하였는데 양근암에 앞에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나는 의자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더 멋있는 바위도 많다. 모텔주인이 이야기한 데로 경치도 볼 것이 많았다. 양근암을 가기 전에 볼 수 있는 바위틈을 지나는 바위도 쾌 괜찮은 바위인데 이름이 없었다.

이것이 양근바위 맡은 편에 있는 능선에 대응하는 금강굴이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이제는 편안하게 능선을 즐기면서 그리고 바다를 보면서 이동을 한다. 사실 2코스가 있는 능선이 있지만 그렇게 높게 보이지 않아서 3 코스만 보였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이른 아침에 들른 정남진 전망대도 보이고, 고흥의 섬도 보인다. 고흥반도도 보인다. 그 멀리 있는 것이 팔영산 같았다.

 정원석을 지난다.

 정원석은 정원석같이 하나하나 쌓아서 만든 바위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적으로 바람과 비와 세월을 조각한 것이 기묘하게 만들어 놓았다. 연대봉까지는 이제는 잘 가꾸어진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3일 동안 산을 오르면서, 두륜산은 H가, 달마산은 내가, 천관산은 B가 가장 먼저 오른다. 하나를 더해야 J가 오를 수 있는데 오늘 오르고 나면 이제 서울로 이동하여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연대봉에는 제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올라가지 말라고 안내되어 있다. 이곳에 산신령에 제를 지냈을 것이다. 연대봉에는 예전에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부터 환희대까지 억새밭이다. 이것에 대하여 장흥군청에서 소개하기를 천관산 연대봉에서 환희대까지 펼쳐진 1,320천㎡(40만 평) 억새평원과 가을을 속삭이는 억새들 사이로 내려다보는 한라산과 다도해 풍광은 모든 사람에게 아련한 낭만을 안겨 준다. 해마다 10월이면 억새 절정시기에 맞추어 천관산 억새제가 열리며, 억새 물결은 10월 초순부터 말경까지 해와 달을 벗 삼아 가을을 노래한다.

환희대에서 우리는 구룡봉을 왕복하였다. 왜 갔다가 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그래도 갔다 와야 한다고 하여서 갔는데 이곳이 절경이다. 이곳을 보지 않고서 천관산을 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30분의 투자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죽봉이 있고 그 능선의 암릉이 일품이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으면서 어쩌면 그리스 신전의 기둥이 산 위에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구룡봉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보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문학적인 면도 있고 봉우리가 있어야 함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 돌 사다리를 비스듬히 타고 올라가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면 정신이 아찔하여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고, 다만,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석상에 구덩이가 수 십 개 있는데 크기는 똑같지 아니하며 혹은 둥글게 패어 맑은 물이 고인채 마르지 아니하고 흙은 반반하게 초승달 같은 것도 있다". 구룡봉의 화강암에 있는 풍화된 것으로 H가 정리를 하여 주었다. 그것을 옮기면, 먼저 동글동글한 석탑처럼 쌓이거나, 흔들바위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토르(tor)라 하고  바위 밑 부분이나 측면에 암굴형태(감실 모양)로 구멍이 파이는 것을 타포니(tafoni)라 하며, 바위상층부평면에 돌우물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나마(gnamma)라 한다. 그리고 도봉산의 여성봉과 같이 생긴 것을 그루브(groove)라고 하였다.

우리는 나마를 열심히 보면서 그것을 금샘이라고도 하였다.

달마고도를 걸으면서 3명이 걸으면 그중에 한 명이 스승이 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고 J가 이야기하였다. 오늘은 H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화강암의 풍화작용은 오랫동안 진행되는데 그것을 명명하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예전에 석회암지역을 지나면서 이야기한 바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화강암이 많으니 이제는 다니면서 저것은 나미 이렇게 해야 될 것 같다.

환희대를 올라 능선 위에 관으로 암릉을 쳐다본다. 그 이름이 재미있다. 당번천주봉, 문수보현봉, 청수대, 선재봉, 대세봉, 관음봉, 석성봉 등이다. 이 봉들을 하나의 사진으로 담고 하산을 한다.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서 그 환희를 즐기는 대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천관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어느 선에서 우리가 휴식을 하고 있는데 저곳에서 가부좌를 틀면 선인이 되겠다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보니 역시 선인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본 암릉들이 그대로 눈으로 들어온다.

환희대에서 장천재로 내려서는 능선 전체가 진달래꽃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그 경치를 보기 위하여 많은 곳에서 온다고 한다. 인근의 일임산은 철쭉의 명소다. 장천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처음에는 '재'하면 생각나는 것은 고갯마루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서 재는 연못을 일컫기도 하기에 우리가 주차한 곳이 바로 연못 바로 옆이니 그곳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려와서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알았다. 지레짐작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본다. 실체도 모르면서 그것을 아는 것처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본다.

금강굴을 지난다. 양근바위의 상대개념으로 금강굴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금강굴 위에서 아내를 내려다보니 사찰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장천재였다. 장천재는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 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존재 위백규(珪 : 1727 ∼ 98)는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안내되어 있다..


산을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산에서 3일 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털어먹으니 추가로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이제는 서울로 가야 한다. 내려올 때는 5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올라가는 시간을 예측하니 6시간 소요된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할 즈음에 퇴근시간과 겹친다. 천천히 올라가다가 퇴근시간 교통체증이 되면 근처에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를 안내하지 않고 장흥을 가로질러 영암으로 넘어간 후 광중에서 고속도로를 접근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천천히 올라간다. 장흥읍을 지나고 장흥댐을 지나고 영암으로 넘어간다. 도로 주변에 단감을 판매하고 있다. 그곳에 판매하는 것에 미끼상품이라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충돌하였다.  한번 판단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로 주변에 자동차를 세우고 구매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잘 구매한 것이 되었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접어들고서 이제는 우리의 3박 4일 일정의 전남여행이 종료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즈음에 이 여행을 정산하면 이렇다.

먼저, B와 J가 처음으로 해남, 강진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곳을 올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볼 수 없었던 고장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일정을 대부분 소화하였지만, 덕룡산은 주작산과 함께 걷기 위하여 이번 여행에서 취소하였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의 덕룡산과 주작산을 걸을 수 있고 남도를 다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아쉬운 점은 첫 번째 숙소이다.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였는데 가장 인상이 나빴고 그곳에서 그렇게 게 좋은 추억도 없었다고 할 것이다. 프런트가 우리 여행을 망칠뻔하였다고 할 것이다. 어떤 여행이든 그곳에 좋은 감정을 갖고 떠나야 하지만, 다시는 그 숙소는 가고 싶지 않다. 

네 번째로 음식이다. 남도의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네명의 식성이 모두 다르지만 남도의 음식은 특별한 음식을 제외하고 문제가 없었다. 점심은 우리가 행동식으로 하였기에 거론하지 않고 3번의 아침식사 중에는 마지막날 아침이 가성비도 있고 가장 좋았다. 3번의 저녁식사 중에는 백숙이 괜찮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맛집이라고 소문을 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래된 닭의 맛을 보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요즈음의 닭들은 3개월 이상 된 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그렇지 않았다. 맛집을 찾아 떠난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남자들 네 명이어서 그리고 식도락가 아닌 만큼 그렇고 그렇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도의 산의 맛을 보았다. 두륜산에서 달마산에서 천관산에서 그 맛을 보았다. 가까이 있었다면 수시로 올랐을 산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추천을 한다면 바다와 암릉과 억새를 즐기면서 봄에는 진달래까지 볼 수 있다는 천관산을 추천하고 싶다. B는 첫번째 산행을 따봉이라고 하였고, 두번째 산행을 해탈이라고 하였으며, 세번째 산행을 무념이라 정의하였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B, H, J에게 고맙고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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