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 창업기
래티스를 공동창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창업자는 사람이 적은 초기에 가장 바쁘고, 팀원이 늘어날수록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 서너 명만 있을 때는 그래도 9~10시 정도에 퇴근했었는데, 14명 규모까지 커진 지금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쁘거나 늦게 퇴근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더 힘을 얻게 되었고, 무엇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희 래티스는 작년 말에 국내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하 A사)의 SI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매출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이로서 저희는 자체 개발하는 B2B SaaS 제품과 외주 개발하는 SI 솔루션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SaaS 제품을 운영하던 래티스가 왜 SI 솔루션 프로젝트까지 진행하게 되었고, 서로 다른 두 제품을 어떻게 함께 운영하고 있는지 그 배경과 경험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지난 타임라인>
- 24. 7. 15. 팀 회의 방식 변화 : 주 단위 문서로 데일리 진행
- 24. 8. 16. 팀빌딩 워크숍
- 24. 8. 31. 프릭스 2.0 시작
- 24. 9. 10~12 클라우드 엑스포 부산 참가
- 24. 9. 25. 프릭스 누적 계약서 10,000개 돌파
현재 진행하고 있는 SI 프로젝트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사업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SI 프로젝트는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 발단은 2024년 4월에 참여한 IT 박람회였습니다. 저희는 당시 박람회에서 부스를 운영하며 계약관리 솔루션 프릭스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부스를 지나가던 A사의 IT솔루션 담당자를 처음 만나 뵙고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두 달이 지난 6월에 그때 만나 뵌 담당자(이하 K책임)로부터 연락이 왔고, 저희 사무실에서 미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K책임님은 A사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데 해당 시스템에 필요한 기능 중에 프릭스의 계약관리 기능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연락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래티스에 개발할 역량과 입찰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대표님과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입찰에 참여한다고 반드시 수주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찰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SI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방향성 차원에서 매우 큰 의사결정이기에 더욱 고민이 되었습니다.
많은 논의 끝에 저희는 SI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비록 SI 외주 개발 경험이 부족하고 프릭스에 투입될 리소스가 분산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가 프릭스와 아예 동떨어진 제품이 아니라서 기존 프릭스 기능을 활용할 수 있고, 이번 기회에 구축형 솔루션 제품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래티스는 장기적으로 버크셔해서웨이와 같은 사업지주회사를 지향하고 있기에 회사의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찰을 결정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까지 정말 많은 관문이 존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요구사항에 대해 확인하고 답변드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진행하였고, 동시에 수 차례 화상회의와 대면 미팅을 통해 회사의 개발 역량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특히 저희는 SI 구축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역량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서비스를 잘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급하게 PoC 제품을 개발해서 미팅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개발 역량을 입증한 후에는 솔루션 소개서, 구축 제안서, HW/SW 견적서, 라이선스 증명서, 기술지원 확약서, 수행계획서 등 다양한 서류를 준비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바로 개발이 진행되어야 하기에 수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리 개발팀도 구성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래티스의 초기 멤버이자 핵심 개발자 분이 기꺼이 솔루션 팀의 리드를 맡아주셨고, 신입 개발자 한 분을 추가로 채용하여 SI 프로젝트를 위한 솔루션 팀이 구성되었습니다.
마침내 수주에 성공한 이후에는 계약을 위해 협력사 등록을 진행하고 안전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저와 솔루션 팀 멤버 분들은 A사의 사번과 출입증을 받았고, 해당 사번을 이용하여 기업 내부망에서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수주 과정에 대해 비교적 간단하게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약 반년 정도 걸린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A사의 본사는 서울에서 꽤 멀리 떨어진 지방에 위치해 있는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기간 동안 본가 부모님 댁에 방문한 것보다 출장 간 횟수가 더 많았고, 이제는 이동하는 몇 시간 동안 버스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대기업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기간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착수보고를 진행하고, 개발과 테스트가 끝나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완료보고를 진행합니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중간보고가 존재하며, 일상적인 설계 및 개발 과정은 대체로 주간 보고를 통해 공유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개발사는 해당 기업에 상주하며 제공받은 PC를 통해 개발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SI 솔루션 개발 과정은 새로 경험하는 프로세스였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고, 프로젝트 기간 동안 (저는 기존 사무실과 A사 사무실로 반씩 나누어 출근하였고) 솔루션 팀 개발자들은 A사에 상주해야 한다는 것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망분리된 환경에서의 SI 솔루션 개발 과정이 클라우드 기반의 자체 서비스 개발 과정과 얼마나 다른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했지만, 실제 경험한 개발 프로세스는 생각과 달랐던 점이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저희 래티스는 슬랙과 노션으로 소통하는데, A사에서는 외부망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보니 저희 내부 소통을 위해서는 개인 PC와 핫스팟을 이용하고, A사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발급받은 PC로 아웃룩과 스카이프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코드 형상관리 툴 역시 차이가 컸는데, A사에서는 외부망 접근이 불가해서 git을 사용할 수 없었고 내부망에서 svn이라는 툴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다만 내부망에서 개발하면 퇴근 후나 주말에 개인 pc로 개발이 불가하다 보니, 저희는 공통 기능은 개인 pc로 개발하고 실제 동작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에 usb로 코드를 옮겨서 내부망에서 테스트와 배포를 진행했습니다. (usb도 외부에서 내부로 옮기는 것만 가능하며, 내부 파일을 usb에 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인프라 및 데이터베이스 구성에서도 많은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보통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경우에는 서비스에 맞게 자유롭게 인프라/DB를 구성할 수 있는데요. 이에 비해 SI 솔루션을 구축하는 경우에는 보통 기존에 관리하던 방식이 존재하며 개발사는 해당 규칙 하에서 서버를 구성해야 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서버의 종류 및 이용 방식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서버를 구성하거나 DB를 이용하기 위해 기업 내의 서로 다른 팀에게 매번 권한을 요청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점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B2B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범용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커스텀 개발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계약관리 솔루션 프릭스도 여러 엔터프라이즈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커스텀 기능을 추가 개발해서 제공해드리고 있는데요. 비슷한 의미에서 SI 구축 역시 공통되는 기능을 제품화하여 확장성을 챙길 수 있다면 기업의 문제를 세부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사업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SaaS 제품과 SI 솔루션을 함께 운영하는 것은 대형 고객사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제품들 간에 공통된 기능을 고도화해 나갈 수 있으며, 동일한 스택에서 조금씩 다른 라이브러리를 이용하여 개발하다 보면 테크 측면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다양한 개발 환경을 경험하다 보면 팀 전체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역량이 향상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두 제품을 총괄하는 저는 A사의 서울오피스(강북)와 저희 사무실(강남)을 오가며 일하고 있는데, 두 가지 제품을 운영하다 보면 리소스가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SI 프로젝트는 일정이 고정되어 있어서 일정에 대한 압박이 더 크고, 발주사뿐만 아니라 다른 협력사와 소통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커뮤니케이션 비용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하나씩 함께 해결해 나간 솔루션 팀 멤버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10월 ~ 2025년 1월 타임라인>
- 24. 10. 14. SI 프로젝트를 위한 솔루션팀 신설
- 24. 11. 1. 제8회 G밸리 창업경진대회 금상 수상
- 24. 11. 21. 워크숍
- 24. 12. 4~6 대한민국 소프트웨어대전 부스 운영
- 24. 12. 18-19 솔루션팀 안전교육 및 킥오프 출장
- 25. 1. 7. 솔루션팀 별도 상주 시작
저희는 SaaS 제품인 프릭스와 SI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며 새로운 환경에서의 개발 경험을 쌓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제품을 함께 운영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팀원 분들과 함께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더욱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계약관리(CLM) SaaS 제품인 프릭스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동시에, SI 프로젝트를 단순한 외주 개발이 아니라 장기적인 제품 확장의 기회로 삼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데요.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래티스의 여정을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