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과 보탬 없는 진실, 범죄분석관의 증언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언대에 서서 오른손을 들고 낯선 문장을 읽는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숨김과 보탬 없이'라고 표현하는 게 마음에 든다. 흔히 생각하는 거짓말은 보탬, 즉 '작화' 형태의 적극적 거짓말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훨씬 많이 발견되는 거짓말은 '숨김', 즉 회피와 생략이다. 모순을 만들지 않으려면 말을 아끼는 것이 훨씬 쉽고 유리할 테다.
한 문장에 불과한 증인 선서를 읽으면서도 진실과 거짓에 대한 타령을 하다니. 진술분석 때문에 법원에 소환된 인간 답달까. 경찰서에서 나는 숨김과 보탬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가, 법원에 오니 숨기지도 보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는 사람이 되었다. 피의자에게는 거짓말이 허용되지만, 내게는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나는 이 결연한 의무가 마음에 든다. 증언대가 아니더라도 이 맹세를 읊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여섯 번째 증인소환장을 받았다.
확실한 물증 없는 사건을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확실한 사건에서 심리학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다. 그 과정은 답지 없는 문제집을 푸는 것처럼 어려웠다.
빨간 펜을 든 선생님처럼 판결의 날은 다가온다. 사실 법관은 채점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같이 문제를 푸는 사람이기에 나를 부르는 것이겠지만, 거짓을 말하면 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고 나자 마치 심판받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날을 준비해 왔지.
주요 사건은 공판 일정을 챙겨 참관해 쟁점을 파악해 두고, 판결문을 확인했다. 전문성을 함양하려 박사 공부도 하고, 다양한 교육을 받고 많은 사건을 분석했다. 최대한 객관적 근거를 담아 분석 결론을 내렸다. 누구의 편에 치우치지 않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피해자의 편도 아니다. 그저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을 추구할 뿐이다.
변호인의 질문은 때론 날카롭고 때론 무례하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변호 전략이려니 한다. 아, 한 번은 아주 당혹스러운 질문이 있었다.
'OO라는 직업을 가진 피해자가 즉시 저항하지 않았는데, 이건 비상식적인 행동 아닌가요?'
강간이야말로 가장 비상식적인 행위인데 왜 피해자에게서 상식을 찾는 걸까. 심지어 면식범에 의한 성범죄에서는 즉시 저항을 하지 못하거나 피해 신고가 지연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 상식이다.
담당 형사들이 참관해 증인 신문을 지켜보고는 내게 "변호사들이 윤 부장님 윽~쑤 공구대예."라고 말한 적 있다.
"공구는 게 뭐예요?"
"공군다 모르네예? 갈군다 이런 뜻입니더."
"갈구는 건 줄 몰랐네요!"
더한 변호사도 많은걸요,라는 말을 삼키고 웃었다.
답변을 하며 오랜만에 피고인을 본다. 경찰서에서 봤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짧게는 일 년에서 길게는 삼 년 넘도록 소송은 진행되고 있었다. 피고인은 미결의 시간을 살아냈을 것이다. 얼마나 더 갇혀 있어야 할까?
미결의 시간은 피해자에게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처벌이 나올까? 사형이 선고된다고 해도 삶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재판을 지켜보는 유족은 소리 죽여 운다. 시끄럽게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퇴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 더 있나요. 재판장의 질문에 좌배석과 우배석이 고개를 젓는다. 증인, 이제 가셔도 됩니다.
많은 마음이 응축되어 있는 법정의 공기는 무겁다. 떠밀리지 않으려 또각또각 걸어 법원을 나선다.
범죄분석 보고서 내용이 판결문에 인용되며 유죄를 이끌어낸 사건이 있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살인 사건이라 무죄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변호인들에게 공굼 당한다고 해도 이렇게 내 분석이 증거로 채택되면 보람이 느껴진다.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인 이를 벌 받도록 하는 게 내 일이니까. 당당하게 여섯 번째 선서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