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본업(인공지능 엔지니어)과 부업(작가)의 경계가 없어진 것 같다. 본업과 집필활동을 양립하느라 심신이 매우 지쳐있던 나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주고자 오래간만에 모든 것을 재끼고 영화를 보았다. 함께 작업 중인 출판사 편집자님이 추천해 주신 '지니어스'라는 영화다.
'지니어스'는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기의 천재작가 토마스 울프(주드로)와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작가 헤밍웨이와 스콧 핏츠제럴드를 발굴해 낸 위대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지니어스'
영화 속 토머스 울프역의 주드로는 작가 하면 떠오르는 다소 정형적이고 멋있는 이미지를 잘 표현해 냈다.헝클어진 머리, 괘짜스러운 말투와 행동, 고뇌하는 표정, 담배연기 자욱한 방...
그러나 실제 작가의 모습은 이처럼 멋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말투는 괘짜스럽기 보다는 지나치게 침착하고 모노톤일 때가 많고, 고뇌하기보다는 멍 때리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술은 좋아하지만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모범적인(?) 성격인 것은 보너스다.
낮에는 회사에서 파이썬 코드 쪼가리와 씨름하고,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집 근처 카페로 향한다. 고뇌는 사치일 뿐이다. 요즘은 마감일 전까지 한 줄이라도 더 써야 된다는 압박감만이 글을 쓰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동력이다.
출처 : pixabay
전 세계에서 작가로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베스트셀러 작가 유발 하라리는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하고 몇 달간 시간을 내어 조용한 곳으로 명상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발리의 정글 속 어느 5성급 호텔 로비에서 영감이 샘솟는 황홀한 경험. 내가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그렸던 모습이지만 실제로 책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고 신해철 씨가 말했던 것처럼 좀 더 행복한 삶은 과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일을 좋아하고 글 쓰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한 여정이라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든 영화에서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표현해내고자 하는 작가와 대중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고자 하는 편집자의 고뇌를 잘 그려냈다. 작가의 역할은 작품에 지식과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것. 편집자의 역할은 그것을 사람들이 보기 좋게 포장하고 재탄생시키는 것.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맡은 바 역할을 다 한다면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작가도 꿈같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