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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Dec 14. 2024

한달살기 8개월차

나는 왜 떠났는가 & 매일매일 뭐 하면서 보내?

올해 4월, 한달살기를 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인도네시아 발리, 베트남 다낭, 헝가리 부다페스트, 보스니아 사라예보와 모스타르, 알바니아 티라나와 사란더, 튀르키예 이스탄불, 이탈리아 토스카나,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까지 - 벌써 8달 동안 8개의 국가를 지나왔다.

발리의 평화로운 오후
모두를 위한, 다낭의 비치
햇살 받아 포근한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보스니아 내전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라예보
애매랄드빛 아름다운 알바니아의 비치
고양이들의 천국 이스탄불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끝없이 펼쳐진 와인밭
뜨거운 석양이 빛나는 그리스 아테네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편안한 미래만을 바라보고 현실의 무기력함을 애써 모른척해왔었다. 지금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돈도 더 많이 모으고 더 풍족해지면 그땐 정말 행복해지겠지,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리고 더 편안할 그 미래가 오면, 언젠간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진짜 잠에서 깼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5년, 10년 내 미래가 너무 뻔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을 것이고, 뻔한 연봉에 그즈음이면 얼마쯤 모았겠구나.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겠지. 미래의 내 모습들이 너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그 선명한 미래의 모습 속의 나는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날로 그동안 모아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정리해 보고,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고 그만둘지, 언제 사표를 낼지 바로 결정했다. 뭔가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에이, 내가 회사를 어떻게 그만둬. 어떻게 돈을 안 벌어. 말도 안 되지. 이런 생각들로 묻혀 있던 내 마음 깊은 곳의 조용한 고민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들은 그저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는 일들에 불과했다. 회사에 언제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들을 쓸 수 있도록 정리하고, 살고 있던 집 월세를 해약하고, 살고 있던 집과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고,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한달살기 8개월차. 그냥 집구석에 콕 박혀서 넷플릭스만 보는 날도 있고, 내가 뭘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좋은 것들을 보며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받게 되는 자극들이 감사하고, 새로운 자극들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내 모습들이 감사하다.


한달살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회사만 다니다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나마 덜 억울하겠다.. 이런 농담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ㅋㅋ



한달살기를 하는 나의 하루하루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특히, 이제는 회사도 안 다니는데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채우며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하곤 한다.


한달살기의 하루하루는 사실은 지금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 전의 하루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의 배경이 한 달에 한 번씩 바뀐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회사일을 하며 보냈던 시간들을 지금은 그때그때 관심 있는 작은 개인 프로젝트들로 채워나간다는 점들이 달라졌다.


눈떠질 때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하고, 커피 마시고, 이런저런 작은 프로젝트들을 하며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가보고 싶은 곳에 가거나,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먹거나, 혹은 그저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도시를 즐긴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그러다 졸리면 잔다. 며칠에 한 번씩은 나가서 먹고, 대부분의 끼니는 그 지역의 로컬 식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는다. 특히, 그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제철 과일과 채소들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한다. 


써놓고 보니 더 평범할 것 그지없는 한달살기의 하루하루ㅎㅎ 이 여정을 통해 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엔 뭐가 있을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한 이상, 이 여행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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