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흥, 비극의 역사와 충절의 길을 걷다

by 김기만

경상북도 영주 북부의 풍기, 순흥, 부석 지역은 살아있는 역사 문화의 보고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지만, 찬란한 문화유산 뒤에 숨겨진 비극적인 역사를 아는 이는 드뭅니다. 우리는 흔히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선 사육신은 기억하지만, 그와 뜻을 함께했던 또 다른 충신들의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합니다. 바로 순흥 땅에서 피어났던 단종 복위 운동의 비극입니다.


영화와 쇠락이 엇갈린 땅, 순흥


조선 초기, 순흥은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될 만큼 중요한 고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순흥은 '반역의 고장'으로 낙인찍혀 폐부(廢府)되는 혹독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이때 흐른 피가 4km 밖 마을까지 이어졌다고 하여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순흥은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웃한 풍기가 상대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시작점, 소수서원과 금성단

순흥 기행의 중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습니다. 학문과 선비정신의 상징인 소수서원을 마주 보고 왼쪽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에 금성대군의 넋을 기리는 금성단(錦城壇)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비극적 역사의 출발점이자, 우리가 걸어야 할 순례길의 시작점입니다.


고치령을 넘어, 단종을 향한 충심의 길


세조는 동생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조카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내며 둘을 갈라놓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도상으로 소백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멀어 보이지만, '고치령'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하루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금성대군과 순흥의 선비들은 관원들의 눈을 피해 험준한 산길을 넘어 영월의 단종을 살피며 복위를 도모했습니다.

오늘날 이 길은 소백산 자락길의 일부로 남아, 우리에게 그날의 역사를 생생히 전해줍니다.


충절의 길, 역사를 따라 걷는 추천 경로


단종을 향한 충심이 서린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 순례길입니다.

선비촌 (소수서원) 출발 → 금성단 참배 소수서원 건너편 금성단에서 억울하게 스러져간 금성대군과 선비들의 넋을 기리며 여정을 시작합니다.

소백산 자락길 12자락 (역방향) 금성단 → 송림호(순흥저수지) → 배점분교 터 (3.8km): 옛 선인들이 걸었을 첩첩산중의 오솔길을 따라 걷습니다.

두레골 성황당 (금성대군당) 순흥을 벗어나 단산면 두레골에 이르면 금성대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특별한 성황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판에 '금성대군당(錦城大君堂)'이라 쓰여 있으며, 순흥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제를 올리는 곳입니다. 지금도 소를 잡아 제를 올리던 제단과 우물이 남아 있어, 금성대군을 향한 오랜 추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작재 → 좌석리 → 고치령 두레골에 학생들이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기 위해 넘나들던 자작재를 지나 좌석리에 이릅니다. 여기서부터 마락리로 향하는 길의 정점이 바로 고치령입니다.

고치령 산신각 고치령 정상에는 소백산 산신이 된 금성대군과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을 함께 모시는 산신각이 있습니다. 비록 2001년 산불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지만, 두 비운의 인물을 한자리에서 기리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지금 이 길 위에는 대중교통조차 드뭅니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길이 외롭지만, 바로 그 고즈넉함 속에서 우리는 소란스러운 세상의 눈을 피해 주군을 향해 걷던 옛 충신들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역사 책에 기록된 단 몇 줄의 사실을 넘어, 그들의 비극과 충절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역사 순례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keyword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작가의 이전글서울 양천구청역에서 부천소사역까지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