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원고가 끝나고 곧바로 다른 원고의 마감일자가 다가옵니다. 회사 일이 끝나고 나서도, 주말에도 쌓여있는 원고들과 씨름합니다. 최근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느긋하게 쉬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는 일상과 관련된 소소한 글이 많고, 그러한 글들이 공감을 많이 얻습니다.귀여운 고양이 사진, 신입사원 이야기, 맛있는 거 먹으러 간 이야기, 여행 간 이야기 등등 애써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좋은 주제들입니다.
반면에 제가 쓰는 종류의 글들은 독자층도 한정적이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 공감을 많이 받기도 힘듭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제가 자처한 것입니다. 문득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는 대가로 일정 액수의 돈을 받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돈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닙니다. 돈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면 요즘 유행하는 지정학이나 투자에 관련된 글을 썼을 것입니다.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글쓰기는 하나의 개인적인 '기행(이상한 행동)'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하는 글쓰기와 코딩에는 묘한 공통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몰입에 의한 명상 효과입니다. 글쓰기와 코딩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해서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무언가 눈앞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골몰해 있을 때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합니다.
다음으로 글쓰기와 코딩은 모두 지적 허영심을 채워줍니다. 대부분 제가 쓰는 글들은 기승전결이 존재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이나 메시지가 명확합니다. 코딩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구현하고자 하는 결과물이 명확하고 구조화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을 하면서 지적 허영심이 충족되고 쾌감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와 코딩은 모두 집단지성을 활용해 저 나름의 세상을 창조해 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에 저는 수많은 사람의 리서치 결과와 논문을 참조하여 저의 생각을 곁들여 구성과 메시지를 정합니다. 코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짠 코드를 복사&붙여 넣기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가 제가 쓴 글이나 코드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 역시 조금이나마 집단지성에 기여합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사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과학부 기자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는 어려운 개념들을 이야기에 녹여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능력은 이때 길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글쓰기라는 저의 개인적인 '기행'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재미있고 유익한 형태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