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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6. 2022

조화가 핀 언덕

날씨 좋은 공동묘지의 어린이

결혼하지 않는 이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나의 이모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그 이모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이모가 없다. 내가 이모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 우리 엄마는 외동이고 나도 외동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모부는 엄마가 어릴 때 하나씩 사라졌다. 다행히도 엄마는 이모가 있었다. 그래서 이모네 집에 갔다. 밥을 먹을 때면 눈치가 보여서 언제나 양껏 먹을 수 없었다. 엄마는 자라서 식당에 가면 음식을 꼭 사람 수 만큼 시켜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됐다. 누구와 나눠 먹는 것은 눈치가 보여서 불편한 사람이 됐다. 그것 말고도 지금의 엄마를 이룬 그 시절 일들이 있을 텐데 몹시 서럽고 혹은 기쁘고 분명 고통스런 이야기가 있을 텐데 엄마는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나한테 한 적이 없다. 나도 묻지 않았다.


어릴  엄마의 엄마, 할머니의 묘에 성묘하러 가곤 했다. 일이 년에  번씩 갔던  같다.  날씨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씨 좋은 날을 골라 갔을 것이다. 화창하고 따듯한 봄에 차를 타고 한참 갔다. 나는  가는 길에 카시트에서 잠이 들었다. 따듯한 차에서는 잠이  왔다. 가는  막바지에 접어들면 조화를 샀다. 우리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차들이 지나가는 길가에 조화를 파는 상인들이 여럿 있었. 생화는 없었다. 자주 오지 않는 것을 아니까. 조화를 사러 잠시 길가에   잠에서 깼다. 형형색색 번쩍거리는 빛깔을 뿜는 조화는 어딘가 대충 만든 듯한 느낌이 나며 딱딱했다.  조잡한 색깔이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조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곧 산에 둘러싸여 무덤만 수두룩한 언덕이 펼쳐졌다. 촘촘하고 똑같은 모양새의 무덤들로 이루어진 넓은 언덕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산을 깎아 만든 무덤들이었다. 차로 언덕을 많이 올라오고 내렸지만 조금 더 걸어야 했다. 그렇게 멀지 않았는데 내게는 헐떡이며 올라가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귀찮았다. 우리의 목적지가 오르막길의 끝에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보다 중요했다.


무덤에서 엄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아빠가 말을 걸었다. 우리 왔어요, 오랜만이죠, 나무가 이렇게 컸어요…. 그러고 보니 아빠는 할머니를 만나본 적도 없다. 왜 말을 걸었을까? 나는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소리 내 말을 거는 게 어색하고 이상해서 몸을 비비 꼬았다. 실제로는 아무도 안 보이는데 할머니가 있는 것처럼 공손하고 얌전히 굴어야 할 것 같아서 아빠가 그러는 동안 침묵했다. 그렇게 몇 마디 하고 나면 사과와 배 하나씩, 막걸리 조금, 황태 한 마리를 하얀 플라스틱 접시에 올리고 절을 했다. 할머니가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절을 했다. 절을 한 뒤 엄마가 깎아주는 과일과 황태를 조금씩 뜯어 먹었다. 그러다 곧 지루해진 내가 더는 참지 못하고 이제 돌아가자며 조르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엄마가 나를 달래고, 다시 칭얼대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다 내려왔다.


어느 해부터 절을 하기 싫어졌다. 무덤이 잔뜩 있는 언덕으로 가는 것은 싫지 않았다.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할머니라 숙연하지 않았다. 나들이 같았다. 햇볕이 따스해서 기분이 좋고, 그때가 아니면 만져볼 일 없는 색색의 조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무덤 앞에 깔고 올라간 은색 돗자리 위에서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했다. 마른 잔디가 숭숭 나 있는 둥그런 봉분 아래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된 것 같으니까 이미 뼈가 되었을 테고, 아니면 뼈도 썩어 가루가 됐을지도 몰랐다. 관도 썩었으려나? 얼마나 있어야 시체가 썩을까, 썩는 것은 어떻게 진행될까, 벌레가 살을 파먹는 걸까. 혹시 아직 덜 썩어서 우리가 지켜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체 벌레가 시체를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상상은 전혀 무섭지 않았고 나는 할머니가 뼛가루가 되었는지 뼈는 남아있는지 엄마 아빠에게 자꾸 묻곤 했다. 썩는다는 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물었다. 둘 다 잘 몰랐다.


내가 무섭고 두려워서 절하기 싫었던 건 죽음이 존재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곳, 나는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지역의 이름 모르는 산들 사이, 외진 언덕배기에 둥그런 흙무덤과 회색 돌기둥만 남기고 없어지는 것이 죽음이었다. 죽음은 내 엄마의 엄마에게 먼저 찾아왔다. 엄마가 어릴 때 찾아왔다. 그러니 나의 엄마에게도 언젠가는 분명 찾아올 것이다. 아빠한테도. 어쩌면 내가 어릴 때.


사람은 죽는 게 당연하고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죽기 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먼저 죽는다고? 그게 진실이란 말인가. 무서운 깨달음이었다. 어쩌면 불시의 사고로 어쩌면 갑작스러운 병으로 내 엄마가 아빠가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진실에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몰래 눈물을 훔치면서 생각했다. 아직 아무 준비도 안 됐는데.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오십이 되더라도 준비는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젠가는 분명 죽는다니. 무섭고 불안하고 두려웠다.


내가 절하기를 거부하고 고집스레 고개를 젓자 아빠는 나무가 부끄러운가 봐요, 같은 소리를 했다. 결국 둘이서만 절 하는 것을 지켜봤다. 내 세상에 없는 것이 상상되지 않는 두 어른의 오르내리는 엉덩이를 지켜봤다. 청바지와 갈색 면바지가 무릎을 굽히느라 팽팽하게 펴졌다가 다시 주름지는 것을 봤다. 아주 푸르른 하늘을 봤다. 한 번도 공동묘지라는 단어에 그곳을 떠올린 적이 없다. 공동묘지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을씨년스럽고 징그러우며 축축한 곳이었지만, 내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곳은 따듯하고 화창했다. 언제나 산들바람이 볼을 스치는, 방금 꽃은 형광색 새 조화들과 꽂아둔 지 오래되어 햇빛에 색을 빼앗겨버린 회색 조화들이 푸른 잔디 사이사이를 장식하는 언덕. 우리 같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니고, 누구도 울지 않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조곤조곤 말소리를 들으며 사과를 깎아 먹고 황태를 뜯어 먹던 곳. 희망찬 세상을 암시하는 아름다운 날에만 가는 곳.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잠겨 우울해진 마음으로 그 나들이를 즐겼다. 조화가 핀 언덕을 눈에 담고 기억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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