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터> 다시 보기
오랜만에 주말을 혼자 보내네요. 작가의 서랍 안에 고이 넣어놨던 글 하나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어요.
어떤 주말을 보내고 계신가요? 가끔 댓글을 보며 이런 꿈을 가진 사람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낼지, 이렇게 따듯한 말을 남기는 사람은 어떤 기쁨을 누릴지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그간 공사가 다망했어요. 이런저런 일들을 정리해서 적어낼 시간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얼마 전 수사연수원에서 하는 <혈흔형태분석> 교육을 다녀왔습니다.
경찰 내부 교육은 대부분 수사연수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수사연수원 과학수사학과는 현장감식기초~전문, 폴리그래프, 법사진, 변사현장감식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현장감식기초 과정을 다녀온 뒤 수사연수원 교육은 처음이네요.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이 대부분 취소되거나 비대면 전환되었기 때문에요.
혈흔형태분석은 범죄현장에 유류된 혈흔의 위치, 크기, 형태를 통해 혈액의 출발점과 움직임 등을 판단함으로써 범행 당시의 일련의 행위를 추정하기 위한 과학수사기법입니다.
혼자 혈흔형태분석 공부를 하려고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실패했습니다.
현장에서 혈흔을 볼 때마다 아쉬웠어요. 내가 혈흔을 더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현장재구성을 할 수 있을 텐데.
혈흔형태분석 교육이 강행군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많아 못 갈 뻔했지만 다른 분의 사정으로 제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배우게 되다니!
첫 주는 비대면 수업으로 혈흔형태분석의 이론에 대해 배웠습니다. 혈흔을 독학할 때 처음으로 포기하게 된 부분이 혈흔의 분류학적 체계였고, 재도전했을 때는 삼각함수를 발견하고 도망쳤거든요. 교육을 통해 이 부분을 들으니 며칠 만에 혈흔 분류를 암기할 수 있었고, 삼각함수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교수님들이 분류학적 체계를 강조해 가르쳐주시고 반복적으로 비산/비비산을 질문하셔서, 어느샌가 혈흔 분류표가 외워지더라고요. 달달 외워야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겠죠. 마구 뒤섞인 현장에서 중요한 혈흔 그룹을 판별해낸 뒤 혈흔이 원형인지 아닌지, 선을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차근차근 파악하며 혈흔을 분류해나가야 합니다.
혈흔의 장축과 단축을 활용해 어느 방향에서 혈액 방울이 날아왔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데 이때 삼각함수를 씁니다. 고등학생 때 포기했던 삼각함수인데 이렇게 활용해보니까 이제야 '삼각' 함수가 무언지 살짝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해요.
어느 정도 높이에서 충격이 있었는지 추정하는 것은 현장재구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어서서 몸싸움을 하던 중이었는지, 이미 피해자가 쓰러졌는데도 반복적으로 충격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지니까요.
어떤 도구로 어떻게 내리치면 이런 모양이 나올까 실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위 혈흔은 어떤 도구로 인해 생성되었을까요? 맞춰보시죠!
위에서 혈흔의 방향을 통해 발혈부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스트링 기법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hemospat)을 활용하기도 했어요. 덱스터에서 보던 스트링 기법을 직접 해보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더라고요. 또 실제 사람의 피가 건조된 현장에서는 그 가루가 날리는데, 호흡기에 치명적이라 미국에서는 별로 권장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교육과정에서는 모조 혈액을 사용합니다).
마지막 주에는 모의현장 실습이 진행되었습니다. 사건 개요와 현장감식을 통해 혈흔형태분석 및 현장재구성을 해보았습니다. 피만 남아있으니 깜깜하더군요. 실제 현장은 얼마나 복잡할지. 동기들끼리 함께 현장을 분석하며 의지해야 버틸 수 있겠어요.
어느 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다 같이 등산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수원 입교 전에는 "매일 등산해야지!" 했었는데(ㅋㅋ) 단체등산 하루 간 것도 힘들더라고요. 사람이 참 나약합니다...
저녁이면 생활실에서 덱스터를 다시 보았습니다. 대학생 때 참 좋아했던 드라마인데 이제는 허점이 많이 보여서 웃긴 거 있죠. 이 사진에서도 여러 가지를 잔소리하고 싶지만 참습니다. 드라마가 인강도 아니고 재밌게 보면 그만이겠죠. 아니 그래도 자문을...(그만할게요)
맞다, 드라마 하니까 생각난 건데. 얼마 전에 <살인자의 쇼핑목록>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어요! 코지-수사물 정도로 분류되려나요(동백꽃 필 무렵과 비슷한 느낌),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슈퍼마켓 사장 아들인 광수 배우가 추적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설현 배우가 경찰로 나오는데 정말 예쁘고 잘 어울려요. 공무원 시험, 동네 상권 침체, 아동학대, 피해자 신변보호,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결혼이주여성 등 사회상을 잘 버무려 활용한 점도 눈에 띄었고요. 8부작인 것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퀴즈 일등을 해서 기쁜 저의 모습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