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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진 Dec 21. 2020

조제의 집에 다녀왔다

쓸쓸하고 찬란한 순간들을 쌓아올린 영화 <조제> 

누군가의 집에 다녀오면 세상을 어느 정도는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초등학생 때 놀러간 친구의 집에서 ‘저 친구는 우리집엔 없는 색연필이 있네.’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부러움은 물론 어린 마음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익숙한 세계와 다른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낯선 일이다. (점점 더 낯설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사로운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그렇다. 이 사람은 요리할 때 이런 향신료를 넣는구나.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지인의 베란다를 가득 채운 화초를 발견한다거나,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어머님이 편찮으셔 키울 수 없는 친구의 사정 같은 것들. 그럴싸한 액자 뒤엔 벗겨진 벽지 자국이 있을지도 모를, 집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하고 가벼운 일은 아니다. 


<조제>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 제작: 볼미디어㈜,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오늘 조제의 집에 다녀왔다. 조제가 꾸는 백일몽의 공간에. 지독한 현실과 무한한 공상이 얼기설기 맞물린 그 세계에 우연히 영석이라는 인물이 들어온다. 우연이 점차 우연을 가장한 것이 되어 몇 차례 거듭되면서 조제는 마음의 빗장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인다. 상상이 아니면 은둔 뿐인 조제에게 자신의 공간을 온전히 내어줌은 곧 영석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마치 그들의 관계를 은유하듯, 한밤의 캄캄함마저 밝히던 새하얀 눈밭 위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특별하기만 할 것 같던 둘에게도 시간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조제와 영석은 다부지게 들어섰던 서로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관계에서 두 사람의 위치는 제자리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서로의 세계에 걸음하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조제>는 쓸쓸하고 찬란한 순간들이 예쁘게 짜인 조각보다. 서사를 과감히 걷어낸 대신 한 조각 조각 풍경과 정서에 집중했다. 김종관 감독은 매 작품마다 새로운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해왔다. 섬세하게 빚어낸 공간에서 관객들이 직접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가 <조제>에서 택한 방식이 놀랍지 않고 차분히 스며드는 이유다.  

<조제>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 제작: 볼미디어㈜,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조제는 할머니가 주워온 헌 책들을 수집한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조제의 세계에선 낙이 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받는 것. 언젠가 다시 버려지고 떠날지언정, 관계를 맺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일이다. 영석은 그곳에 완전한 타인으로 들어왔다가 ‘호랑이한테서도 조제를 지켜줄’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그리고 또 떠난다. 세상엔 생각보다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영화가 둘이 헤어지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것은 이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사실과 닮아있다.  


"물고기들이 보면 우리가 갇혀있는 걸지도 몰라."


영석을 울린 조제의 말을 떠올린다. 이제 수족관의 물고기가 달리 보이겠지.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마음의 속도를 함부로 재단하지도, 견고히 쌓아올린 세계에서 저벅 걸어나오는 일 또한 감히 손가락질 하지 못할 것이다. 의미를 품었던 것들은 모두 특별하니까. 

<조제>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 제작: 볼미디어㈜,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쓸쓸하지만 따뜻한, 조제의 집에 다녀왔다.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이미지는 출처 및 영화 제작/배급사 정보를 명기 하였으며 영화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쓰임 이외 영리적 목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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