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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Dec 31. 2023

연금술사와 자아의 신화

마크툽, 2023년 한 해를 회고하면서

테크관련 스타트업이나 커뮤니티에서는 매주 혹은 매달 단위로 회고(reflection)이라는 것을 진행한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스스로 배웠던 것들과 성장했다고 느끼는 포인트 그리고 아쉬웠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서로 독려하는 매우 이상한 자리인데, 나는 처음에(그리고 지금도) 이 낯뜨거운 자리가 조금은 어색하고 정기적으로 이런 시간을 갖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회고라는 녀석을 진행하다보니 크게 두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하나는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전혀 다른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나 스스로도 배운 것을 언어화 하여 정리해두는 것이 실제로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회고를 적어보고자 한다.


1. 2023년 셀프회고


작년 이맘때쯤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던 시점에 나는 연초에 소망하고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이루어져가는 과정을 보면서 참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마치고 원하던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프로젝트를 잘 끝마쳤으며, 때마침 내가 하던 일들이 챗GPT라는 것을 통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마침내 생활에 안정이 찾아왔다. 그때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기적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2023년은 더욱 놀라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고 첫번째 책을 집필했으며, 꾸준히 써오던 글들 덕분에 다양한 회사와 필진으로 협업할 기회를 얻었고, 가족들과 더욱 돈독해졌고, 내 분야의 일에 인정을 받았던 기분좋은 순간들도 있었다.


2022년과 2023년 두 해는 단편적으로 보면 참 아름다운 날들이었지만,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족과 심하게 다투며 거의 연을 끊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고, 회사에서 크고작은 마음고생을 했었다. 나의 성과를 누군가가 가로채 갔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만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너무 순진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다소 삐뚤어진 시각을 장착하기도 했었다. (사실 삐뚤어진 시선은 어느정도 필요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는 오랜 전문가보다 좋은 결과를 내는 초심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은 자신이 살면서 꼭 이루고자 하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세상은 초심자의 행운을 선물하는데, 이는 온 우주가 나의 자아의 신화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상은 이 사람이 정말로 자아의 신화를 이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한 혹독한 시험또한 하게된다. 나에게 있어서 지난 한해는 초심자의 행운과 혹독한 시험이 동시에 찾아왔던 한해였던 것 같다.



2. 연금술사와 자아의 신화


'연금술사'에는 우리가 대수롭지 지나치기 쉬운 삶의 정수가 갖가지 비유를 통해 녹아들어있는데,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스페인 어느 시골마을의 양치기 소년이었던 '산티아고'는 꿈속에서 피라미드 밑에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광경을 보고 무작정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을에서 어느 늙은 왕에게 '자아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였다. 소년은 가지고 있던 양들을 모두 팔아 여비를 마련하고는 무모한 도전을 향해 여행길에 오른다.


소년은 북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가진 돈을 모두 도둑맞고 사막의 전쟁에 휘말려 죽을뻔 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아시스의 여인 '파티마'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1년간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도둑맞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며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티아고는 꿈속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는 무모한 도전 덕분에 여정의 끝에 '연금술사'를 만나고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도 '연금술사'가 되어간다.


출처 : pixels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산티아고다. 그리고 주인공 산티아고가 보여주듯이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과정은 방황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과정 속에서 산티아고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잃기도 하고, 다시 되찾기도 하며, 뜻밖에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이루고자 했던 것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한 삶은 결국 한 사람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도록 모든 힘을 다해 도와줄 것이다. 마크툽. 살다보면 아랍어로 '씌여진 대로 되리라' 정도로 해석되는 이 강력한 단어를 체감하게 된다. 2024년에도 자아의 신화와 마크툽이라는 말을 잊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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