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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Dec 15. 2024

발리, 한달살기 보다는 여행

그래도 오길 잘했다!

거의 10년 전에 발리로 열흘정도 여행을 갔었다. 우붓, 쿠타, 스미냑, 울루와투 등등 발리의 아름다운 바다, 절벽, 정글, 논밭의 풍경에 한눈에 반했었다. 우붓에서 난생처음 참가한 요가 수업은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었고, 쿠타비치에서 난생처음 배운 서핑은 내 인생 가장 짜릿한 기억 중의 하나로 남았었다.


그 이후로 계속 발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 참가한 요가수업도, 난생처음 배운 서핑도 그 이후의 내 삶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특히, 그날 이후로 내 인생에 큰 부분으로 자리하게 된 요가의 영향이 컸다.


한달살기를 시작했을 때, 당연히 첫번째는 발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처음 나에게 요가를 소개해줬던 우붓으로 돌아가서 한달동안 맘껏 요가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오고 싶었다.

아름다운 우붓의 요가원과 논밭 경치


아름다운 10년 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도보(?)위를 위험하게 걸어 다니고 있는 보행자들

10년 만에 다시 도착한 발리! 이번엔 한달살기를 위해 우붓으로 왔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뭔가 불편하다.. 10년 전에 여행을 왔을 때에도 그랬던 것 같기는 한데, 스쿠터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밖에 나와 있으면 스쿠터 소음이 너무 심해서 귀가 먹먹할 정도이고, 큰길이고 작은 길이고 지나다니는 스쿠터 때문에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위험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붓에는 제대로 된 도보도 없어서 도시 내에서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공간이 거의 없다. 우붓의 메인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옛날의 한국 시골 느낌으로 집집마다 개들이 많아서, 개가 무서워서 더욱더 걸어 다닐 수가 없다. 개뿐만 아니라 닭도 많다.. 한달살기 우리집 근처의 닭들 때문에 한달간 강제 새벽기상을 해야 했다ㅎㅎ





요가반 메인 페이지의 사진. 꽉꽉 찬.. 이런 느낌ㅋㅋ

10년 전 내가 기억하는 발리의 요가수업은 조용한 정글 안의 오두막집에서의 평화로운 요가였는데, 뭔가 다시 돌아온 요가원은 기업화(?)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특히, 규모가 가장 큰 요가반이 요가 기업 같은 느낌이 가장 강했다. 그나마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는 우붓 요가 하우스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개인적이고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수업들이 꽉꽉 차서 빈자리 없는 좁은 공간에서 수련을 진행한다.



여행과 한달살기는 다르다


열흘 남짓 여행을 왔을 때 우붓에서는 2-3일 정도 머물다 갔던 것 같다. 그리고 한달살기는 우붓에서만 한달! 한달살기는 확실히 여행하고는 다르다. 긴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짧은 일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달살기를 하러 와서도 첫 일주일은 관광객 모드로 좋은데 찾아다니고, 맛집 찾아다니고 하지만, 한달 내내 관광객 모드로 지내기에는 좀 피로하다. 한달살기 도시에 적응되면 우리 동네, 동네 주민들, 아침 산책, 요가원, 매일 가는 슈퍼마켓, 자주 가는 카페와 레스토랑 등등 나름대로의 일상이 생긴다. 매끼 나가서 먹는 건 부담스러우니 이제 슈퍼마켓에서 장봐와서 요리도 해 먹기 시작하고,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들도 나름 소소하게 해결해야 한다.


단기간 발리로 여행을 와서 호텔에서 지내고, 관광지 위주로 다니고, 대부분 나가서 사먹는다면 발리만큼 최적화된 여행지가 없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한달살기를 하러 와서 관광지에서 벗어나서 일상을 보낸다고 하면, 그 도시의 인프라가 차지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한달살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도시의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발리에서 일상을 보내기에 불편한 이유들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곳이 매우 부족하다 (스쿠터조심, 개조심, 도보없음 주의).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스쿠터가 없으면 다닐 수가 없다. 첫번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이유이다. 스쿠터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늘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물론 스쿠터 택시가 매우 저렴하긴 하다)


관광객들과 로컬들의 삶의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 크다. 발리의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서비스해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원하는 한달살기는 로컬들이 즐기는 일상의 삶을 경험하고 싶은 건데, 로컬들의 삶은 함께 즐기기에는 너무나 먼 느낌이다.


한달살기에 적합한 풀키친을 갖춘 단독형 아파트형의 숙소가 많지 않다 (대부분 주방이 없거나 공유형인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형태의 숙소들이다). 주방이 있더라도 야외인 경우가 많다 (한달살기 우리집은 침실 외에는 전부 다 야외였는데 모기 때문에 자꾸만 요리를 피하게 되었다..)


개와 닭이 너무 많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개가 무서워서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닭 때문에 매일 새벽마다 강제 기상. 우붓에는 닭들이 정말 정말 많다ㅋㅋ


이런 이유들로, 도시 경제의 대부분이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광객들과 로컬 현지 삶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곳은 내가 원하는 한달살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발리 한달살기를 통해 배운 점이었다. 한달살기를 통해 다른 나라와 다른 도시에서 그곳의 현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 속으로 녹아들어 가서 경험하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 즐기기 - 이것이 내가 원하는 한달살기의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평소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 보고 감사하게 되는 것 - 이것이 한달살기를 통해 배우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에 오길 잘했다.


더위와 모기가 무서워서 에어컨 틀어놓은 방에 하루종일 숨어있던 날도 있었고, 발리밸리 때문에 고생한 날도 있었고, 닭소리 강제 새벽기상에 도망가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ㅋㅋ 발리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며 지내왔던 것들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단순한 삶에 대한 감사.


한달살기는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한달살기를 하며 새로운 환경에 반응하는 나를 관찰하며 나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우게 된다.


발리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내가 얼마나 소음에 민감한지, 나에게 얼마나 기본적인 도시의 인프라와 생활 수준이 중요한지, 집을 고를 때 주방과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ㅋㅋ 이런 것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발리에 오지 않았더라면, 스쿠터를 타고 너른 들판과 논밭과 산길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움,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저 감탄하는 즐거움, 매일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감사함, 요가를 통해 내 몸을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행복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발리에서 새롭게 찾은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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