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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6. 2022

서울살이가 부러워

왜 너네만 아는 얘기 설명 안 해 주냐

‘혜화에서 망원까지 그리고 한강까지 나는 그저 정처 없이 걸었다. 그렇게 걷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러면 이 책, 서울 사는 작가가 쓴 책이구나 한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혜화와 망원과 한강의 거리를 알고 그래서 이 화자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오래 걸었는지 적당히 산책할 만큼 걸었는지 말도 안 되는 문장인지 알겠지. 나는 모른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정처 없이 걸을 만큼 괴로운 심정이었는지 그냥 산책을 할 만큼의 거리도 못 걸을 만큼 여유 없는 삶을 살았는지 추측해 볼 수 있겠지. 나는 모른다. 서울 살아 이런 문장을 쓰는 작가는 자기가 쓰는 문장을 읽는 사람들이 서울의 지하철역들과 한강과 각종 구들을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걸까?


내가 읽는 책을 쓴 사람들은 서울에 산다. 내가 가고 싶은 글방은 서울 사는 사람이 서울에서 연다.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은 서울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연다. 내가 보고 싶은 전시는 서울시가 서울에서 연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서울 사는 요리사가 서울식당에서 만들어 판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서울에서 혹은 서울 근처에서 산다. 마음먹으면 서울에 갈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 너무너무 부럽다. 서울에서 일하고 서울에서 먹고 서울에서 자는 것이 부럽다. 서울서울 거리고 있으니 서울이란 단어가 마치 주문 같다. 서울…서울…그리운 사람의 이름 같기도 하다. 이렇게 서울을 원하는 마음이 절절하여 자존심 상한다. 지역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자라고 지역에서 배워왔으며 일단 올해는 지역에 살기로 했으면서, 후회막심하여 서울을 그리는 게 자존심 상한다. 서울 살지 못해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알지 못하고 이 정도 밖에 하지 못하고 이 정도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서울 살아서 내가 하고픈 수업 만나고픈 사람 보고픈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면 더 성장하고 덜 외롭고 훨씬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불행의 근원이 서울 살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마저 들기 시작하니 여기서 멈춰야 한다. 서둘러 아무 도움도 안되는 원망과 질투를 갈무리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니까…아닌가?


나는 도시에 살고 싶었지 서울에 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서울이 너무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에 한 달쯤 머물렀을 때 남의 집 방 한켠에서 하숙을 했다. 스트레스로 그 한 달간 100만 원을 썼다. 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모아뒀던 세벳돈, 엄마가 서울 갔다고 준 용돈, 있는 돈 없는 돈 다 써서 통장을 거덜 냈다. 내가 살 수 있는 것 다 사고 먹을 수 있는 것 다 먹어서 닥치는 대로 돈을 써야 그 막막한 불안-남의 집에 산다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비명 지르지 않고 뭉쳐둘 수 있었다. 방 한켠 월세가 깜짝 놀라게 비쌌다. 아는 사람의 지인의 지인인데도 비싸서 부담스러웠다. 서울은 비쌌다. 너무 비싸서 돈을 무지하게 쓰지 않고는 누을 수 없는 곳이었다. 눕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나는 서울에 산다면 벌어야 할 돈의 무게를 상상해보기도 겁이 났다. 서울에 없는 것이 없다는 건 확실했지만 그 돈을 쓰고 머물러야 할 만큼 내게 필요하지는 않다고 믿었다. 그리곤 지역에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을 찾고 함께 일하고 바락바락 애쓰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눕기 위해 눈물 콧물 피 흘리며 일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서울을 원한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자기가 어디 산다고 이야기할 때 냅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꼽다. 이제는 질투 나기까지 한다. 분명 괜찮았는데 안 괜찮아진 건 원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죄다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 사는 서울 사람이 되면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분명 경험 해 봤는데. 눕기 힘들 거란 거 경험 해 보았는데도 자꾸 서울이 번쩍번쩍 빛나서….


나 사는 동네 얘기는 누가 써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그 책 읽고 서울 생각 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개운동에서 만산동까지 걸었다. 하늘이 파래서 상쾌하고 등에 땀이 조금 나서 뿌듯했다.’


그런 이야기 써주지 않으려나. 그런 글 누가 쓴다면 나만 읽지 않고 서울 사는 서울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개운동이 어딘데, 이렇게 써두면 누가 알아, 참나, 했으면 좋겠다. 꼭 개운동과 만산동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가까운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아야 한다. 답답하지만 검색해보긴 자존심 상해서 흥 토라지는 경험 한번 해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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