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임감은 개나 줘버려도 되는 이유
마법의 말 '어쩌라고'
직장생활을 할 때, 특히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할 때 업무 진척이 더뎌서, 혹은 사람 때문에 지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는데, 내가 힘든 이유는 사람이나 업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지나친 책임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작 지나고 나면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일들을 나 스스로 망쳐버릴까 봐 걱정하고 책임지려 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우리는 책임감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책임감은 꽤나 높은 빈도로 일을 그르친다. 지나친 책임감은 사람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에너지가 소진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고객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자칫하면 일이나 사적인 관계까지 망쳐버릴 수 있는 매우 유독한 녀석인데, 결과론적일 수도 있지만 책임감 없이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을 해석해 보자면 그냥 피곤하게 산다는 말이 된다.
책임감이라는 녀석이 어디서 오는지 곰곰이 살펴보니, 뭐든지 통제 범위에 있다고 혹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고 믿는 알량한 오만함에서 온다. 그러나 일은 웬만해서는 나 한 사람 때문에 그르쳐지지 않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맞물렸을 때는 이미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일이 잘 되는 것은 운이 70% 동료들의 도움이 20% 나 스스로의 노력은 10% 정도나 될까?
그래서 내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책임감 없이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일을 마무리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잘하면 더 좋고.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일명 '어쩌라고' 요법을 시전하고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것이다.
"xx사(혹은 xx님)는 정말 신뢰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이 아쉽고... "
("어쩌라고. 니들부터가 똑바로 협조를 안 하는데 우리한테만 책임을 떠넘기려고?")
"이거는 회사 정책상!’()$#"
("어쩌라고.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아직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을 고집해? 그러면서 일이 잘되길 바라?")
"올해 실적이 어려워서..."
("어쩌라고. 내가 이제 당신 실적까지 걱정해줘야 해?")
"내년에도 실적이 좋아지지 않으면 더 이상 못해요"
("어쩌라고. 관둬 그럼 때려치워. 다른 거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