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 justice to victim
전에 말씀드렸던 국외위탁훈련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2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국의 살인사건 수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값진 기간이었습니다.
1주 차에는 살인사건 수사 교육을 받았어요.
수사관이 할 일부터 다양한 유형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기 살인이 흔치 않은데 미국에는 굉장히 많은 사례가 있더라고요. 살인 사건의 70%가량이 총기에 의한 것이라고 해요. 현장 사진도 많이 봤는데, 굉장히 참혹했습니다.
살인 사건을 맡는 형사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습니다. 사건에 감정적으로 이입하지 말고 객관성을 유지할 것, 개방적인 자세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것, 사건은 당신의 커리어뿐 아니라 인생 전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유념할 것.
그리고, 돌아와서까지도 가장 생각나는 건 이 문장이에요.
피해자와 유족에게 '정의'를 선사할 것.
미국 경찰관이 시민에게 총기를 발포하는 사건이 이슈가 될 때가 있죠. 미국 경찰관들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은데,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Suicide-by-cop'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일부러 총을 겨누는 척해서 경찰관이 자기를 사살하도록 유인한다고 하네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미국 여러 법집행기관의 패치가 붙어있는 벽입니다. 우리나라도 각 시도청마다 이런 상징을 만들면 멋지겠죠.
강의실 앞에는 커피도 준비되어 있고요.
교육장에는 범죄수사와 관련된 다른 교육도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도 한국에서 험한 사건들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허허... 세상에 이런 일이...
어쨌거나 1주 차 수업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주말이네요!
교육기간에는 교육기관 제휴 숙소에서 묵었어요. 처음 배정받은 방은 운수 좋게도 호수가 보이는 방이었답니다. 아침저녁으로 호숫가를 보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죠. 낮게 비행하는 새들도 보고, 오리 가족도 보고. 플로리다에는 이런 호수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악어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외진 곳에 있는 호수가 아니라, 학교 강의장 바로 앞에 있는 호수에 적혀 있는 경고예요. 내심 악어를 볼 걸 기대했지만 가까이에서 악어를 본 적은 없어요.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요.
2주 차는 고급 살인 사건 수사를 배웠습니다. 살인 사건 수사 경력이 많은 형사들이 수강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교육 초반에 '미국의 살인 사건 해결율은 어느 정도일까?'라는 퀴즈를 내주더라고요.
미국의 살인 사건 해결율은 점점 하락해서, 지금은 60%도 되지 않는다고 해요. 믿기시나요? 살인 사건의 절반 가까이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듣고 너무나 놀랐어요.
우리나라는 인지된 살인 사건은 99%는 해결한다고 말했더니 미국 경찰관들도 놀라더라고요. (통계는 그 해에 발생한 사건 대비 검거된 피의자를 대비하니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요. 예를 들면 2020년 연말에 발생한 사건을 2021년 연초에 검거할 수도 있고, 2005년에 발생했던 미제사건 피의자를 2023년에 검거할 수도 있고요.)
미국은 지문 등록 의무가 없다 보니 피의자 특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망한 피해자를 발견해도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부터가 난관을 겪더라고요. 영토가 워낙 넓어서 유기된 사체가 발견되는 데에도 긴 시간이 소요되고요. 백골로 발견되는 사체가 많다 보니 법인류학도 발전한 모양이에요.
살인 사건을 분류할 때, 동기에 기반한 범죄(Motive-Based)와 범행 기회에 기반한 범죄(Opportunity-Based)로 나누더라고요. 동기에 기반한 범죄는 원한/치정/금전 등의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살인 범행의 동기로 여겨졌던 것들이죠. 반면 범행 기회에 기반한 범죄는 비면식 범죄(Stranger-to-stranger)를 포함하고, 우리나라에서 이상동기 범죄(소위 '묻지 마' 범죄)라고 명명되는 범주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평소에 동기가 이상하다거나(정상동기가 있을까요?) '묻지 마'(묻지 않던가요?)라는 명명에 의문이 들 때가 있어서인지, 비면식 범죄/기회 기반 범죄라는 표현이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총기 사건 재구성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피해자의 자세와 상처 위치를 고려하여 총기 발사지점을 추정하는 사례도 보았습니다.
사입구와 사출구를 표시하여 탄환의 진행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여러 발의 총을 맞은 경우에도 현장 재구성이 쉽도록 도와줍니다.
사건 현장을 3D로 스케치한 사례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스케치업 등을 이용해 현장 스케치를 하니 익숙했습니다. 동선 구현을 동영상으로 한 것도 보았는데, 현장 재구성이 훨씬 명료하게 표현되더라고요.
미제 사건에 대한 내용도 매우 유익했어요.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미국은 1960년대 발생 사건도 미제 사건으로 관리되고 있더라고요. 또 장기실종의 경우 미제 사건에 포함되고, 장기실종자를 찾기 위해 구현된 시스템(NamUs)도 배울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보였던 미국 경찰관 데이비드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 경찰과 수사 상황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례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진 2주 차 수업도 끝이 났습니다.
사실 영어로 2주간 교육받는 게 지치는 일이기도 해서, 교육이 끝난 날에는 엄청 홀가분했거든요. 이렇게 정리해 보니 아주 귀중한 경험을 하고 왔다는 게 또 한 번 실감 나네요.
이곳에 다 적지 못한 교육 내용은 보고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제 사건과 관련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제가 배워온 것들로 한 건의 사건이라도 더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소원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