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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Dec 14. 2024

발리, 내가 기억했던 것과 너무 다른데..?

도착하자마자 한달이 걱정된다ㅋㅋ 

한달살기 첫번째 도시를 정할 때 아무 주저 없이 당연히 첫번째 목적지가 되었던 발리.


거의 10년 전쯤 여행 갔을 때의 기억이 너무나 좋게 남아있었고, 그 여행 이후로 언젠가 한번쯤은 다시 돌아가서 한달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열흘 남짓의 짧은 여행동안 쿠타비치에서 생에 처음으로 서핑도 배웠고, 우붓의 초록 정글에서 요가를 하며 눈물까지 찔끔했었다. 몽키 포레스트에서 구입한 1달러짜리 바나나를 먹으러 내 머리 위에까지 올라온 원숭이와 교감도 했었고, 울루와투의 절벽과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보며 감탄했었고, 어떤 날은 그냥 하루종일 비치클럽에서 놀기도 했었다.


한달살기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 주저 없이 첫번째는 당연히 발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눈물까지 찔끔하게 좋았던 인생 요가를 경험하게 해 주었던 우붓으로 돌아가서 한달동안 요가 맘껏 하고 와야지! 이게 내 계획의 전부였다.



10년여 만에 돌아간 발리, 이번에는 열흘 남짓의 여행이 아니라 한달동안 우붓이라는 한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하기 위해 왔다.


어어, 그런데 첫날부터 내가 기억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왔던 발리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ㅋㅋ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너무 많은 스쿠터들 때문에 걷기가 어렵다.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한다. 편하게 걸을만한 보행자도로 따위는 없다.. 평화를 찾으러 왔다가 (Peace),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게생겼다 (Rest in Peace) ㅋㅋ 스쿠터 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웠던가? 귀까지 먹먹하다.


내가 찾으러 왔던 평화는 이곳에는 없나..? ㅋㅋ 도착하자마자 한달이 걱정된다ㅋㅋ



첫 며칠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한달동안 살 집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에어비엔비들을 직접 방문해 보았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옵션들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으로 한달동안 우리집을 결정했다.


한달동안 살 우리집은 우붓 중심지에서는 조금 떨어진 (스쿠터로 20분 정도) 개인 수영장이 포함되어 있는 풀빌라였다. 이 가격에 이렇게 좋은 곳에 머물 수 있구나.. 역시 발리 좋다..♡ 풀빌라의 마법에서 깨기도 전, 다음날 아침 새벽 4시. 닭의 힘찬 꼬끼오 소리에 맞춰 눈을 뜬다. 큰일 났다.. 매일 이러면 어떡하지? 닭이라니.. 이건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변수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거의 한달 내내 닭의 힘찬 꼬끼오 소리에 강제로 새벽기상을 해야 했다ㅎㅎㅎ


한달살기 발리 우리집 - 풀빌라의 마법과 아름다운 정원


동네 산책도 할 수 없다. 집집마다 개가 얼마나 많은지.. 한걸음만 걸어가면 개들이 짖어댄다ㅠㅠ 끈에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집 대문도 열려있다.. 개가 무서운 나는 걸어서는 아무 데도 다닐 수가 없었다 ㅠㅠ



우리의 한달 숙소인 풀빌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집의 마당을 지나가야 했다. 야자수 나무들로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과 개인 수영장이 있는 우리 숙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 집의 모습. 정말 벽과 지붕 외의 기본적인 것들 외에는 없는, 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집들. 푸세식 화장실과 손세탁칸, 오늘의 양식이 되어줄 불행한(?) 닭이 매일 한마리씩 들어가 있는 바구니. 쟁반 바구니에 올려진 밥들과 그 옆을 기웃거리는 개미들, 그리고 쓰레기 태우는 냄새.


이 집에는 만삭인 임산부 아내와 남편, 아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만삭인 임산부 아내분께서 거의 매일같이 우리 숙소로 와서 방을 정리해 주시고, 쓰레기를 비워주시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침대시트와 수건을 갈아주고 가셨다. 한달살기의 중간쯤, 만삭이었던 아내분께서는 건강하게 출산을 하셨고, 그 이후로는 남편분께서 와서 집정리를 해주셨다. 


집정리는 안 해주셔도 돼요 - 따위는 통하지 않았고, 집정리를 해주고 가신 아름다운 우리 집에 앉아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고 있는지 생각했다. 단순히 감사라고 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편하게 살고 있는 내 생활반경 밖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 그 모순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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