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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22. 2021

아이스크림 한 스쿱의 친절

친절과 굴종의 사이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것과 제공할 수 있는 것

아이스크림 한 스쿱의 친절      



전국에서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초겨울이었다. 비건 아이스크림을 옵션으로 파는 젤라토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여름에 친구와 한번 들러본 후로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사이에 잠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는 것이다. 바로 가보기로 했다. 비건을 지향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없었고 비건 아이스크림을 즐길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놓치지 않기로 했다. 작고 귀여운 가게에는 다양한 색의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비건 아이스크림의 종류는 4가지였는데, 친구와 4가지 모두 먹을 수 있게 각자 두 가지 맛을 골랐다.

저번에는 일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이번에는  분만 있었다. 아주 친절하게 주문을 받으셨다. 아주아주 친절하게. 너무 친절해서 과하다는 생각이  정도였다. 심한 저자세로 우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나는 편안보다 불편을 느꼈다.


그분은 아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또박또박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결제 먼저 도와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말투가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아기나 강아지를 어르는 듯했다. 불쾌한 말투는 아니지만, 말이 눈에 보인다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을  같았다. 납작 엎드려서 저자세로 친절을 바치는 말투.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손님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듬뿍 담은 서비스를 원하지는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저번에 들렀을 때는  정도까진 아니었던  같았다.  사이에 친절이 부족하다는 항의라도 받으셨나. 가게를 운영하는 직원으로서 어떤 말투, 어떤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할지 그분 나름대로 생각하고 내린 결정일 텐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과한 친절을 택했을까?


   새로  아이폰에 보험을 들려고 텔레마케터와 통화한 적이 있었다. 텔레마케터의 힘겨운 감정노동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는 혹시라도 갑질 비슷한 것을 하지 않으려고 긴장했다.  전화를 받아 기나긴 보험 가입 과정을 처리해주신 분은 물론 아주 친절했다. 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낯선 사람과 통화하며 휴대폰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설정하느라 지쳐갔다. 안내원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또박또박하고 친절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객으로서 안내받고도 피곤함을 느꼈지만 그분은  전에도 수많은 통화를 했을 것이고,  다음에도 해야  것이다.  친절함을 그대로 유지하며 조금이라도 고객의 비위를 거슬러  잡히는  없도록 친절하게.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던 그때 다른 손님들도 있었다. 다른 손님들에게도 그분은 더없이 친절했다.  굴종 같은 친절을 다른 사람들은 어색해하지 않는  같았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다. 어느새 이런 수준의 친절이 사회의 평균이 되었나. 나는 지금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 있지 않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날이 온다. 미래는   앞도 모르는 것이니 어쩌면 내가 서비스직에서 일할 수도 있다. 그때 저런 ‘친절 당연하게 요구된다면. 사람들이 저런 친절을 요구하면, 저렇게  자신을  지우고 오로지 손님의 편의만을 위해 나를 낮추라고 요구받으면 어떡하나.


비행기를   승무원들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항공사에서 비행기 승무원의 옷차림과 화장 같은 것들을 과도하게 제재한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외국의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저 눈을 맞추고 말로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필요한  안전하게 비행기를   있도록 안내해주는 사람이지, 예쁘고  없이 존재하며 시중을 들어주는 하인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내게 필요한  무엇이 비건 아이스크림인지 알려주는 안내지,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가득 애쓴 상냥한 말투와 고개 숙인 인사가 아니다. 내가  것은 아이스크림  스쿱의 값이지 굴종의 값이 아니다.


서로 간의 기본적인 예의와 조금 더 나아간 배려심 있는 친절은 우리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든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 서로 조금만 신경 쓰면 기분 상할 일없이 필요한 것을 잘 해결하고 다시 헤어질 수 있다. 가끔 깊은 배려로 나온 따듯한 친절은 미담으로 화제가 되어 박수받고, 사회를 따듯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친절은 굴종이 아니다. 남의 비위를 맞추어 나를 지우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그런 굴종은 서비스직에서 일 한다고 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직원이기 전에, 손님이기 전에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왕이 진정 권력을 휘두르던 구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우리는 현대인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투표권 하나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는 재력이 있대서 투표권이 두 개가 되지는 않는다.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태도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건 사람과 사람 간의 기본 예의뿐이고, 그것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요구해도 마땅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굴종을 요구할 권리 같은 건 아무에게도 없다.     



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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