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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Oct 28. 2024

천국과 지옥의 진짜 정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천국과 지옥의 개념을 떠올릴 때 우리는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떠올립니다. 저는 명동 한복판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확성기와 플래카드를 보면서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고 정체 모를 역한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생생한 지옥에 대한 묘사 역시 기독교와 깊은 연관이 있지요. 그런데 초기 구약성경에는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사후세계와는 큰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지옥이란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이 차별받고 병들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2000여 년 전 당시의 세태에 대한 묘사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천국이란 사람들이 정해놓은 각종 법칙들과 아집 그리고 관계의 단절과 편견 등이 없는 모두가 평등하고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묘사에 가깝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사람도 마음 상태에 따라 지옥을 경험할 수 있고, 아무리 가난하고 객관적 조건이 좋지 않아도 마음 상태만 좋으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국과 지옥은 공평한지도 모릅니다.


가톨릭이 로마의 국교가 되고 주변 지역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들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천국과 지옥을 묘사하는 말들이 사후세계와 자연스럽게 연관 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0여 년 전 당시 근동지역(지금의 중동지역) 종교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언급 즉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유독 구약성경(당시 유대교)에 만큼은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어쩌면 사후세계에 대한 고민보다는 현생을 더욱 중요시했던 것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죽음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명확지 않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뇌가 죽으면 죽는 것일까요? 심장이 멈추면 죽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영혼이 죽으면 죽는 것일까요?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 아닐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생물학적 죽음 그 자체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스스로가 죽으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본질은 다른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일종의 메타포(비유)라고 생각을 하자 이것은 완전히 다른 종교인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결국 이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 핵심은 그냥 진짜로 내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일지도 모른다고요. 이것을 알고 나니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말이 진부하고 재미없는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으로부터 여태까지 당연하게 받아온 것들과,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한마디가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의 의미는 이 찰나와 같은 순간을 그냥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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